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아들에게 소를 지붕 위에 올리라고 한 부자 아빠

중앙일보

입력 2021.04.28 10:00

[더,오래] 권도영의 구비구비옛이야기(59)

어느새 5월이다. 햇볕은 따뜻하고 바람결은 한껏 부드러워졌다. 식민지 시절, 나라가 바로 서려면 어린이가 올바르게 자라야 한다고 생각한 방정환에 의해 어린이날이 만들어졌다. 그로부터 50년 뒤 어버이날이 만들어졌다. 그 기원을 찾아보니 ‘어른 봉양과 경로사상 확산’, ‘국민정신 계발의 계기’, ‘우리 실정에 맞는 복지사회 건설에 기여’ 등의 문구가 눈에 띈다. 국가 사회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만들어진 날이라면, 그래서 5월이 ‘가정의 달’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면 가정을 위해 서로 생각하고 의미를 되새기며 선물도 하고 맛있는 것을 먹고 여행도 가고 하는 풍습을 갖게 된 것은 결국 국가 사회에 이바지하기 위한 일이 되기도 한다.

1923년 어린이날 포스터.

1923년 어린이날 포스터.

‘가정의 달’의 의미를 새삼스럽게 살피다 보니 무슨 선물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할 일만도 아닌 것 같다. 어떤 날이어서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보다 우선 부모는 자녀를, 자녀는 부모를 대하는 태도는 국가 사회의 안정까지 갈 것도 없이 당장 오늘 하루 우리 삶의 질을 좌우하는 중차대한 일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시작이야 어찌 되었건 다가오는 어린이날, 어버이날이 새삼스러워진다. 최근 들어 아동 학대 사건이 연일 보도되고 있고, 정인이 사건으로 알려진 양천구 아동 학대 살인 사건은 지난 4월 14일 결심공판에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혐의가 적용돼 양모에게 사형이 구형되었다. 최종 판결 과정이 남아 있지만 아동 학대 사건 중에서 사형이 구형된 일은 이례적인 것이라고 한다.

폭력이 발생하는 구조는 힘과 지위에서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존재와 열위에 있는 존재 사이에서 형성되며, 우위를 차지한 자, 혹은 우위를 차지하려는 의지를 가진 자가 자신의 힘을 과시하면서 상대를 굴복시키려고 할 때 공고해진다. 부모와 자녀의 일차적 관계는 부모가 스스로를 어떤 위치에 놓느냐에 따라 자녀에 대한 태도가 결정되며 폭력의 구조를 형성하기도 한다.

이런 사건을 접하면서 보통의 부모는 ‘아, 나도 부모로서 혹시 아이에게 가혹했던 면이 있는 것은 아닌가’, 혹은 ‘내 아이를 더 사랑해야지, 저런 일 겪지 않게 해야지’ 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아동 학대 사건을 분석한 심리학자가 과도하게 분노하는 부모도 사실은 건강한 상태라고 하기 힘들다고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 돌봄, 보살핌, 양육, 훈육 등 어떤 용어로 표현하든 부모 입장에서 자녀가 온전한 한 주체로서 이 세상에서 제 몫을 해내는 인간으로 커나가길 바라지만 실제로 그렇게 건강한 성인으로 키워낸다는 것은 손에 꼽을 만한 부담감을 주는 일인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학대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마냥 예뻐할 수도 없기에 그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 속에서 가슴만 바짝바짝 말라가는 거다.

정인이 사건으로 알려진 양천구 아동 학대 살인 사건은 지난 4월 14일 결심공판에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혐의가 적용돼 양모에게 사형이 구형됐다. [중앙포토]

정인이 사건으로 알려진 양천구 아동 학대 살인 사건은 지난 4월 14일 결심공판에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혐의가 적용돼 양모에게 사형이 구형됐다. [중앙포토]

옛날에 산골에 사는 한 부부가 한참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아 걱정하다가 아들 하나를 낳게 되었다. 산골에서 살면서 적적했던 부부는 아이를 무척 귀여워했고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말도 곧잘 알아듣고 행동이 날렵해졌다. 어느 날 저녁, 밥상도 치우고 나서 산골의 기나긴 겨울밤 할 일도 없어 심심했던 부부는 아들을 데리고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아이에게 아버지 수염을 잡아당겨 보라고 했고, 아버지는 어머니 뺨을 때려 보라고 했다. 아이가 시키는 대로 곧잘 하니까 부부는 그게 재밌어서 저녁마다 그렇게 장난을 하였다. 하지만 귀여운 장난도 하루 이틀이다. 이 아이는 장성해 열댓 살이 되도록 아버지 수염을 잡아당기고 어머니 뺨을 때리며 인사를 하였다. 부부는 아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맞다 보니 몸이 성할 날이 없었고, 이제 아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말도 편하게 하지 못하고 “아드님, 이러셨는가, 저러셨는가” 존대하면서 무서워했다.

