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궁궐 꽃담장 문양에 새긴 옛사람들의 소망

중앙일보

입력 2021.06.06 13:00

업데이트 2021.06.14 09:35

[더,오래] 이향우의 궁궐 가는 길(44)

경복궁에 가면 우리나라의 전통 문양으로 치장된 꽃담을 만날 수가 있다. 꽃담은 공간을 구획하는 담장을 여러 가지 문양으로 치장해 꾸민 담장을 말한다. 꽃담의 문양은 은유다. 그렇게 은근히 품어있는 옛사람의 소망을 읽어보자.

경복궁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 영역은 여성의 공간답게 안팎 담장이 꽃담 치장으로 다른 전각보다 훨씬 아름답다. 교태전 뒤뜰에는 왕비를 위해 조성한 인공 화계(花階)인 아미산이 있는데 왕비의 공간 교태전을 소개하는 지난 글에서 아미산의 선경에 대해 설명했다.

아미산을 신선이 사는 선경으로 꾸미기 위해 아랫단 화계에는 두꺼비가 조각되어 있는 연꽃모양의 물확을 두 개 놓고, 아미산 중턱에는 낙하담(落霞潭)과 함월지(含月池)를 동쪽과 서쪽에 두어 마음으로 고운 석양빛과 눈부시게 아름다운 달빛을 머금은 연지를 감상하게 했다. 그리고 아미산에는 꽃담 치장을 한 아름다운 굴뚝이 있는데 육모 기둥의 벽체에는 각 면마다 여러 가지 꽃과 식물 문양으로 벽면 장식을 하였다.

이제 궁궐의 담장 치장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아미산의 석지가 있는 화계 윗단에는 정성들여 꽃담 치장을 한 굴뚝과 담장을 볼 수 있다. 굴뚝의 각 면에는 용면이나 불가사리 등의 벽사(辟邪) 문양과 함께 십장생, 사군자, 만자문, 당초문 등의 길상문을 구워 박아서 자칫 칙칙해지기 쉬운 굴뚝을 아름다운 조형물로 표현하였다.

궁궐의 담장이나 장식물의 치장은 어떤 형상을 보이거나 글자문양이거나 기하형태이거나 매우 다양하다. [사진 이향우]

궁궐의 담장이나 장식물의 치장은 어떤 형상을 보이거나 글자문양이거나 기하형태이거나 매우 다양하다. [사진 이향우]

아미산의 조형물은 아주 차원 높은 차경(借景)문화로 볼 수 있는데, 그 화단의 뒤편과 교태전 영역을 에워싸고 있는 담장의 치장을 눈여겨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실은 궁궐 담장의 화려한 치장은 주로 여성의 공간에 집중적으로 나타나지만 경복궁의 경우는 이미 강녕전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강녕전 뒤편은 교태전 남행각 담장이다. 교태전 남행각 담장에 붙어 있는 2기의 굴뚝은 양의문을 가운데 두고 동쪽의 굴뚝은 천세만세(千世萬歲)로 읽을 수 있고, 반대편의 굴뚝 문양은 만수무강(萬壽無疆)이다. 모두 왕실의 번영과 건강을 기원하는 길상문이다.

이처럼 궁궐의 담장이나 장식물의 치장은 어떤 형상을 보이는 경우나 글자문양이거나 기하형태이거나 매우 다양하다. 그런데 그 치장에 보이는 형상의 의미를 모르고는 왜 그런 문양이 장식에 쓰였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그 예로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19가 세계적으로 창궐하면서 코로나19의 발원지인 중국에서 박쥐가 병원균을 퍼뜨린 바이러스 숙주로 의심받고 있다. 박쥐는 억울한가? 그 박쥐가 궁궐에 여기저기 나타난다는 것을 아는 이 또한 드물다. 그것도 몇 마리 정도가 아닌 아주 많은 박쥐가 궁궐의 곳곳을 장식하는 이유를 파악하려면 그 의미를 알아야한다. 우리는 궁궐의 꽃담장에 새긴 문양으로 옛사람들이 소망했던 은유를 읽어야 그들과 소통할 수 있다.

