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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성악 콩쿠르 우승 김기훈 “2등만 하다 1등해 속 시원”

중앙일보

입력

20일 BBC 카디프 싱어 오브더 월드에서 우승한 바리톤 김기훈. [사진 아트앤아티스트]

20일 BBC 카디프 싱어 오브더 월드에서 우승한 바리톤 김기훈. [사진 아트앤아티스트]

바리톤 김기훈(30)이 영국 ‘BBC 카디프 싱어 오브 더 월드(Cardiff Singer of the World)’에서 20일(현지시간) 우승했다. 전 세계의 성악가가 겨루는 대회로 BBC 웨일스, 웨일스 국립오페라가 주최한다. 웨일스 카디프의 세인트 데이비스 홀의 개관을 기념해 1983년부터 2년마다 열리며 전 경연을 BBC 채널4에서 생중계한다. 아리아(메인 프라이즈)와 가곡 부문(송 프라이즈)으로 나눠 열리는데 김기훈은 아리아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영국 웨일스에서 BBC 성악 대회 우승 #"세계 대회에서 자꾸 2등 했는데…" #고교 때 시작해 두각 나타낸 바리톤 #예선에서 심사위원이 눈물 흘리기도

김기훈은 2019년에도 해외의 대형 대회에서 승전보를 전했던 성악가다.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2위, 플라시도 도밍고의 대회인 ‘오페랄리아 콩쿠르’에서도 2위에 올랐다. 이번 수상 후 20일 본지와 전화 통화에서 김기훈은 “하도 2등만 해서 이번 우승에 가슴이 다 시원하다”며 웃었다. “BBC 대회는 성악가라면 누구나 꿈꾸는 무대다. 여기에 섰다는 자체도 믿기지 않고, 우승은 더 믿을 수 없다.” 그는 “사실 결선 무대에서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아 마음을 비우고 있었던 차”라고 했다.

전라남도 곡성군 태생의 김기훈은 늦은 편인 고등학교 3학년에 성악을 시작해 급속도로 두각을 나타냈다. 연세대 음대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독일 하노버 음대 석사 과정도 만점을 받으며 졸업했다. 졸업 후 2016년부터 3년 동안 하노버의 국립 오페라에서 주역 가수로 노래했고 현재는 프리랜서로 유럽 오페라 무대에 서고 있다. 오페라 ‘리골레토’ ‘살로메’ ‘나비부인’에서 주요 바리톤 역할을 맡았으며 현대 오페라 무대에서도 활약했다.

화려한 경력의 그는 “무대는 해도 해도 긴장되고 떨린다”며 “이번 BBC 무대에서도 결선 첫 곡을 부를 때 약간 실수를 해서 마음이 많이 흔들렸는데 최선을 다해 집중했다”고 했다. 김기훈은 결선 무대에서 안정감 있고 기품 있는 음성으로 로시니 ‘세비야 이발사’, 바그너 ‘탄호이저’, 조르다노 ‘안드레아 셰니에’ 중 아리아를 불렀다.

이에 앞서 예선에서는 20세기 작품을 부르면서 ‘심사위원의 눈물’을 끌어내기도 했다. 그가 코른골트 오페라 ‘죽음의 도시’(1920년) 중 아리아 ‘나의 그리움’을 부르자 심사위원 중 하나인 소프라노 로베르타 알렉산더가 눈물을 흘렸고, 이 장면이 BBC를 통해 중계됐다. 김기훈은 “이때 결과가 좋을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고 했다.

이번 경연에는 총 15개국의 16명이 참여했다. 영국ㆍ러시아 등 유럽은 물론 몽골, 마다가스카에서도 성악가들이 출전했다. 김기훈은 우승으로 상금 2만 파운드(약 3100만원)와 갈라 콘서트 출연 기회를 받았다. 그는 “워낙 콩쿠르 규모가 크고 유명해서, 앞으로 여러 나라의 무대에서 노래할 기회를 얻게 될 수 있을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BBC 콩쿠르는 바리톤 브린 터펠, 베이스 드미트리 흐보르토프스키 등 묵직한 이름의 성악가를 배출했다. 한국인 중에는 1999년 바리톤 노대산, 2015년 베이스 박종민이 가곡 부문에서 우승한 기록이 있다. 김기훈은 다음 달 8일 경기도 성남의 티엘아이 아트센터에서 공연해 이번 대회에서 불렀던 노래 중 대부분을 들려줄 예정이다. 올가을부터는 영국ㆍ독일ㆍ미국ㆍ러시아의 오페라 작품에 출연한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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