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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군사 일으키려다 이성계에 발각되자 죽어버린 아기장수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권도영의 구비구비옛이야기(61)

장미꽃이 한창인 계절이다. 경기도 부천의 도당산에는 백만송이장미원이라는 곳이 있다. 말 그대로 백만 송이는 될 듯한 엄청난 양의 장미꽃이 온 동산을 뒤덮은 곳이다. 아쉽게도 지금은 6월 중순까지 일시 폐쇄된 상태다.

몇 년 전, 꽃구경 좀 하겠다고 이곳을 찾은 적이 있다. 형형색색 화려한 장미에 넋이 나갈 때쯤 장미원 뒤쪽으로 이어지는 제법 시원해 보이는 산책로가 눈에 들어왔다. 잘 정돈된 길을 따라가 보니 장미원의 화려함과는 또 다른 초록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6월의 진초록에 취해 한참 어슬렁거리는데, ‘아기장수 바위’라는 표지판이 나타났다. ‘아기장수라고? 여기에?’ 내가 사는 곳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아기장수 바위가 실제로 있다니, 무척 놀라웠다.

표지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 보니 아기장수를 형상화한 조각상이 여럿 있었고, 전설을 소개하는 안내문이 서 있었다. 안내문에 적혀 있는 이 지역의 아기장수 전설은 내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이야기와는 조금 달랐다. 옛날에 어린 장사가 부평의 진산인 계양산에서 날아와 오른발 한쪽만 바위를 밟고 소변을 본 후 서울 관악산으로 날아갔다고 한다. 그래서 그 바위를 장사바위라고 한다는 것이 이야기의 전부다. 과연 이 바위 위에는 발자국처럼 패인 자국이 있다.

부천역사연구소에 소개되어 있는 아기장수 바위의 전설(좌). 아기장수 바위를 중심으로 아기장수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여럿 서 있다. 아기천사 같은 모습이어서 좀 이질적인 느낌도 있다(우). [사진 권도영]

부천역사연구소에 소개되어 있는 아기장수 바위의 전설(좌). 아기장수 바위를 중심으로 아기장수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여럿 서 있다. 아기천사 같은 모습이어서 좀 이질적인 느낌도 있다(우). [사진 권도영]

아기장수는 왜 계양산에서 날아와 관악산으로 간 걸까? 부천 도당산(혹은 춘의산)은 오줌 누려고 잠시 한 발 댔던 곳일 뿐이고 목적지는 서울 관악산이었다. 아기장수 이야기는 이성계의 조선 건국 과정을 전하는 이야기와 결합하기도 하는데, 그런 배경을 생각해 보면 아기장수는 과연 천하를 뒤집어엎을 큰일을 도모하던 존재이기는 한 것이다.

아기장수 이야기는 전국적으로 상당히 많이 퍼져 있다. 그만큼 여러 유형이 전해지는데, 막상 대중적으로는 콩쥐팥쥐나 해님달님처럼 익숙하지는 않다. 아무래도 행복한 결말이나 해학적인 분위기를 갖지는 못한 것이 이유일까 싶기도 한데, 아기장수 이야기는 대체로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날개 달린 아기를 부모가 눌러 죽였다는 이야기와 아기장수가 군사를 키우던 은신처가 발각된 순간 재가 되어 버렸다는 이야기가 대표적인 유형이다.

날개 달린 아기장수 이야기는 이렇다. 어느 가난한 농사꾼 부부가 아기를 낳았는데, 갓난쟁이 아기를 방 안에 둔 채 일을 하고 돌아와 보니 아기가 대들보 위에 올라가 있었다. 살펴보니 아기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려 있었다. 부부는 이 아이를 그냥 두면 장차 큰일이 생기겠다 싶어 아이를 쌀가마니로 눌러 죽였다. 그 누르는 도구도 다양해서 기름틀이나 맷돌이기도 하다. 또 어떤 자료에서는 아이가 부모에게 자신을 왜 죽이려 하느냐고 묻고는 자기 날개의 비늘을 하나 떼어내면 자신을 죽일 수 있다고 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하여튼 그렇게 아기장수는 부모에게 죽임을 당하고, 그 순간 용마가 나타나 세 번을 힝힝 울고는 사라졌다거나 용마도 연못에 빠져 죽었다거나 그렇다.