기하문양

기하문양은 꽃담 장식의 기본 패턴으로 주로 직선을 사용한 기하학적인 정형을 이룬다. 기하문양의 종류로는 귀갑문(龜甲·석쇠문), 뇌문(雷), 고리문(連環), 만자문(卍), 바자문, 빙렬문(氷裂)이 있고, 그 용도는 꽃담 구획의 윤곽선을 두르거나 강조할 때도 쓰이지만 기하문양의 형태적 특성과 연결된 의미로 구성되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다.

뇌문(雷), 고리문(連環)-무시무종(無始無終)
번개가 치는 형상을 의미하는 뇌문은 직선 무늬를 단독으로 쓰거나 다른 형상문양의 윤곽을 장식하기도 한다. 아(亞)자문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 문양은 둘러서 길게 썼을 경우 시작과 끝이 없는 무시무종(無始無終)으로 무한한 영원성을 의미한다. 같은 의미를 지닌 문양으로 곡선으로 고리를 연결한 연환무늬가 있다. 도자기에는 투각으로 주로 표현되며 고리가 위아래로 계속 연결되는 형태는 칠보무늬(七寶)라고 부른다. 창덕궁 낙선재 뒤편 꽃담의 구성은 검은 반반전과 흰 화장줄의 흑백 대비로 직선과 곡선 무늬가 주는 아름다움을 보여 주고 있다.

만자문(卍)

천지조화의 이치 표현한 만자((卍)문. [자료 문화포털]

천지조화의 이치 표현한 만자((卍)문. [자료 문화포털]

만자문양을 태극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만자의 형태적인 특성에서 보이는 불교적인 성향이라기보다는 우선 선의 변화에서 그 구성의 아름다움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만자무늬는 꽉 채워진 충만을 의미하기도 하고 천지조화의 이치를 이 무늬에 표현하고 있다.

귀갑문(龜甲)

육각형의 연속무늬인 귀갑문은 거북의 등껍질 문양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역시 석쇠의 그물 짜임을 닮은 데서 석쇠문이라고도 부른다. 그 형태적 특성을 볼 때 거북이 오래 사는 동물이므로 장수를 의미하고 온갖 악귀가 망에 걸려 통과하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벽사의 의미도 지녔다. 귀갑문의 육각형 중앙에는 꽃문양이 수놓아져 있는데 악귀를 방어하고 나서는 화사한 꽃처럼 행운이 가득하기를 바라는 길상(吉相)을 상징하는 것이다.

바자문(삿자리문)

경복궁 자경전 서벽 바자문. [사진 이향우]

경복궁 자경전 서벽 바자문. [사진 이향우]

전돌과 화장줄눈이 정확한 규격으로 배치되어 바구니나 자리를 짠 것 같은 형태의 무늬를 바자문이라고 한다. 바자문은 수직으로 표현되는 것과 사선을 표현되는 것이 있는데 전체 벽면의 구성에 맞추어 배치한다. 석쇠문과 같은 벽사의 의미를 가졌다. 경복궁 자경전 서쪽 안 담장에는 수직으로 구성된 바자문을 볼 수 있는데, 정사각형을 이루는 화장줄눈 사이에 작은 꽃 형태의 전돌을 박아 넣어 점선 무늬를 이루었다. 작은 꽃 전돌에는 꽃술까지도 표현해 그 섬세함에 놀라게 한다.

빙렬문(氷裂)

자경전 서쪽 담장 맨 끝에 나타나는 빙렬문은 그 형태가 마치 얼음이 깨진 것 같은 면구성에서 얻은 이름이다. 또는 옛날 중국에서 폭죽놀이를 할 때 대나무 폭죽을 썼는데 그 폭죽 터지는 소리가 마치 얼음 깨지는 소리와 같았다 해서 빙죽문으로도 불리며 그 소리가 귀신을 쫒는다는 주술적 의미도 있다. 빙렬문은 단독으로 꾸며진 무늬라기보다는 면의 구성에 다른 형상을 채워 넣는 무늬기법이다. 자경전 꽃담의 빙렬문은 각종 꽃과 나비, 벌이 면마다 배치되어 화려한 조화를 보여주고 있다. 빙렬에 꽃과 벌 나비가 등장하는 것은 나쁜 기운을 막아낸 끝에 집안이 화목하기를 바라는 의미이다.

조각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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