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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개혁의 동풍서풍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매일같이 새로운 뉴스에 접하는 기자가 수십년 수백년을 시간의 단위로 세상을 보는 역사가와는 같을 수가 없다. 그래서 더러는 오판도 하고 또 때로는 정확한 사태진단을 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 1년반 동안 일어난 큰 국제적 사건 중에서 세계의 거의 모든 언론은 버마와 중국사태에 대해 결과적으로 오판을 했다.
버마 곳곳에서 근 4개월 동안이나 버마사회주의 1당 독재에 대한 반대시위가 일어나고 그 시위대속에 당원과 군인을 포함한 모든 계층의 국민들이 참가하는 것을 보고 세계언론은 「이건 돌이킬 수 없는 민주화의 열풍」이라고 단정했었다.
그러나 네윈을 비롯한 강경파 지도부는 그런 예측을 무자비하게 뒤집어 엎었다. 언젠가는 그때의 격렬했던 민의가 다시 살아나 독재체제를 무너뜨리게 될지 모르지만 당장은 그런 가능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지난 여름 중국의 주요 도시를 휩쓴 민주화시위도 비슷한 경로를 통해 일단 마무리지어 졌다. 논리적으로 따져봐서 도저히 그럴 수 없으리라고 믿었던 학살이 천안문 광장의 그 엄청난 민주화 열기를 억눌러 버린 것이다.
중국의 경우는 버마사태 이상으로 거대한 모습을 드러내 보였던 개혁의 잠재력이 다시 솟아날 가능성은 크다고 보지만 이를 다시 난폭하게 유린할 세력 또한 건재해 있다.
이런 시행착오의 경험 때문에 지금 동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혁의 회오리바람을 평가하는데도 조심하게 된다. 공화국을 선포한 헝가리나 자유노조의 참정으로 체제개혁을 추진하고 드디어 공산당의 파산선언에 이르고있는 폴란드의 경우는 그런대로 확실한 개혁의 진로를 내다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공산국가들, 특히 동독의 경우는 아직 그 수준의 안전선을 채 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수만명이 헝가리에서 열어준 철의 장막 틈 사이로 탈출했고 최근에는 1백만명이 동베를린에 몰려가 정부퇴진과 언론의 자유와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호네커가 사라지고 에곤 크렌츠가 후임으로 들어서서 사회통제의 고삐를 약간 늦췄지만 오히려 반대시위는 줄어들기는 커녕 고삐를 늦춘 것 이상으로 더 격렬해지고있다.
동독은 지금 버마군이 폭력 진압을 개시하기 직전과 비슷한 상태에 놓여있다.
동독은 어디로 갈 것인가. 이것이 동유럽 국가의 개혁이 어느 쪽으로 방향을 틀지를 가름하는 풍향계와 같은 의문이다.
고르바초프가 대신 결정을 해줄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지난 7월 바르샤바정상회담 때 이런 소리를 했다. 『각 국의 인민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사회형태를 선택해야 된다. 어떤 구실로도 외부로부터 간섭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 말은 『사회주의에 적대적인 세력이 사회주의 발전을 되돌리려 들 때는 그것은 모든 사회주의 국가의 관심사가 된다』고 한 68년 브레즈네프의 말과는 정반대되는 말이다. 브레즈네프의 이 말은 개혁을 지향하는 위성국에는 랭크를 몰고 쳐들어가겠다는 경고였던 것이다. 이것이 악명 높은 「브레즈네프독트린」이다.
이에 비해 고르바초프의 바르샤바선언은 「시내트라 독트림」이라고 고르바초프의 대변인인 게라시모프는 헬싱키에서 말했다.
그것은 시내트라가 부른 『나의 갈길』이란 노래이름을 딴 것이다. 모든 위성국가들은 자기 갈 길을 가라는 의심의 여지없는 공언일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소련의 관용에는 두 가지 조건이 따른다. 하나는 동구 국가들이 민주화 개혁을 하든 서방식 경제방식을 도입하든 간에 소련과의 군사동맹인 바르샤바조약군에서 탈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수성을 위해 위성국의 독자노선을 뒤에서 은근히 부추기고있는 고르바초프가 계속 소련 지도자의 자리를 지켜야 된다는 것이다.
만약 폴란드가 바르샤바 조약군에서 탈퇴할 의사를 보인다면 소련군부는 이를 용납할 가능성이 희박하고 그렇게되면 고르바초프 자신의 위치도 위협을 받게되는 것이다. 아무리 변혁의 회오리가 거세다해도 위성국이 종주국이 정해놓은 전략구도를 바꿔놓을 정도의 힘은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냉엄한 세력권 정치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아시아로 관심을 돌러보면 전도는 동유럽에 비해 훨씬 비관적이다.
버마와 천안문의 전례 뿐 아니라 아시아에는 고르바초프와 비슷한 확신에 찬 개혁주의자가 권력의 상층부에 없다는 점이다.
김일성은 확고한 스탈린주의자로 남아있고 등소평도 천안문사태로 경제건 정치건 간에 이제 개혁을 추진할 기력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그런 두 사람이 지금 북경에서 만나고 있다. 거기서 무슨 말이 오갈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힘을 합쳐 동구와 같은 개방·개혁을 추진해 보자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것은 거의 확실하다.
그런 전망은 한반도의 장래를 위해서나 아시아 전체의 평화를 위해 불행한 일이다. 동구공산세계와 중국 내부, 그리고 아직 분명한 증거는 보이지 않지만 북한내부에서도 잠재하고 있을 스탈린주의에 대한 환멸과 반발은 시간이 갈수록 더 격렬한 형태로 내연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다음 번에 분출될 때는 지난 여름 천안문광장 때 나타났던 것 보다는 훨씬 큰 폭발력을 갖게될 것이다. 아시아 대륙에서 과거의 속성과미래로의 지향성이 격렬한 충돌을 하지 않기 위해, 그런 충돌이 주변으로 불똥을 퉁기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고르바초프와 같은 개혁가의 등장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다. 이 상황 속에서는 우리도 방관자가 아니다.
장두성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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