조선 태조 이성계 어진 청룡포본. [사진 Wikimedia Commons]

조선 태조 이성계 어진 청룡포본. [사진 Wikimedia Commons]

이 이야기는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불쾌감을 주기 십상이다. 이야기에 빈 부분이 너무 많아 무슨 내용인지 알아보기 어렵다는 반응부터 어린아이를 부부가 끝까지 죽이려 했다는 것에서 잔인함을 느끼기도 한다. 날개 달고 태어난 비범한 아이. 이 아이를 이대로 살게 해서는 안 된다는 기성세대의 두려움, 자식을 부모의 손으로 죽이는 일이 가능하다는 생각, 버둥거리는 아이를 어떻게든 죽이려고 쌀가마니를 두 개, 세 개 계속 쌓아가는 집요함 등은 실제 부모 입장에 있는 독자에겐 거부감을 줄 수밖에 없다.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일을 떠올리며 지레 겁먹고 아이를 끝없이 누르는 모습이 편안할 리는 없다.

아기장수 이야기가 이성계 이야기와 결합하는 경우는 이렇다. 이성계가 임금이 될 마음을 먹고 각 산천에 산제를 드리며 다녔다. 산신들이 모여 회의를 열었다. 다들 이성계를 인정하는데, 지리산 산신만 아기장수 편을 들며 왕이 될 인물은 아기장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성계가 그걸 알고 아기장수의 어머니를 찾아가 위협을 해 아기장수의 위치를 알아냈다. 아기장수는 바위 밑에서 군사를 막 일으키던 참이었다. 이성계 일당에게 발각되자 그 자리에서 죽어 버렸고, 이성계는 임금이 된 뒤에 경상도에 있던 지리산을 전라도로 귀양 보냈다는 것이다.

어쨌든 아기장수는 나라를 뒤집어엎을 큰일을 벌일 만한 인물로 여겨졌던 것이다. 지리산 산신만 그걸 믿고 다른 산신들은 다들 이성계 편을 들었다는 것은 상다리 휘어지게 차려 올린 젯상과 떡밥에 현혹된 탓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또 한편으로는 아기장수는 아직 한참 모자라는 인물이라는 냉철한 판단일 수도 있겠다.

아기장수 이야기는 언젠가는 세상에 나타나 도탄에 빠진 민중의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켜 줄 구원자에 대한 믿음이 반영된 것이다. [사진 pixabay]

아기장수 이야기는 언젠가는 세상에 나타나 도탄에 빠진 민중의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켜 줄 구원자에 대한 믿음이 반영된 것이다. [사진 pixabay]

이 이야기를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 주목하여 보자면, 남과는 다른 특별한 아이를 부모가 감당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다. 아기장수는 날개가 달렸거나, 상체만 있어 우투리로 불리거나, 세 살이 되도록 말을 할 줄 몰랐다가 어느 날 자신을 찾아온 장군에게 당차게 대꾸하고 곡식으로 군사를 만들어내는 인물이다. 그냥 두면 장래 무슨 일이든 벌이고야 말 것이다. 그런데 이런 아이나, 이런 아이가 장차 벌일 그 일을 어른들은, 즉 기존 세상은 감당하기가 힘들다. 그러니 지레 겁먹고 싹부터 자르려 든다.

또 한편으로 시각을 바꾸어 생각해 보면, 이 아이가 정말 세상에 큰일을 낼 인물이었다면 바위 아래에서 자신의 군사를 일으키던 순간 발각되었을 때 더욱 당차게 뛰쳐나가 자신을 억압하는 기존 세상의 힘에 맞서 싸웠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바위가 들어 올려지는 순간 스스로 재가 되어 사그라져버렸다. 그 역시 이 세상을 감당할 힘이 없었던 것이다.

‘감당하기’를 주제어로 하여 이 이야기를 곱씹어보면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진다. 언젠가는 세상에 나타나 도탄에 빠진 민중의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켜 줄 구원자에 대한 믿음이 반영된 이야기로 보기도 하는데, 아쉽게도 이야기 속 장수는 아직 ‘아기’ 형상이다. 세상도 그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그 스스로도 세상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어느 누구 하나 완벽하게 완성된 상태에서 세상을 이끌어가거나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자꾸 크게 생각할 것도 없이, 그저 한 사람 인생 살아가는 과정도 그러하다. 나는 여전히 나이만 먹었지 아기 같은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고 매일 초보운전자 같은 떨림을 안고 내게 주어진 문제에 맞선다. 그러면서 나를 알아주지 못하는 세상이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아기장수가 바위 밑에서 곡식 알갱이들로 군사를 만들어 훈련하듯 하루하루 뭔가를 해 나가기도 한다.

부모 입장에서는 내 아이에게 날개가 달렸음을 알아차렸을 때 세상에 섞이지 못하고 불미스런 일이나 벌이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기보다 그 날개를 어떻게 펼치고 날아오르게 할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보통의 날개 없는 사람들처럼 살기를 바라며 그 날개를 부모가 먼저 잘라버리는 일만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없던 날개도 생겨나도록 키워주지는 못할망정.

건국대학교 상허교양대학 초빙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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