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 사로잡아” 노벨상 밥 딜런 ‘영감의 근원’은 와인

중앙선데이

입력 2021.06.26 00:21

업데이트 2021.06.26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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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2호 24면

와글와글 

시인이자 가수인 밥 딜런에게 와인은 영감의 원천이었다. [AP=연합뉴스]

시인이자 가수인 밥 딜런에게 와인은 영감의 원천이었다. [AP=연합뉴스]

노벨문학상 시인이면서 가수인 밥 딜런이 지난달 80세가 됐다. 그의 애인이었던 존 바에즈와 사이먼 앤 가펑클의 폴 사이먼도 올해 80세다. 한국의 1970년대 문화운동을 이끈 김민기는 올해 만 70세, 그가 만든 노래 ‘아침이슬’이 세상에 나온 지 50주년이 됐다고 한다. 그들의 음악을 통해 위로받고 꿈을 꾸었던 세대에게 마음속 영웅들이 늙어 간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백스테이지에 늘 포도주 준비
음반 제목에 쓰고 책 집필하기도
“마실 와인 없으면 잃을 것도 없다”

10살 때부터 시 쓴 싱어송라이터
노랫말, 잡스 창의적 사고 일깨워
공연 이유로 노벨상 불참 자유인

그들 중 한 명인 김민기씨와 만나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베를린에 주재하고 있던 2001년이었다. 그가 ‘지하철 1호선’의 원작자인 폴커 루드비히와 독일 그립스 극단의 초청으로 단원들을 이끌고 왔을 때였다. 연습이 끝난 뒤 소박한 식당에 마주 앉았다. ‘아침이슬’이란 이름 때문에 소주를 좋아할 줄 알았는데 맥주파였다. “독일에 오니까 맛있고 다양한 맥주를 즐길 수 있으니 좋군요.”

나는 그에게 연극, 뮤지컬 이외에 영화 등 다른 영역으로 확장해 보면 어떻겠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특유의 부드럽고 온화한 표정으로 하던 말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지금의 이 일 제대로 하기에도 벅찬걸요, 뭘!” 낮지만 묵직하면서도 진정성이 듬뿍 실려있는 목소리였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때 그의 나이 만 쉰 살이었다. 세상에는 가짜 영웅들이 많지만, 그는 여전히 자기의 자리를 지키고 있어 반가웠다.

와인 수채화

와인 수채화

김민기와 밥 딜런. 열 살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다. 싱어송라이터, 한 시대 저항문화와 통기타 운동, 음악과 미술을 넘나든 경력, 평생 현역을 유지하고 있는 것까지 비슷하다. “얼마나 많은 포탄이 날아가야, 그 포탄은 영원히 금지가 되는 걸까? 내 친구여, 대답은 바람 속에 있다네.” 통기타와 하모니카로 기성세대의 위선을 야유한 노래 ‘블로인 인 더 윈드(blowin’ in the wind)’는 ‘아침이슬’에 9년 앞서 만들어졌다.

밥 딜런은 1941년 유대인 가정에서 로버트 알렌 짐머맨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가수로 유명하지만, 10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 음유시인이다. 시인 ‘딜런 토마스’에 자극되어 스스로 이름과 성을 밥 딜런으로 바꿨다. 딜런이 만든 수많은 노래 가운데 ‘자유의 종소리’(Chimes Of Freedom)는 가장 정치적인 노래이면서 가장 심오한 시라는 평가를 받는다.

“일몰로부터 자정의 깨진 종소리가 들리기 한참 전에/ 우리는 출입구 안쪽에 몸을 웅크렸지/ 천둥 속에서 장엄한 종소리가 음향 속 그림자를 때리고/ 자유의 종소리는 빛처럼 번쩍이네/ 싸우지 않는 것이 힘인 전사들을 위한 번쩍임….”

