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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맘놓고 먹을게 없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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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마음놓고 먹을 식품이 없다.
공업용 우지를 원료로 한 기름을 써서 만드는 제품은 삼양라면·마가린뿐만 아니라 제과점의 각종 케이크, 비스킷 등 과자류와 중국 음식, 각종 어묵 제품 등까지 광범위하다.
이밖에도 가루비누로 씻은 족발, 각종 유해 색소를 바른 육류와 된장, 카바이드를 넣은 막걸리, 눈속임으로 유효 기간을 바꿔놓은 각종 가공 식품, 불결한 대중 음식점 등 우리 주변엔 온통 유해 식품과 환경이 널려 있다.
◇제조=6일 오후 서울 K시장 한쪽에 위치한 즉석 어묵 튀김 가게.
한 봉지에 3백원씩에 팔리는 어묵 튀김으로 주인 윤모씨 (35)가 올리는 하루 수입은 3만원 수준.
그러나 하얀 어묵이 튀겨지는 기름 솥에는 식용유 대신 검은 찌꺼기가 가라앉은 공업용 소기름을 원료로 한 쇼트닝이 가득 담겨 끓고 있고 가게 뒤편에는 어물전에서 끌어 모은 생선 머리와 뼈가 역한 냄새를 풍기며 비를 맞으며 방치돼 있다. 『싼값에 손님이 몰리고 타산을 맞추기 위해서는 식용유 절반 값도 안 되는 쇼트닝을 쓰지 않을 수 없지요. 영양이나 위생 따지려면 백화점에나 가지 여긴 왜 와요.』
윤씨의 말이다. 그리고 윤씨는 5년이 넘도록 이 장사를 하면서 위생 검사는커녕 단속도 한번 받지 않았다.
같은날 N시장 돼지 골목.
1평 남짓한 가게 20여개가 밀집해 있는 골목에는 2백마리 분의 돼지머리와 족발이 가득 쌓여있다.
먼저 가루비누를 푼 물로 껍질을 닦아내고 통속에 받아놓은 개숫물 같은 수도물로 대충 헹군 뒤 들기름을 문지른다.
족발의 경우 가스버너로 발톱 주위를 태워 색깔을 낸 뒤 실고추와 통깨를 뿌리면 상품으로 탈바꿈해 바로 각 시장으로 퍼져나간다.
뿐만 아니라 아직도 시중에는 소고기 등 육류에는 적색착색제인 니코틴산, 된장에는 황색 착색제인 명반, 도라지나 더덕에는 표백제인 아황산나트륨 등 각종 유해 색소가 공공연히 사용되고 소석회를 섞은 두부, 변질을 막기 위해 카바이드를 넣은 막걸리가 나돌고 있다. 가정집에서 먹다 남은 된장을 수거해 다시 간장과 된장을 만들어 판 업주가 쇠고랑을 찼다.
◇수송·보관=지난 9월 서울 월계변전소화재로 성북·도봉·노원구 일대에 이틀동안 전력 공급이 중단됐었다.
이 사고로 모든 냉장고의 작동이 중단됐지만 이 일대 냉동 식품점의 반품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쌍문동 H정육점 주인 강모씨 (40)의 말대로 완전히 상한 고기는 폐기 처분했지만 팔 수 있다고 주인들이 판단한 고기는 그후 다시 냉동해 팔았기 때문이다.
또 지난 1일에는 농약 공장 등 인천시내 화학 공장에서 화공 약품과 산업 폐기물을 담았던 폐드럼통을 헐값에 구입해 씻지도 않은 채 옹진·강화 수협에 팔아 넘긴 드럼통 회사 대표가 검찰에 적발돼 충격을 주었다.
수협은 구입한 1만개의 드럼통에 젓갈을 담아 시중에 판매, 젓갈에 밴 악취와 유해 성분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특히 최근 소비자 고발이 부쩍 늘어난 것은 일선 판매점의 유효 기간 조작 문제.
서울 중계동 H쇼핑 센터에서 복합 포장된 대구 매운탕 재료를 구입한 이모씨 (53·주부)는 『가공 포장 일자가 하루밖에 안 돼 안심하고 샀다가 포장을 뜯어보니 상한 냄새가 났다』며 소비자 고발 센터에 신고해 환불받았고, 대전에서는 유명 메이커 식용유조차 제조 일자가 판매 일자 이후로 기재된 것이 발견돼 고발되기도 하는 현실이다.
◇대중 음식점=3일 오후 9시 서울 장안동 A숯불 갈비집.
주인 김모씨 (45)는 걸레와 구별 안 되는 행주로 식탁을 닦고 색소를 탄 보리차를 따라 놓는다.
다른 손님들이 먹다 남은 김치와 콩나물이 그릇만 바뀐 채 반찬으로 올라오고 가게 구석에 쌓아둔 배추와 무위로 바퀴벌레가 기어다니고 있다.
고기를 자르는 녹슨 가위.
주인 김씨는 이에 대해 『구청에서 단속을 와도 조리사 자격증과 보건증 소지, 밀실 설치 여부만 보고 돌아간다』며 코웃음쳤다.
이같은 불량·유해 식품에 대해 서울대 황인경 교수 (식품 영양학)는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식품에 대해서는 원료 도입부터 제조·보관에 이르기까지 절차가 세밀하게 규정돼 있고 이를 어기면 살인과도 맞먹는 것으로 취급하고 있다』며 『정부 당국과 연구 업체들의 꾸준하고도 엄격한 감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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