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민망한 퇴직연금…97% 일시금 수령 원인 알고보니

중앙일보

입력 2021.05.01 14:00

업데이트 2021.05.02 11:02

[더,오래] 김성일의 퇴직연금 이야기(81)

퇴직적립금을 최대한으로 늘리려면 가입자의 임금상승률이 높아야 한다. 하지만 IRP를 활용하면 가입자의 퇴직급여보다도 오히려 더 크게 적립금을 늘릴 수 있다. [사진 hippopx]

퇴직적립금을 최대한으로 늘리려면 가입자의 임금상승률이 높아야 한다. 하지만 IRP를 활용하면 가입자의 퇴직급여보다도 오히려 더 크게 적립금을 늘릴 수 있다. [사진 hippopx]

퇴직연금제는 이름에 분명히 연금이 들어 있는데 연금이라고 말하기 민망한 통계를 우리는 매년 접하게 된다. 퇴직연금제에는 연금 수령 조건이 있는데 연금은 55세 이상으로 가입 기간이 10년 이상인 가입자에게 지급(지급 기간은 5년 이상이어야 함)된다. 다만, IRP(Individual Retirement Pension. 개인형퇴직연금)는 55세 이상의 요건만 충족하면 연금 수령이 가능하다.

이를 전제로 아래의 〈표1〉에서와 같이 2020년 만 55세 이상 퇴직연금 수급을 개시한 계좌(37만4357좌) 현황을 보면 대부분이 일시금을 수령(96.7%, 36만1953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금수령을 선택한 비율은 고작 3.3%(1만2404좌)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를 연금수령 금액 기준으로 살펴보면 전체 8조3048억원 중 28.4%(2조 3565억원)가 연금으로 수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적립금이 많은 계좌일수록 연금을 수령하는데, 계좌당 적립금이 일시금으로 수령한 계좌의 10배 정도는 된다는 의미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표1〉로  일시금 수령 계좌의 평균 수령액은 1643만원이고, 연금 수령 계좌는 1억 8998만원에 달하고 있다. 결국 연금 선택의 결정 요인은 적립금의 크기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면 퇴직연금제에서 적립금을 늘리는 방법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퇴직적립금을 최대한 늘리고, 둘째 납입 기간을 길게 하고, 셋째 중도인출을 최소화하며, 넷째 정부의 세제 지원이 확충되고, 다섯째 적립금을 투자에 활용해 수익률을 높이는 것이다.

우선 퇴직적립금을 최대한으로 늘리려면 가입자의 임금상승률이 높아야 한다. 하지만 IRP를 활용한다면 충분히 적립금을 늘릴 수 있다. IRP를 활용하면 가입자의 퇴직급여보다도 오히려 더 크게 적립금을 늘릴 수 있다. 왜냐하면 연간 700만원(55세 이상은 2022년까지 900만원)까지 납입해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연간 700만원이면 단순 계산으로 연봉 8400만원을 받는 월급쟁이가 퇴직적립금을 쌓는 효과와 비슷하다. 또한 임금 총액 5500만 원 이하의 가입자는 16.5%, 5500만원 초과자는 13.2%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데, 이를 재납입해 투자수익률 4% 전후를 유지한다면 상당한 복리 효과를 거두기 때문에 자신의 적립금을 키우는 지름길이 된다.

문제는 중도인출이다. 확정기여형과 IRP에서는 조건부로 중도인출 기능을 두고 있다. 그 조건 중 핵심은 생애 최초 주택구입자금과 가족 질병치료이다. 물론 자신의 퇴직적립금을 이런 필요 상황에 활용하는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그러나 퇴직연금제를 도입한 대부분의 해외 국가들이 사망이나 질병 등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기본적으로 중도인출을 금지하고 있는 이유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살아가면서 자금이 필요할 상황은 누구에게나 발생하지만, 퇴직연금 적립금만큼은 온전히 노후를 위해 보전해야 더 바람직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확고한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우 필요 자금만큼만 부분 인출하는 방법이 없다는 점은 오히려 해지를 부추겨 적립금 소진을 유발한다.

그리고 중도인출을 했더라도 퇴직연금제의 장점, 예컨대 투자수익에 대한 과세이연을 계속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일시적으로 중도인출해 퇴직적립금을 활용한 경우 중도인출한 금액을 재적립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때 중도인출금에 물린 퇴직소득세를 되돌려주면 소진된 퇴직적립금을 회복할 길이 열린다. 이렇게 하는 것이 새로운 차원의 세제지원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또한 연금으로 수령 시 감세 규모를 더 늘려주는 것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퇴직적립금을 활용해 투자수익을 안정적으로 늘리게끔 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 현재 퇴직연금 수익률이 1%대에 머물고 있어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오히려 마이너스 수익인 상황이다. 이는 금리가 계속 하락하는 원리금보장상품 위주로 퇴직연금 적립금이 운용되기 때문이다.

국회에서는 근로자가 운용지시를 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노사가 합의한 운용방법으로 투자하는 ‘디폴트 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도입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이 제도의 핵심은 투자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가입자를 대신해 자동으로 전문가가 투자를 해주는 기능이다. 한마디로 자본시장의 투자기회를 적절히 활용해 퇴직연금의 운용수익을 끌어올리고자 하는 것이다.

퇴직연금 수익률은 1%대에 머물고 있어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오히려 마이너스 수익인 상황이다. 퇴직적립금을 활용해 투자수익을 안정적으로 늘리게끔 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 [사진 pixabay]

퇴직연금 수익률은 1%대에 머물고 있어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오히려 마이너스 수익인 상황이다. 퇴직적립금을 활용해 투자수익을 안정적으로 늘리게끔 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 [사진 pixabay]

그런데 위험과 수익의 양면을 가지고 있는 투자는 시장 상황에 따라 수익이 유동적일 뿐만 아니라 자칫 원금 손실의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디폴트 옵션을 도입하되 운용 수익률과 관계없이 원금을 보장해주는 ‘원리금보장형’도 포함하자는 주장이 대두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디폴트 제도를 왜 하는지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디폴트 제도로 수익을 올리기 위해선 원금 손실의 위험을 감수하는 투자를 해야만 하는데 원리금 보장은 투자하지 말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본말전도가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디폴트 제도를 도입하는 데 있어 원리금 상품을 넣고 안 넣고는 별문제가 아니다. 근로자에게 왜 디폴트 제도를 도입해야만 하고, 도입 시 어떤 혜택과 위험이 따르는지,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이 제도를 도입하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제도 개선이 과연 퇴직연금 가입자의 입장을 고려하는지 의문이 든다. 퇴직연금제도 잘 모르겠는데 디폴트 제도는 또 무엇인지 누가 속 시원히 설명해 주고 활용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퇴직연금제에는 두 가지가 없다. 첫째는 주인인 가입자가 설 자리가 없고, 둘째는 퇴직연금제의 핵심인 투자가 없다. 제발 시장참여자는 가입자를 보고 선의의 경쟁을 하는 그런 날이 왔으면 한다. 자기들끼리 이익을 나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가입자가 만족해야 퇴직연금제도 있고 시장참여자도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으면 한다.

CGGC(Consulting Group Good Company)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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