딜런의 노랫말들은 미국 실리콘밸리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중 유명한 기업인이 스티브 잡스다. 월터 아이작슨이 쓴 평전 『스티브 잡스』에 따르면 밥 딜런은 젊은 시절부터 잡스의 우상이었으며 그의 노랫말들은 창의적인 사고를 일깨워주곤 했다고 고백했다. 우연하게도 스티브 잡스는 밥 딜런의 애인이었던 존 바에즈와 한동안 사귀기도 했다.

‘한국의 밥 딜런’ 김민기는 독일문화원이 제정한 ‘괴테 메달상’의 수상자가 된 2007년 즈음부터 주종이 와인으로 바뀌었다. 밥 딜런은 오래전부터 와인에서 창작의 영감을 받고 있다.

맥주도 마시기는 하지만 젊은 시절부터 와인을 더 즐겼다. “와인은 나의 영혼을 사로잡았다”고 말할 정도다. 공연할 때 백스테이지에는 언제나 와인병이 놓여 있었다. 1964년 뉴욕 필하모닉 홀에서 열린 핼러윈 콘서트가 끝난 뒤 맨해튼 2번가에서 파티를 열었을 때 그가 참석자들 전원에게 잔 가득 따라 준 것은 보졸레 와인이었다. 젊은 시절 그가 가장 선호하던 포도주였다. 존 바에즈와 팔장을 끼고 있었으며, 시인 앨런 긴즈버그, 재즈연주자 오넷 콜맨드 등이 참석한 자리였다.

나이 들면서 와인 취향도 점차 다양화하는데, 부르고뉴 지방의 샤르도네 화이트와인을 좋아했다. 자신의 음반 이름 ‘하이웨이 61 리비지티드(Highway 61 Revisited)’를 패러디하여 보르도 빈티지 61년산 와인을 재평가한 『보르도 61 리비지티드(Beardeau 61 Revisited)』란 책을 쓰고, 가명으로 『좋은 와인의 세계』를 집필했을 만큼 전문가적인 안목을 지녔다. 괴테처럼 그도 와인에 관해 수많은 명언을 남겼다. “만약 당신에게 마실 와인이 없다면, 당신은 잃어버릴 와인도 없다.”

헨리 맨시니의 영화음악인 ‘포도주와 장미의 나날(Days of Wine and Roses)’을 자신의 음반 제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영국 시인 어니스트 도슨의 시에서 유래된 제목이며, 11세기 페르시아 오마르 하이얌의 시 ‘루바이야트’에 담겨 있는 메세지와 관련 있다. “지금 내 눈앞에 사랑하는 사람과 아름다운 장미꽃과 향기로운 포도주가 있으니 행복하지 않은가?”

불확실한 인생에 들려주는 위로의 말이다. 고독과 상실, 아픔과 이별, 인정받지 못할 때 우리는 괴로워한다. 그때 한잔의 붉은 포도주가 친구가 되어 주고 새로운 창조의 자양분이 된다.

밥 딜런은 “미국 노래의 위대한 전통 안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한” 공로로 201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지만, 수상식에는 가지 않았다. 원래 예정된 순회공연을 취소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허세와 신비주의가 아니라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다. 과거의 명성으로 소모되기를 거부하고 팬들의 취향에 묶이는 것을 싫어했다. 배신자라는 소리를 들어도 그는 묵묵히 새로운 장르에 도전했다. 대중으로부터 인정과 평가가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인정으로부터 벗어날 줄 알아야 한다. 진정한 자유인의 길이다.

멋있게 나이 든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성공의 목적은 무엇인가? 많은 이들이 답을 하지만 밥 딜런처럼 짧고 분명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나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

“돈이 무엇이냐고? 만약 누군가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면, 그는 성공한 사람이다.”

손관승 인문여행작가 ceonomad@gmail.com
MBC 베를린특파원과 iMBC 대표이사를 지낸 인문여행작가. 『괴테와 함께한 이탈리아 여행』, 『me, 베를린에서 나를 만났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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