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엄마 잡아 먹고 쫓아오는 호랑이 골탕먹인 오누이

중앙일보

입력 2021.05.26 10:00

[더,오래] 권도영의 구비구비옛이야기(60)

흔히 전래동화라고 부르던 우리 옛이야기는 어린 시절에 할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나 그림책 혹은 ‘전설의 고향’이나 ‘배추도사 무도사’ 등에서 본 장면으로 기억한다. 그마저도 지금 중년 세대에게는 몇십 년 전의 일이니, 어제가 전생인 기억력 속에서 이야기 한 편이 온전하게 줄거리를 보존하며 자리 잡고 있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결정적 대사 하나쯤은 저장되게 마련인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 나오는 호랑이의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는 대사일 거라고 혼자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각자에게 남겨진 기억은 그 사람 고유의 것이라, 그 자체가 해석의 여지를 갖는다. 이쯤에서, 어린이용 그림책에서는 잘 표현하지 않는 구연자료 그대로의 본래 장면을 소개한다.

깊은 밤 깊은 산속에서 나타난 호랑이는 어머니를 야금야금 먹어치운 뒤 어머니의 옷을 뒤집어쓴 채 아이들에게 갔다. [사진 pixabay]

깊은 밤 깊은 산속에서 나타난 호랑이는 어머니를 야금야금 먹어치운 뒤 어머니의 옷을 뒤집어쓴 채 아이들에게 갔다. [사진 pixabay]

“이렇게 한 고개를 훌훌 넘어오니까루 호랑이가 ‘아주머니, 아주머니 그게 뭐유? 그거 주면 안 잡아 먹지’ 그러더래요. 그래서 한 모 주고, 한 모 주고, 그냥 다 주고서는, 나중에는 함지꺼정 다 뺏기고, 인저 그 수족꺼정, ‘팔 한짝 잘라주면 안잡아 먹지’ 그래서- 그러니깐 그 호랑이가 자꾸 고개 넘어가며 그러는 거유. 다른게 아니고. 그래서 인저 한 고개 훌훌 넘어가니까 팔꺼정 다리꺼정 죄 짜르고, 대가리만 대굴대굴 굴러갔더래유….” (『한국구비문학대계』 1-9, 209-212면, 이동면 설화3, ‘해와 달이 된 오누이’)

함지까지 다 빼앗은 호랑이는 이제, “팔 한 짝 잘라주면 안 잡아먹지”라고 했다. 팔 한 짝 잘라주었더니 나머지 팔을 요구하고, 또 나타나서는 “다리 한 짝 잘라주면 안 잡아먹지” 해 다리 한 짝 잘라주었더니 나머지 다리를 요구했다. 그렇게 팔, 다리, 몸통까지 호랑이에게 내어주고 나중엔 머리만 남아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그런데 호랑이는 왜 떡이든 팔이든 다리든 그렇게 한 짝씩 요구하면서 한 고개 한 고개 넘을 때마다 계속 나타난 것일까. 우리가 흔히 아는 호랑이는 “어흥”하고 포효하면서 나타나 사람도 한입에 꿀떡 삼켜버리는 무서운 짐승이 아니던가. 게다가 어머니가 남의 집 일을 해주고 받아온 것은 떡이기도 하고 위의 예문처럼 묵이기도 하고, 범벅이나 팥죽, 밥이기도 하다. 무엇이 되었든 육식동물인 호랑이가 탐낼 만한 먹거리는 아니다. 그런데 왜 호랑이는 떡을 내놓으라고 했을까? 그것도 ‘한 번에’, ‘함지에 든 거 통째로’가 아니라 고개 하나 넘을 때마다 하나씩 그렇게 야금야금 삼켜가는 것일까. (이런저런 과정 없이 그저 언덕에서 나타나 엄마를 잡아먹어 버리는 자료도 물론 있다. 하지만 대세는 역시 하나씩 하나씩 앗아가는 것이다)

