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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노후준비…은행적금보다 못한 퇴직연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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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김성일의 퇴직연금 이야기(83)

퇴직연금이 노후준비 방법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적립금의 규모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근로기간 동안 퇴직연금에 가입해 장기적인 자산운용으로 적립금을 키우려는 노력을 해야한다. [사진 pxhere]

퇴직연금이 노후준비 방법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적립금의 규모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근로기간 동안 퇴직연금에 가입해 장기적인 자산운용으로 적립금을 키우려는 노력을 해야한다. [사진 pxhere]

‘국민은 퇴직연금을 노후준비수단으로 보지 않는다’.

요사이 언론에서 퇴직연금 관련 통계 중 가장 많이 다루어지는 것이 적립금 규모의 성장이다. 2020년 말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255조5000억원으로 전년(221조2000억원) 대비 34조3000억원(15.5%) 증가했다. 2018년 말과 2019년 말은 각각 190조원, 221조2000억원이었다([그림1] 참조).

하지만 이 같은 양적 성장과 달리 미숙한 적립금 운용, 노후대비 수단으로서의 낮은 활용도, 연금보다는 일시금 선호 등 질적인 측면에서의 발전은 제도가 도입된 지 17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더디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아래 〈그림2〉와 같이 계좌 기준 연금 수령비율이 극히 낮기 때문이다. 결국 적립금의 규모가 연금수령의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격년으로 실시하는 통계청의 사회조사에서 2019년 노후준비방법으로 퇴직급여(퇴직연금+퇴직금)를 꼽은 응답자 비율이 공적연금, 예·적금 등 저축성상품, 사적연금, 부동산보다 낮은 4.1%로, 2015년 3.9% 대비 0.2%포인트 증가에 그쳤다. 결국 〈그림2〉에서 연금 수급률이 낮은 것이 설문조사에서도 그대로 나타나 노후준비수단으로서의 퇴직연금 활용도가 여전히 낮다는 점을 의미한다.

퇴직연금 제도 도입이 대형 사업장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고, 10인 미만 영세사업장의 대다수가 사각지대로 남아 있어 영세사업장 근로자의 퇴직급여 수급권이 위협받고 있다. 도입률은 사업장 크기에 비례하고 있는데, 5인 미만 사업장의 도입률이 12.1%, 5인 이상 10인 미만 사업장은 29.4%에 그치고 있다. 적립금 규모가 작아 퇴직연금사업자에게 고비용·저수익 구조일 수밖에 없어 이들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이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정부는 3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제도를 도입하도록 함으로써 어느 정도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퇴직연금이 노후준비 방법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적립금의 규모를 키우는 것이다. 근로기간 동안 퇴직연금에 가입해 장기적인 자산운용으로 적립금을 키우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저금리 기조가 장기간 지속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020년 퇴직연금 적립금 운용에서 차지하는 원리금 보장상품의 비중이 89.3%에 달했다. 확정급여(DB)형의 경우 이것은 문제가 안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정해진 퇴직급여를 기업이 보장해 주고 운용 주체도 기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확정기여(DC)형이나 개인형퇴직연금(IRP)에서 원리금 보장상품 위주의 자산운용은 적립금 규모를 키울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원리금보장상품 위주의 자산운용은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자신의 적립금 가치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아래의〈표1〉에서와 같이 원리금 보장상품 수익률이 너무도 저조하다. 실적배당형 상품으로 운용했다면 수익률의 부침은 있다 해도 시간의 경과에 따른 평균 수익률은 꽤 높게 나온다는 것을 가입자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퇴직연금은 잦은 중도인출과 개인형 IRP의 해지로 인해 적립금의 규모가 줄어들고, 연금화로 이어지지 못해 제도 도입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에 퇴직연금을 중도에 인출한 가입자는 전년 대비 1.8% 증가(7만 2000명 → 7만 3000명)했고, 인출 금액은 7.6% 늘어난 총 2조 8000억 원에 달했다. 근퇴법상 사용자의 의무인 가입자 교육이 부실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근로자의 투자 의사 결정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제도에 대한 무관심 또는 냉소적 태도를 조장하고 있다. 실제로 가입자 교육은 사용자와 가입자의 인식 부족이나 비용부담을 이유로 사업자가 무보수로 수행하고 있어 질적·양적으로 퇴보해왔다.

이번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은 가입자 교육 전문기관이 위탁 교육을 가능하게 했다. 그들의 전문력을 활용해 가입자 교육의 획기적 개선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즉, 지금까지의 교육내용의 부실화, 교육이행의 형식화, 교육인력의 비전문성 등 가입자교육 문제의 배경은 ‘무료’였다.

투자방법에 대한 가입자의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원리금보장형 같은 사용자나 사업자가 유도하는 상품을 선택하기 쉽고, 그 결과가 저조한 수익률로 나타나면 제도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누구도 입 밖으로 말을 잘 꺼내지 않지만, 퇴직연금제도는 결코 손쉬운 제도가 아니다. 우리는 너무 어려운 제도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아쉽게도 아직은 이를 해결할 방법이 잘 보이지 않는다. 특히 가입자를 중심에 두고 가입자의 노후복지를 우선하는 제도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문제 해결 접근법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CGGC(Consulting Group Good Company)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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