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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아직 안 팔린 '하늘의 로또'···까만 이 반지가 '진주운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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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경남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의 한 파프리카 비닐하우스. 2014년 3월 10일 진주 운석 1호(9.36㎏)가 발견된 주변엔 적막감이 감돌았다. 가까이 다가가니 ‘이곳은 진주 운석이 첫 번째 발견된 곳’이라는 입간판이 당시의 상황을 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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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기씨가 진주 운석으로 만든 '운석 반지'. 송봉근 기자

강원기씨가 진주 운석으로 만든 '운석 반지'. 송봉근 기자

이곳은 2015년 이후 자연재해위험지구 정비사업 과정에서 비닐하우스가 철거되고 복토가 되면서 운석 발견 당시 흔적이 사라졌다. 진주 운석 1호가 떨어질 당시 생겼던 구덩이가 세월이 흘러 메워지는 동안 안내판만 대신 남았다.

당시에는 진주 운석 1호 외에도 미천면 오방리 중촌마을 콩밭(4.1㎏, 3월 12일), 미천면 오방리 504 묘지 근처 밭(420g, 3월 16일), 집현면 덕오리 함양로182번길 입구 풋살구장 앞 농수로(20.9㎏, 3월 17일)에서 진주 운석 2~4호가 발견됐다. 여기도 ‘소중한 유산적 자료이므로 보존에 협조 바랍니다’라는 안내판만 비바람에 훼손된 채 세워져 있는 상태다.

인근 주민은 “운석이 발견될 당시만 해도 운석을 보거나 줍겠다는 사람들로 매일같이 온 마을이 북적거렸는데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인적마저 뜸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운석도 볼 수 없고, 그 떨어진 자리도 제대로 보존이 안 돼 있다 보니 운석이 떨어졌다는 기억조차 사라져가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7년여 전 운석이 떨어졌을 당시만 해도 ‘진주 운석’은 전국적인 화제였다. 특히 진주 운석 1호가 그랬다. 1호 운석은 파프리카 농사를 짓는 강원기(64)씨가 처음 발견했다. 비닐하우스에 큼지막한 구멍을 뚫고 들어와 땅에 박힌 정체 모를 물체를 보고 처음에는 군부대 불발탄인 걸로 오인했다.

 진주 운석 1호가 발견된 자리. 현재는 진주 운석이 떨어졌던 구덩이가 메워지고 안내문만 설치돼 있다. 송봉근 기자

진주 운석 1호가 발견된 자리. 현재는 진주 운석이 떨어졌던 구덩이가 메워지고 안내문만 설치돼 있다. 송봉근 기자

2014년 3월 대곡면 한 비닐하우스에서 발견된 진주 운석 1호(9.36㎏). 송봉근 기자

2014년 3월 대곡면 한 비닐하우스에서 발견된 진주 운석 1호(9.36㎏). 송봉근 기자

신고를 받은 경찰 역시 군부대 폭발물 처리반과 함께 출동했지만 ‘폭발물이 아니라 암석’으로 판단됐다. 그다음 날 1호 운석은 인천시에 있는 해양수산부 산하 극지연구소로 보내졌다. 도난 방지를 위해 대전~진주 간 고속도로 문산IC에 진입할 때까지 경찰차가 호송하는 ‘귀하신 몸’ 대접도 받았다.

이후 파악된 진주 운석 1~4호의 이동 과정은 더욱 흥미를 유발했다. 운석들은 화성과 목성 사이에 있는 소행성대에서 떨어져 나와 우주를 떠돌다 지구의 인력에 끌려 들어온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한국 수도권 상공에서 대기권에 진입한 뒤 경남 함양·산청군 인근 상공에서 폭발해 진주시 곳곳에 떨어진 것으로 파악됐다. 진주 운석은 1943년 일제강점기 당시 전남 고흥군 두원면 성두리 야산에서 발견된 두원운석 이후 국내에서 발견된 2번째 운석이었다.

당시 “하늘에서 떨어진 좋은 기운을 얻고 싶다”며 직접 진주 운석 발견지로 찾아오는 이들이 줄을 이었다. “운석이 떨어진 자리의 흙을 사겠다”라거나 운석이 떨어진 장소를 향해 큰절을 올리기도 했다. 금속탐지기 등 각종 기기까지 동원해 운석을 찾겠다며 나선 ‘운석 사냥꾼’들도 나타났다.

모두 “진주 운석의 가치가 g당 10만원에 달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벌어진 일이다. 인터넷 등을 통해 소치 겨울올림픽 메달에 사용된 운석이 g당 236만원에 팔렸다는 이야기까지 보태졌다. 진주 운석이 하늘에서 떨어진 로또로 불린 사연이다. 특히 진주 운석은 발견된 지 8개월여 만인 2014년 12월에는 국회에서 ‘진주운석법’(우주개발진흥법 일부 개정 법률)이 통과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했다.

진주 운석 1호 소유주 강원기씨가 진주 운석이 발견된 지점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진주 운석 1호 소유주 강원기씨가 진주 운석이 발견된 지점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당시 정부도 “태양계의 기원과 생성, 변천 과정 등 우주과학 연구에 소중한 정보를 줄 수 있고, 관광자원으로도 가치가 있다”며 매입에 나섰다. 그러나 정부에서 g당 1만원을 제시했고, 소유주들은 이보다 많은 금액을 요구하면서 협상이 결렬된 후 현재까지 답보상태다. 현재 진주 운석은 한 은행 금고에 비닐에 진공 포장된 상태로 7년 가까이 보관돼 있다.

이런 가운데 진주 운석 1호 소유주인 강원기씨는 부부가 함께 ‘운석 반지’를 만들어 소유하고 있는 사실이 새롭게 확인됐다. 당시 극지연구소에 보내진 1호 운석은 실험을 위해 200g 정도를 절단했다. 이 중 100g은 실험용도로 사용됐고, 나머지 100g은 진주 운석 1호와 함께 다시 강씨에게 되돌려진 것을 반지로 만들었다.

강씨는 “진주 운석에 관심이 많은 한 광물 전문가가 제안해 극지연구소로부터 되돌려받은 100g을 가지고 운석 반지 7~8개 정도를 만들게 됐다”며 “정부에서도 더는 진주 운석을 매입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최종 확인이 되면 현재 보관된 진주 운석도 운석 반지 같은 다른 활용 방안을 찾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운석 반지를 만든 서울 청룡귀금속상가 광협 박현철 대표는 “진주 운석은 보석·희소성·역사성 가치 등으로 볼 때 크기에 따라 최대 수억 원의 가치가 있다”며 “그런 가치 때문에 국내외에서 운석 반지 등에 관심이 많지만, 운석 국외반출 금지·운석 등록제 등을 골자로 한 ‘진주운석법’이 만들어져 판매가 자유롭지 못한 제약은 있다”고 말했다.

진주=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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