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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죽일 놈 조희팔"···사망 10년, "숨어 잘산다" 믿는 그들[e즐펀한 토크]

중앙일보

입력 2021.07.03 05:00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 죽었나 살았나

지난 1일 경북 성주군의 한 상가. “만약 조희팔이 산 채로 붙잡힌다면 어떻게 하시겠냐”는 물음에 김효석씨의 눈빛이 돌변했다. 그는 “당장이라도 (그를) 찢어 죽이고 싶다”면서도 “피해자들에게 돈을 돌려주게 하고, 죗값도 제대로 치르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단군 이래 최악의 사기꾼’이라고 불리는 조희팔에게 4억원에 달하는 사기를 당한 피해자다. 14년째 조씨를 쫓고 있는 김씨는 반드시 조희팔이 살아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정석의 경상도 정석기사]
‘생사 논란’ 속 14년째 조희팔 추적중인 피해자들

김씨는 ‘바른가정경제 실천을 위한 시민연대(이하 바실련)’에서 활동 중이다. 이 단체는 조희팔에게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이 진실 규명과 국가 배상 등을 요구하며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검·경이 입을 모아 “조희팔은 죽었다”고 한 것과는 달리 여전히 조씨가 추종세력의 뒤에 숨어 잘 살고 있다고 믿는다.

조희팔이 중국에서 숨진 뒤 치렀다는 장례식 장면. 투명한 관 덮개 아래로 조희팔의 얼굴이 보인다. 사진 바른가정경제 실천을 위한 시민연대

조희팔이 중국에서 숨진 뒤 치렀다는 장례식 장면. 투명한 관 덮개 아래로 조희팔의 얼굴이 보인다. 사진 바른가정경제 실천을 위한 시민연대

조희팔, 죽음 또한 잘 짜인 사기극일까 

지난달 24일 경북 칠곡군 지천면 한 추모공원. 비슷비슷하게 생긴 묘지들 중 ‘昌寧曺公喜八家族之墓(창녕조공희팔가족지묘)’라고 적힌 검은 비석이 보였다.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조희팔의 가족 납골묘였다. 묘 옆에는 조희팔의 출생일자와 사망일자가 음각으로 새겨진 게 보였다. 묘지 앞에는 누군가가 꽂아둔 흰색 조화도 눈에 띄었다. 추모공원 관계자는 “누가 꽃을 꽂아두고 갔는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서류상으로 조씨는 2011년 12월 중국에서 사망했다. 사망 직후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곳에 유골을 묻었다. 조희팔의 가족은 당시 한 언론 인터뷰에서 “화장한 뒤 (중국에서) 유골만 들여와 공원묘지에 납골묘를 썼다”며 “유골함을 묘지에 안장할 때 참석했던 많은 친인척들이 굉장히 슬퍼했다”고 했다.

지난달 24일 경북 칠곡군 지천면 한 추모공원 내 조성된 조희팔 가족납골묘. '昌寧曺公喜八家族之墓(창녕조공희팔가족지묘)'라고 적힌 비석이 세워져 있다. 김정석 기자

지난달 24일 경북 칠곡군 지천면 한 추모공원 내 조성된 조희팔 가족납골묘. '昌寧曺公喜八家族之墓(창녕조공희팔가족지묘)'라고 적힌 비석이 세워져 있다. 김정석 기자

‘단군 이래 최악의 사기범’ 그는 누구인가 

조씨는 7만여 명으로부터 5조원이 넘는 투자금을 빼돌려 2900억원을 챙긴 뒤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국내 최대 의료기 역렌탈 계약 사기 사건’의 장본인의 시작은 시골에서 태어난 소년에 불과했다.

그는 1957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난 후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홀몸으로 대구로 돈을 벌러 떠났다. 막노동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다 20대에 접어들면서 본인의 인생을 바꾼 다단계를 알게 된다. 친형이 일하던 다단계 사업체 ‘SMK(숭민코리아)’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일을 배웠다.

2004년 독립한 조희팔은 그 해 10월 ㈜BMC를 대구 동구에 설립했다. 의료기기를 구입한 뒤 임대를 해 고수익을 낸다는 식의 수법으로 돈을 모았다. 한 계좌(440만원·의료기 한 대 가격)를 투자하면 8개월간 매일 2만6000∼4만2000원씩 166차례에 걸쳐 581만원(수익률 32%)을 준다는 조건이었다.

그는 꾸준히 신뢰를 쌓고 회원을 늘려 전국에 수십 개 법인과 49곳의 센터를 운영했다. 한 피해자는 “투자를 하니 처음에는 한동안 진짜 약속한 날짜에 정해진 돈이 꼬박꼬박 계좌로 들어왔다”며 “처음에는 의심했지만 실제 수익이 생기니 믿음이 생겼다”고 했다.

하지만 조희팔의 사업 방식은 결국 실패로 귀결되는 ‘폰지사기’였다. 폰지사기는 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이자나 배당금을 이른바 ‘돌려막기’ 식으로 지급하는 다단계 금융사기다.

