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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말초혈관질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몇 개월전 개인병원을 경영하고 있는 대학후배로부터 J씨(54)를 급히 의뢰한다는 전화를 받았다.
중학교 교장선생님인 J씨는 7년전 당뇨병으로 진단받고 나름대로 식사조절과 경구 혈당 강하제로 치료해왔다고 했다.
그러던 중 2주일 전 집안에서 깨진 유리조각에 오른쪽 엄지발가락을 베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지냈으나 상처 부위가 묽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통증은 별로 없어 머큐러크롬으로 소독만 했는데 염증이 점차 심해지고 나중엔 상처 부위가 깊게 헐고 발등·발바닥까지 붉게 붓기 시작했다.
통증도 심해져 걷기조차 힘들고 열이 나기 시작해 인근 병원에 들르게 된 것이다. 혈압은 1백60/l백mmHg였고 혈당은 3백50mg/dl로 높았다.
상처부위를 살펴보니 이미 발바닥 밑 부분의 궤양이 깊어 힘줄과 일부 뼈가 노출돼 있었고 조직은 괴사되어 지저분하고 염증은 발등·발바닥까지 침범해 있었다. 또 발등 부위 말초동맥은 겨우 만져서 느껴질 정도였다.
당뇨병성 말초혈관질환에 의한 족부궤저로 진단하고 즉시 입원수속을 밟도록 했다.
이 질환은 당뇨병을 잘 조절하지 않을 때 동반될 수 있는 대혈관장애다.
당뇨병의 경우 이런 질환의 발생빈도가 일반인보다 2∼4배 높으며 특히 J씨 경우와 같은 족부궤저의 빈도는 30배 이상이다.
일단 말초혈관 장애가 다리부위에 생기면 초기엔 걸을 때 쥐가 나며 통증이 발생하고 쉬면 회복되나 더 진행되면 가만히 있어도 통증이 계속된다. 이때엔 즉시 혈관 외과 전문의를 찾아 필요시 혈관확장술이나 혈관수술, 혹은 인조혈관 삽입술을 받아야 한다.
혈관이 막혀 그 아래조직이 괴사됐는데도 응급처치를 받지 못하면 괴사된 부위를 절단해야하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당뇨병에서는 염증이 잘 생기고 치유도 잘 되지 않는 만큼 말초혈관장애가 동반돼 혈액공급이 나쁜 부위에 상처가 생기면 세균감염에 의한 염증이 발생, J씨처럼 족부궤저로 진행된다.
특히 당뇨병성 신경병증이 동반된 환자는 상처가 생겨도 통증을 잘 느끼지 못해 상처의 발견·치료가 지연돼 족부궤저가 더 잘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당뇨병환자들은 평소 세심한 발 관리가필수적이다. 즉 모양에 구애받지 말고 넓고 편한 구두를 신고 가능한 한 맨발로 다니지 말아야 한다(특히 해수욕장이나 산에서). 또 매일 발을 깨끗이 씻고 상처유무를 살펴 조그마한 상처도 조기에 병원치료를 받아야한다.
J씨는 즉시 입원해 내과·외과 공동팀의 엄격한 혈당조절과 다량의 항생제요법 및 상처부위의 외과적 치료를 받았다. 다행히 처음 고려되던 발목 부위의 절단수술을 면하고 엄지발가락만 잘라 스스로 보행이 가능하게됐다.
그러나 J씨가 입원 중 겪은 정신적·육체적 고통은 평소 당뇨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는데 너무 대가가 커 담당의사로서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손호영<가톨릭대교수·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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