남의 집 일을 해주고 잔뜩 피곤해진 몸을 이끌고 깊은 밤 깊은 숲을 지나던 어머니에게 호랑이가 나타났을 때 어머니는 호랑이가 달라는 대로 다 주었다. 호랑이는 어머니를 잡아먹은 뒤 어머니의 옷을 입고 어머니 행세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찾아갔다.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어머니. 어머니를 잡아먹은 호랑이. 그러다 보니 이 호랑이는 어머니 본인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해석되기도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이야기를 처음 들은 일고여덟 살쯤의 아이가, “우리 엄마가 이 호랑이 같아요.” 하고 소리쳤다는 이야기를 한 교사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심지어 호랑이가 어머니를 잡아먹는 장면을 통쾌하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물론 아이들이 접하는 책에는 팔, 다리, 몸통을 차례대로 떼어주는 장면은 잘 등장하지 않는다. 어떤 책에서는 아예 어머니가 잡아먹히는 장면 없이 호랑이가 아이들만 있는 외딴집에 찾아오기도 한단다.

이야기는 우리 삶의 어떤 장면을 일상적이지 않은 상황과 모습으로 형상화해 드러낸다. 그 상징을 하나하나 분석하다 보면 뜻하지도 않은 발견에 이르게 된다. 결국 여차저차해 오누이는 하늘의 해와 달이 되는데, 이것을 아이들이 결국 죽음을 맞은 비극이란 해석도 있다. 게다가 호랑이가 썩은 동아줄을 타는 바람에 수수밭에 떨어지고 난 뒤에, 아이들은 나무에서 내려와 다시 살아갈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고 보면, 아이들이 하늘의 해와 달이 되었다는 것은 해피엔딩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지만, 또 그렇게 보고 싶지는 않은 저항감이 일기도 한다. 호랑이에게 쫓기던 아이들이 결국 죽어서 해와 달이 된 슬픈 이야기라면 여태까지 이토록 살아남아서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대강의 줄거리 정도는 떠올릴 수 있는 이야기로 전승되고 있었을까. 이 이야기가 가진 힘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하늘의 해와 달을 고귀한 존재로 본다면 오누이가 스스로 성취한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우리 자녀들은 모두 그런 존재이지 않을까. [사진 pxhere]

하늘의 해와 달을 고귀한 존재로 본다면 오누이가 스스로 성취한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우리 자녀들은 모두 그런 존재이지 않을까. [사진 pxhere]

아주 예전에 서울의 한 큰 공원에 옛이야기를 테마로 한 조형물이 있었다. 오랫동안 가보지 않아서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는데, 호랑이에게 쫓기는 오누이의 모습이 잔뜩 겁먹은 채 땀 삐질 흘리는 모습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걸 보고 은사님이 “이 이야기 속 아이들이 정말 겁에 질려서 도망치는 아이들이기만 했을까” 하고 질문을 던지셨다. 그러고 보니 오누이는 호랑이에게서 참 열심히도 도망쳤다. 정말 우리 엄마 맞냐면서 손을 보여달라 하였고, 똥 마렵다 하면서 방 밖으로 나갈 구실을 찾았고, 살기 위해 나무 위에 기어 올라갔으며, 쫓아오는 호랑이를 보고 참기름을 바르고 올라오면 된다고 하여 골탕을 먹이기도 하였다. 그의 설명으로는, 이 아이들은 용감하고 총명한 모습으로 그려져도 틀리지 않다는 것이었다.

부모는 두렵고 힘들어서 마치 호랑이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릴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 두렵고 힘든 것은 어린아이를 양육할 때, 즉 초보 부모일 때만의 일도 아니다. 성인이 된 자녀를 대하는 일은 자녀가 이미 다 커 버린 성인이기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종류의 고난이 있다. 그러다 보니 앞의 그 교활한 호랑이 같은 그런 자신을 어느 날 문득 발견하면서 소름이 끼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아이들은 자기 방식대로, 용감하게 해결책을 찾아 나선다. 그러고는 하늘의 해와 달이 되었다. 낮이든 밤이든 하늘에서 세상을 비추는 존재다. 해가 된 누이동생이 부끄러워하자 오빠가 선뜻 자리를 바꿔주기도 하였다. 우리 아이들은 그렇게 스스로 고귀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이 이야기가 보여주는 것 같다.

건국대학교 상허교양대학 초빙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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