영화 같았던 그의 도피…중국으로 밀항

사기 사건의 윤곽은 사업을 시작한 지 3년쯤 뒤부터 불거졌다. 입금이 늦어지자 피해자들이 수사기관에 고소장을 내기 시작했다. 2008년 10월 경찰이 회사를 압수수색했지만, 이미 조씨 일당이 회사 전산망을 파괴한 뒤 현금을 들고 달아난 뒤였다. 도주 후에는 그가 미리 경찰 추적을 피할 수 있었던 이유가 검·경 내 비호세력의 도움이 있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같은 해 12월 9일 조씨는 충남 태안 마검포항에서 어선을 타고 중국으로 밀항했다. 배를 띄워 공해상으로 나간 뒤 조카가 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에 나와 준비해둔 중국 선박에 옮겨 타는 수법이었다.

밀항 후 3년여가 지난 2011년 12월 경찰은 조씨가 중국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장례식 영상까지 공개됐지만 피해자들은 “거짓 죽음”이라며 이를 믿지 않았다.

2008년 9월 한 행사장에서 조희팔이 깃발을 흔들고 있다. 사진 바른가정경제 실천을 위한 시민연대

2008년 9월 한 행사장에서 조희팔이 깃발을 흔들고 있다. 사진 바른가정경제 실천을 위한 시민연대

中 밀항 후 6개월마다 집 옮기며 도피 

밀항 후 중국에서의 조씨 생활은 어땠을까. 조씨 조카 유모씨는 2015년 10월 중앙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삼촌(조희팔)은 중국에서 6개월마다 집을 옮겨 다녔다. 한 곳에 오래 머무르는 것을 불안해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죽은 것이 맞다”는 주장도 했다. 유씨는 인터뷰 후 닷새 만인 그 해 10월 20일 대구 동구 효목동 한 사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피해자들이 아직 조씨가 살아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뭘까. 우선 장례식 영상에 의심스러운 점이 여럿 포착된다는 점을 꼽는다. 관 덮개가 투명해 시신 얼굴이 보이는 것이 부자연스럽고, 장례식을 촬영한다는 자체가 인위적이라는 지적이다. 조씨의 것이라는 유골도 유전자(DNA) 감정에 실패해 의혹을 증폭시켰다. 또 피해자들이 조씨가 사망했다는 중국 호텔에 직접 확인한 결과 “2011년 12월 한국인 남자가 사망한 사실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밖에도 조씨의 사망의학증명서(사망진단서)에 중국 공안의 인증 도장이 찍혀 있지 않은 점, 화장인증서에 기록된 사망일자와 화장일자, 서류 발행일자가 뒤죽박죽인 점, 수사기관이 발표한 사망일자와 칠곡군 추모공원 납골묘에 적힌 사망일자가 일치하지 않는 점 등도 조씨 죽음에 대한 의문을 낳는다.

의혹이 증폭되자 검찰은 2014년 조희팔 사건을 전면 재수사하겠다고 나섰다. “조씨가 살아있는 것을 전제로 수사에 들어간다”는 발표도 나왔다. 수사 과정에서 조씨의 최측근인 강태용이 중국에서 체포돼 2015년 12월 송환되기도 했다. 강태용은 징역 22년에 추징금 125억원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조희팔 일당에게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의 모임 '바른 가정경제 실천을 위한 시민연대' 회원들이 2015년 12월 대구 수성구 범어동 대구지방법원 앞에서 조희팔 사건의 부조리와 의혹에 대한 재판부의 엄중한 판단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조희팔 일당에게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의 모임 '바른 가정경제 실천을 위한 시민연대' 회원들이 2015년 12월 대구 수성구 범어동 대구지방법원 앞에서 조희팔 사건의 부조리와 의혹에 대한 재판부의 엄중한 판단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수억원 날렸지만…한 푼도 되찾지 못한 피해자들 

하지만 검찰의 결론 역시 ‘조씨가 사망한 것이 맞다’였다. 검찰은 2016년 6월 28일 “조씨가 2011년 12월 19일 0시 15분에 사망했다”며 조씨에 대해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리고 수사를 종결했다.

피해자들의 고통은 여전하다. 그에게 속아 전 재산을 날리고 집안이 풍비박산 나버린 피해자들은 피해 금액을 한 푼도 되찾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조씨의 생사 여부조차도 속시원하게 알지 못하는 실정이다.

최근 대구지검이 추징·보관 중이던 범죄피해재산 32억원을 피해자들에게 돌려주는 절차를 마쳤지만, 이 역시 피해자들은 떨떠름한 반응이다. 5조원이 넘는 피해액 중 고작 32억원에 그치는 데다 그마저도 피해자들이 직접 다단계업체와 소송을 벌여 되찾아야 해서다. 앞서 법원에 공탁돼 있는 범죄수익금 710억원도 피해자들 사이의 법정다툼으로 여전히 묶여 있다.

김상전 바실련 대표는 “수 조원대의 사기 사건을 벌인 주범이 달아나는 상황에서도 사법기관이 제 역할을 못하고 그에게 향응을 받은 공무원들이 오히려 줄줄이 유죄 판결을 받은 사건”이라며 “국가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피해 규모를 키우고 검거에 실패한 만큼 국가가 책임지고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조희팔이 사기에 쓴 ‘미끼’는 의료기기였지만 세월이 지나며 그 미끼는 선물투자상품, 해외투자상품, 오늘날엔 암호화폐 등 변화하고 있다”며 “제2의 조희팔 사건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고 그 피해자 역시 누구든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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