어느 날 아랫마을 이생원이 이 집에 놀러 왔을 때 부부가 이런 일을 말하며 하소연하니 이생원은 아들을 자기 집에 하루만 보내라고 했다. 그날 산골 아들은 이생원을 따라가 이생원의 아들들과 하루를 보냈다. 이생원의 두 아들은 아침저녁으로 부모에게 문안을 드리고 식사 때는 반찬을 살뜰히 챙겨 드렸으며 저녁엔 방이 따뜻한지 살피고, 이부자리도 봐 드린 후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산골 아들은 이런 모습을 보고 크게 깨달아 그날 이후로는 부모에게 잘하였다고 한다.

지붕 위에 소를 올리라는 아버지. 그 아들은 아버지의 황당한 요구에도 일단 따르려고 하는 태도를 보였다. 두 사람 사이에 쌓인 신뢰가 바탕이 되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사진 pxhere]

지붕 위에 소를 올리라는 아버지. 그 아들은 아버지의 황당한 요구에도 일단 따르려고 하는 태도를 보였다. 두 사람 사이에 쌓인 신뢰가 바탕이 되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사진 pxhere]

그런가 하면 이런 집도 있다. 어느 가난한 사람이 잘사는 친구를 찾아갔다. 자신도 좀 잘살아보고 싶으니까 한 수 배움을 청하려던 것이었다. 부자 친구는 아들을 부르더니 지붕 위에 소를 올리라고 하였다. 아들은 얼른 외양간에서 소를 끌고 나와 한참을 낑낑거렸다. 부자 친구는 이렇게 집안에 기강이 잘 잡혀야 잘사는 거라고 했다. 가난한 사람은 집에 돌아와, 아들을 불러 소를 지붕에 올려 보라고 했다. 가난한 사람 아들은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고 하더니 문을 쾅 닫으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마냥 귀여워만 하면 버릇 나빠진다고 하는 말은 산골 부부 같은 모습 때문에 나왔을 것이고, 효자는 부모가 만든다는 말도 결국 부모가 자녀를 대하는 태도에 따라 자녀가 부모를 대하는 태도도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나왔을 것이다. 부자 친구의 아들이 아버지의 황당한 요구에도 일단 따르려고 하는 태도를 보인 것에는 그 이전부터 이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쌓인 신뢰가 바탕이 되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적어도 강압적인 훈육에 의한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필리핀에서는 파인애플이 된 아이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한다. 피나라는 아이와 엄마가 살았다. 엄마는 아이를 애지중지하였고 그 덕에 아이는 자기만 아는 제멋대로인 아이가 되었다. 하루는 엄마가 병이 나서 피나에게 죽을 쑤어 달라고 했는데, 피나는 쌀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 누워 있는 엄마에게 계속 이것저것 물어야 했다. 화가 난 엄마는 피나에게 눈이 백 개, 천 개 있으면 좋겠다며 짜증을 냈다. 다음날 엄마가 잠에서 깨어 보니 아이는 온데간데없고 눈이 백 개 달린 열매가 하나 덩그러니 있었다. 그것이 파인애플이라는 것이다.

부모의 사랑과 욕구가 일방적으로 앞설 때 자녀는 주체적인 존재로 설 수 없다. 정말 바라던 대로 눈이 백 개 달린 존재가 되긴 했지만 그것은 더이상 피나가 아니었다.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이지만 그렇다고 귀여운 짓만 생각하면서 부모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채 마냥 예뻐하기만 해도 문제가 생긴다. 집안이 바로 서고 발전하길 바란다면 부모는 적당한 권위를 보여줄 수도 있어야 한다. 여기에 신뢰가 깔리도록 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안정된 정서와 인식을 갖춘 성인으로 설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함께한다는 인식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며 인간적으로 부족했던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면서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는 부모라면, 적어도 폭력의 구조 속에 부모와 자녀 관계를 놓아 버리는 어리석음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건국대학교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 연구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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