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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경제 성한 곳이 없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4·4분기부터는 회복되리라 던 기대를 깨고 수출이 계속 부진, 10월의 무역 수지가 다시 적자로 돌아섰다.
정부 집계에 따르면 10월중 통관 기준 수출 실적은 52억5천6백만 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0.7% 증가한 반면 수입은 21%나 증가한 53억9천3백만 달러에 달해 1억1백만 달러의 적자를 냈다는 것이다.
수출 증가율이 수입 증가율을 큰 폭으로 밑도는 사태는 연초부터 비롯된 일이고 이제는 으례 그러려니 하는 타성까지 붙어 있을 정도지만 그래도 지난 9월 무역 수지가 흑자를 보였을 때는 누구나 이제부터는 수출도 늘고 우리 경제도 제자리를 잡아가려나 보다 하는 일말의 기대를 품었던게 사실이다.
그런데 그 같은 기대가 불과 한달 만에 깨진 것이다.
물론 10월의 무역 수지 적자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월초부터 국군의 날·개천절·한글날 등 연휴가 겹쳐 공휴일이 많았고 그 외에도 직장마다 가을 야유회·운동회 등으로 일손을 놓는 날이 잦았다. 오죽하면 「놀아도 너무 논다」는 얘기까지 나왔겠는가. 그렇게 놀고도 수출이 잘 되고 무역 수지가 흑자를 내기를 기대했다면 그것부터 잘못된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10월의 수출 실적을 보고 실망과 함께 우려를 감추지 못하는 것은 부진한 수출과 무역 적자가 반드시 계절적 요인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경쟁력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 때문이다.
사실 지난 10개월을 돌이켜 볼 때 뚜렷하게 부각되고 있는 사실은 수출 물량이 계속 감소추세를 보이는 반면 수입은 두자리 숫자의 고속 증가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할 필요도 없이 자원이 없는 우리 나라 경제를 지탱해 온 기본 구조는 외국의 자원을 수입 해다 그것을 가공해 수출함으로써 거기서 떨어지는 부가 가치를 우리 것으로 하는 것이었다. 신흥공업국으로의 부상이나 1인당 국민 소득 4천 달러의 실적도 따지고 보면 그 같은 경제 구조의 산물이다. 그런데 수출 물량은 감소하고 수입은 크게 늘고 있다면 그 동안 벌어놓았던 것을 까먹고 있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미국과 같이 풍부한 자원과 고도의 기술을 가진 나라도 일단 있는 것을 까먹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빚더미에 올라앉는 신세가 되고 있음을 우리는 생생히 목격하고 있다. 하물며 우리와 같이 천혜의 부존 자원도, 남보다 앞선 기술도 없는 나라에서 그 동안 근근이 축적한 얼마 안 되는 소득을 까먹기 시작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지탱될 수 있겠는가. 심각한 문체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는 수출 부진·수입 급증에 그치지 않는다. 수출 부진으로 경기가 침체되고 그 위에 물가 상승·고용 감소·투자 부진 등 온갖 악재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어느 한곳 제대로 돌아가는 곳을 찾기 어렵다. 이래가지고도 90년대 선진국 진입을 꿈꿀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경제 운용의 책임을 맡고 있는 정부의 자세다. 그 동안 정부가 한 일은 수출 지원 정책의 철폐, 원화의 과대 절상, 내수 주도 성장 명목의 소비 촉진, 경제력 집중 억제를 내세운 투자 규제 등 사태를 악화시키는 일만을 해왔다.
그 같은 정부 정책의 밑바탕에 우리 경제에 대한 막연한 낙관론이 깔려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당장 치료가 시급한 중환자에게 건강한 사람이 지켜야 할 문화병 예방의 처방만 내려온 형국이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우리가 처한 상황을 직시, 위기 상황에 대한 국민적 이해의 바탕 위에 위기 극복을 위한 단합된 힘을 결집시키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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