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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굴리기’허용되는 DB형, ‘묻지마 원금보장’ 사라지나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성일의 퇴직연금 이야기(82)

지금까지 DB형 근로자는 사전에 확정된 금액의 퇴직급여를 받으면 되었지만, 적립금운용계획서 의무화에 따라 수익과 위험의 변화에 영향을 받게 됐다. [사진 pixabay]

지금까지 DB형 근로자는 사전에 확정된 금액의 퇴직급여를 받으면 되었지만, 적립금운용계획서 의무화에 따라 수익과 위험의 변화에 영향을 받게 됐다. [사진 pixabay]

지난 3월 24일 국회에서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일부가 개정되었다. 그중 하나가 확정급여형 퇴직연금제도(DB)를 도입한 300명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적립금 운용목적 및 방법, 목표수익률 설정, 운용성과 평가 등이 포함된 적립금운용계획서(Investment Policy Statement. IPS) 작성을 의무화하고, 이를 심의하기 위한 적립금운용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한 것이다.

그동안 DB형 근로자는 제도 운영에 대해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아도 사전에 확정된 금액의 퇴직급여를 받으면 되었지만, 적립금운용계획서가 의무화하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질 수 있다. 물론 회사가 책임지고 근로자의 퇴직급여를 주는 것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지만 적립금운용계획대로 자산운용을 할 경우 수반되는 수익과 위험의 변화는 근로자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적립금운용계획서란 주어진 투자기간 동안 적립금 운용의 위험·수익률에 대한 목표, 위험 감내 수준 등을 규정한 문서를 말한다. 여기에는 적립금운용위원회에 참여하는 노사 간의 자산운용 욕구, 퇴직적립금의 유동성, 수수료, 법·규정과 관련된 사항, 기업이 처한 특수상황 등과 같이 투자 시 고려해야 하는 제약사항을 반드시 포함하여야 한다. 적립금운용계획서에 기재된 투자목표 달성을 위해 적절한 포트폴리오를 체계적인 방식으로 구축하고 유지·관리하기 위한 과정이 포함된다. 이런 적립금운용계획서의 예는 아래 〈표1〉과 같다.

DB형에 왜 적립금운용계획서 작성을 의무화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20년 DB형의 적립금 규모는 153조9000억원(전년 대비 15조9000억원, 11.5% 증가)이었고 DC(확정기여)형 및 기업형 IRP는 67조2000억원(전년 대비 9조4000억원, 16.3% 증가)이었다(〈그림1〉 참조). DB형이나 기업형 IRP의 증가 폭이 DC형보다는 컸다.

그러나 제도별 자산운용 비중을 살펴보면 DB형의 경우, 다른 유형(DC 83.3%, 개인형 IRP 73.3%)에 비해 원리금보장상품 비중(95.5%)이 매우 높았다([그림2] 참조).

결국, 퇴직연금의 수익률이 저조한 이유는 적립금의 60%를 넘는 DB형에서 금리가 갈수록 하락하는 원리금보장상품 비중이 높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이를 개선하고자 적립금운용계획서 작성을 의무화한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러나 이런 적립금운용계획서 의무화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살펴보고 몇 가지 보완 사항을 제시한다.

첫째, 적립금운용계획서 의무화에 따라 발생할 수익과 위험 공유 방안에 대해 노사 간에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DB형에서 적립금운용계획서가 의무화됐기 때문에 계획서에 따라 자산운용을 하게 되면 근로자의 적립금 투자로 생기는 수익과 위험에 대한 배분을 어떻게 할지 충분히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근로자 퇴직급여보장법에서는 DB형의 위험과 수익은 모두 사용자에게 귀속하게 되어 있는데, 이 경우 적립금운용위원회 참여자들이 과도한 위험 수용을 결정할 수 있으므로 이를 사전에 점검할 필요가 있다.

둘째, 최소적립 비율 준수에 대한 엄격한 관리·감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최소적립비율이란 사용자는 근로자의 퇴직급여 수급권 보장을 위해 적립금을 일정 금액 이상 사외에 적립해야 하는 의무를 말한다. 이 비율이 2022년 12월 31일까지 100%로 예정돼 있다. 적립금운용계획서 의무화 적용 시점과 거의 일치한다. 만약 최소적립비율에 미달할 경우 현재처럼 재정안정화계획서 제출로 가름할 것인지 혹은 보다 엄격한 충족의무를 부여할 것인지도 결정해야 할 것이다. 이 문제는 DB형이 가지고 있는 근로자 수급권보호와 직결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더욱더 그러하다.

셋째, 퇴직연금 적립금운용계획서와 기업 ESG 전략 연계방안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다. ESG란 환경보호(Environment)·사회공헌(Social)·윤리경영(Governance)의 약자로 기업이 환경보호에 앞장서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 등 사회공헌 활동을 하며, 법과 윤리를 철저히 준수하는 윤리경영을 지향하는 것을 말한다. 선진국은 적립금운용계획서의 작성에 이를 반영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미국 학계에서도 ESG를 고려한 퇴직연금 기금의 투자가 금융시장 전체를 보호하고 미국 경제의 지속성을 담보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넷째, 퇴직연금 적립금운용계획서 의무화에 따른 가입자교육 개선방안이 논의되어야 한다. 그동안 DB형에 대한 가입자교육은 제도 일반에 관한 내용이나 제도 운용 건전성 점검에 초점을 맞추었다. 적립금운용계획서 의무화와 따라 근로자의 적립금에 직접적인 변동이 생길 가능성이 있고 적립금운용계획서 작성의무가 사용자에게 있으므로 가입자교육 주체도 현재 퇴직연금 사업자에게 위탁하는 것에서 사용자로 넘어갈 전망이다.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일부 개정안 시행은 공포 후 1년이므로 적립금운용계획서 의무화에 따른 파장에 대해 지금부터 노사 간에 착실히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DB형에서 나름대로 논리는 충분히 있었지만 원리금보장상품 위주로 자산운용이 이루어지면서 수익률 증가에 무관심하다는 비판에서 적립금운용계획서 의무화를 계기로 합리적인 변화가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CGGC(Consulting Group Good Company)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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