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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타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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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조현숙 기자 중앙일보 기자
조현숙 경제정책팀 차장

조현숙 경제정책팀 차장

지난달 25일 한 아빠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네이버 노조 ‘공동성명’은 “고인이 생전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와 위계에 의한 괴롭힘을 겪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입장문을 냈다. 네이버는 일이 있고 일주일 만인 지난 1일에야 관련 임원들에 대한 직무 정지 조치를 내렸다.

이 사건이 한국 직장 사회에 던진 충격은 크다. 드문 일이라서가 아니다. ‘네이버 너마저’란 깊은 실망감 때문이다. 살벌하기로는 세계 유수로 꼽히는 한국 기업 문화 속에서 수년 넘게 버텨온 회사원이라면 직장 내 괴롭힘은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늘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다.

몇 년 전 지인이 직접 겪은 일이다. 상사의 과도한 실적 요구와 폭언으로 우울증을 앓던 같은 회사 직원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런데 이 직원을 자살로 내몬 상사가 상주인 양 장례식장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큰 소리로 떠들고 있더란다. 어느 공포영화보다도 더 무서운 이 장면이 도시 괴담이 아닌 현실인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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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는 더 무서운 현실을 보여준다. 미국 같은 선진국과 달리 한국 정부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자살을 공식 통계로 다루지 않는다. 지난해 6월 중앙자살센터가 발간한 ‘2020 자살예방 백서’가 그나마 최근 수치를 가늠하게 한다. 백서에 따르면 2018년 487명이 직장 또는 업무상의 문제로 자살을 선택했다. 그해 가해로 인한 사망(타살)은 397명(통계청 사망 원인별 통계)이었다. 살인범 손에 목숨을 잃은 사람보다 직장 상사나 동료의 폭언과 폭행, 따돌림 속에 죽어간 사람이 100명 가까이 더 많았다.

통계가 말해주듯 직장 내 자살, 아니 직장 내 타살을 일으키는 그들은 살인범 못지않게 위험하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태가 그들만큼 극단적이지 않을 뿐이다.

리더십 전문가인 장 프랑수아 만초니는 저서 『확신의 덫』에서 개인은 물론 조직까지 파멸로 몰고 가는 직장 내 괴롭힘의 일상성을 경고했다. “직장 내 괴롭힘 중에 신체적인 위협이나 협박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불공평하고 과도한 비판, 공개적인 모욕, 따돌림, 업무 목표를 반복적으로 바꾸거나 비현실적인 목표치를 부여하는 것, 직원 노력 폄하, 소리를 지르거나 언어적 학대를 가하는 경우가 전형적이다.”

가해자는 바뀌지 않는다. 해법은 하나다. 경영학자 미첼 쿠지와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홀로웨이가 쓴 책 『썩은 사과』에서 강조한 완전한 제거(terminate)다. 가해자 해고나 처벌만 얘기하는 게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까지 오염된 조직 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회사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고 그는 경고한다. 달라져야 우리도 살아남는다.

조현숙 경제정책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