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자도 친구도 된통 당했다, 바그너에게 아내 소개했다가 [고전적하루]

중앙일보

입력 2021.06.19 00:05

‘이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세계는 나와 내 예술을 위해 존재한다. 내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들의 문제다.’ 이런 사람 어떤가요.

19세기 음악의 절대적 제왕인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1813~83)의 정신세계는 독특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예술 중 음악이 가장 높은 곳에 있으며, 그 이상을 가장 잘 실현할 사람은 본인이라고 믿었으니까요.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 [사진 위키피디아]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 [사진 위키피디아]

시대는 그를 기꺼이 포용했습니다. 이전 시대의 문을 닫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낸 예술가로 추앙 받으며 아주 유명한 작곡가가 됐습니다. 지금도 독일 바이로이트에서 매년 여름 바그너의 오페라 작품만으로 축제가 열리는데요, 바그너의 구상에 따라 지어진 (청중이 예배를 드리듯 경건히 감상해야 하는) 극장에서 길고 장대한 그의 오페라가 내내 공연됩니다. 공연장이라기보다는 ‘바그너 신전’에 가깝습니다.

바그너는 자신의 신격화를 즐겼습니다. 많은 이가 추앙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비단을 팔아 큰 부자가 됐던 오토 베젠동크는 음악에 대한 이해가 깊은 후원자였습니다. 반면 바그너는 씀씀이가 벌이보다 컸는데요, 그럴 때 바그너의 작품을 후한 값에 사줘서 작곡가가 다시 번듯하게 생활하도록 도와줬던 이도 베젠동크였죠.

문제는 바그너가 이런 이해심 깊은 후원자의 부인과 사랑에 빠졌다는 점입니다. 베젠동크가 바그너의 창작을 위해 내어준 집에서 바그너는 마틸데 베젠동크에 대한 사랑을 키워갔습니다. 23세에 결혼한 부인과 20년 넘게 살았을 즈음입니다. 남녀의 금지된 사랑을 다룬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이 시기에 나왔다는 점은 우연이 아닙니다.

아직 끝이 아닙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작곡되고 6년 후 초연됐는데요, 여기에서 지휘를 맡았던 한스 폰 뷜로 또한 아내가 바그너와 사랑에 빠지는 것을 목격해야 했습니다. 바그너의 열렬한 팬이었던 뷜로는 결국 아내 코지마 리스트와 이혼했고, 바그너는 이들이 이혼하자마자 코지마와 결혼했습니다.

바그너는 도덕을 믿지 않았던 만큼, 행동에도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마틸데 베젠동크와는 뜨거운 편지를 나눴고, 마틸데의 시에 바탕해 ‘베젠동크 가곡’을 그녀의 생일에 맞춰 내놓는가 하면 뷜로와의 우정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연애에 집중해 친구를 사회의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렸죠. 뷜로가 왜 "그는 엄청난 예술가이지만 아내를 소개해서는 안된다"고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바그너만큼 정신분석학, 심리학에서 많이 다룬 작곡가도 없습니다. 특히 니체는 『비극의 탄생』『바그너의 경우』같은 책에서 그의 독특한 정신세계를 탐구했죠. 영웅적 오페라 곳곳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키고, 현실에서는 본인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대상을 찾았던 작곡가 바그너. 세상의 중심에 있었던 그의 자신만만한 음악을 고전적하루 4화에서 들어봅니다. 중앙일보 팟캐스트 플랫폼 J팟(https://news.joins.com/Jpod/Channel/9)에서도 들으실 수 있습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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