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물류센터 내부구조 복잡, 가연성 물품 많아 진화 어려워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41호 12면

17일 경기도 이천시에 있는 쿠팡 덕평물류센터에서 발생한 화재가 이틀째 이어지고 있다. 물류센터 내부에 가득 쌓인 가연성 물질로 인해 불씨가 좀처럼 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실종 소방관에 대한 수색작업도 이르면 19일에야 재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이틀째 #붕괴 위험 탓 건물 내 진입 못해 #실종된 소방관 수색 재개 힘들어 #‘로켓배송’ 등 물류 지연 가능성 #김범석 의장 사임, 책임 회피 논란

화재 발생 35시간째인 18일 오후 4시 소방당국은 “현재 큰 불길은 다 잡혔다. 초진 개념으로 봐도 무방하다”면서도 “내부 적재물에 쌓인 불씨를 헤쳐 꺼야한다”고 설명했다. 전날 오후 7시쯤 전 층으로 불이 확산한 이후 현재는 건물 뼈대가 드러났고 그 사이로 검은 연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전날 오후 12시 15분 재발령된 대응 2단계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내부 진압은 컨베이어 벨트 설치 등 건물 구조가 복잡한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소방 관계자는 “미로 구조는 시야가 확보되지 않고 적치물만 있어도 진화가 어렵다”고 말했다.

18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이틀째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건물 뼈대가 드러났고 그 사이로 검은 연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큰 불길은 잡혔지만 물류센터 내에 가연성 물질이 많아 불씨가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다. [연합뉴스]

18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이틀째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건물 뼈대가 드러났고 그 사이로 검은 연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큰 불길은 잡혔지만 물류센터 내에 가연성 물질이 많아 불씨가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다. [연합뉴스]

소방당국은 건물이 붕괴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방수포를 이용해 건물 외부 온도를 낮추는 원거리 진화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 전문가와 경기도 안전특별점검단을 투입한 건물 안전진단은 19일쯤 가능할 전망이다. 소방 관계자는 “전문가 3명이 기다리고 있는데, 이 상태로는 (진단이) 어렵다고 한다”고 전했다. 현장에서 건물 중앙부가 크게 주저앉은 모습 등이 확인됐다고 한다.

전날 실종된 광주소방서 119구조대 구조대장 김모(52) 소방경에 대한 수색 작업도 안전진단을 마친 다음에야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 소방경은 전날 오전 11시 50분쯤 피해자 수색을 위해 대원 4명과 지하 2층으로 진입했다가 내부에 쌓인 가연 물건이 무너져 내리면서 발생한 화염과 연기로 고립됐다. 소방당국은 이날 “김 소방경 실종 직전인 17일 오전 11시 20분부터 오전 11시45분 사이 무전교신한 내용이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김 소방경과 함께 진입한 소방대원 4명 중 3명은 대피했지만, 그중 A(46) 소방위는 탈진한 상태였다.

화재는 전날 오전 5시 20분쯤 물류센터 지하 2층에서 시작됐다. 지하 2층 물품 창고 내 진열대 선반 위쪽에 설치된 콘센트에서 불꽃이 이는 장면이 창고 내에 설치된 폐쇄회로 TV(CCTV)에 찍혔다고 한다. 지하 2층 근무자가 화재 발생 10여 분 뒤인 오전 5시 36분쯤 창고 밖으로 새어 나오는 연기를 보고 최초 신고를 했다고 한다. 화재 경보 등이 울리면서 내부에 있던 직원 248명은 모두 대피했다.

화재가 발생한 이 물류센터는 지상 4층, 지하 2층, 연면적 12만7178.58㎡ 규모로 쿠팡 물류센터 중 가장 큰 것으로 알려졌다. 신선식품을 제외한 일반제품을 취급한다. 화재 발생 전 물류센터 안에는 선반 등에 물품이 가득했었다고 한다. 불길이 잘 잡히지 않는 이유도 물류센터의 규모와 내부에 쌓인 가연성 물질이 많아서인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스프링클러 등 진화설비가 제대로 작동했는지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스프링클러가 작동한 것을 봤다는 목격자가 있으나 화재 초기부터 작동했는지, 모든 층과 구간에서 제대로 작동했는지 등을 살필 예정이다. 소방 관계자는 “스피링클러가 작동되는것을 확인했으나 건물이 워낙 넓고 스프링클러가 늦게 터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 건물에 대한 화재 전 마지막 안전점검은 올해 2월 22일로 파악됐다. 자체 안전점검 결과 100여 건이 넘는 지적사항이 나와 시정조치를 요구했다고 한다. 소방당국은 “예를 들어 ‘소화기구 지하 1층에 표시 미부착’등 자잘한 건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번 화재로 쿠팡의 수도권 배송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덕평센터는 인천·대구센터와 함께 쿠팡의 3대 물류센터로 꼽힌다. 특히 인천센터와 함께 수도권 ‘로켓배송’의 중심이었다. 쿠팡은 다른 물류센터를 통해 배송 지연을 최소화한다는 계획이다. 쿠팡 관계자는 “수도권 지역에 크고 작은 물류센터가 산재해 있어 덕평센터 배송 물량을 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쿠팡은 전국 30개 도시, 100여 곳에 중소 규모 물류센터가 있다. 하지만 대형 물류센터 공백이 장기화하면 일부 배송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화재 원인 등에 대한 조사 결과가 나오면 물류센터 안전관리에도 문제가 제기될 수 있어 비상 상황은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인천센터와 중소 규모 센터로 일감을 돌린다면 다른 센터에도 과부하가 걸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대형화재가 발생한 상황에서 창업자인 김범석(43) 쿠팡 이사회 의장이 의장직과 등기이사에서 사임을 발표한 것을 두고도 뒷말이 나오고 있다. 쿠팡은 덕평센터 화재 발생 5시간여 뒤인 오전 11시쯤 김 의장의 사임 보도자료를 냈다. 지난해 12월 쿠팡 대표이사에서 사퇴한 지 6개월 만이다. 이로써 김 의장은 한국 쿠팡의 모든 공식 지위를 내려놨다. 이 때문에 김 의장의 국내 공식 지위 반납은 내년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앞두고 법적·사회적 책임을 피하려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중대재해법 전문가인 최정학 방송통신대 교수(법학)는 “김 의장이 대표이사와 사내이사에서 물러나는 식으로 중대재해 책임을 회피하려는 소지가 있어 보인다”며 “앞으로도 여러 기업에서 중대재해법을 피하려는 대표이사 사임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쿠팡 관계자는 “이사회 의장을 사임한 것은 지난달 31일로, 김 의장의 사임이 외부에 조금씩 알려지면서 당일 관련 보도자료를 서둘러 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모란·위문희·백민정·이병준 기자 mora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