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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한 한나라당이 김병준 살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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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일 오전 10시 국회 교육위 전체 상임위가 열렸다. 논문 중복 제출 논란 등으로 도덕성 시비가 일고 있는 김병준 부총리 때문이다. 그는 청문회를 요청했다. 여야는 이날 사실상의 '청문회'를 열어 그의 해명을 듣고 문제점을 추궁키로 했다. 출석한 김 부총리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김 부총리는 모두 발언에서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선 것은 자리에 연연해서가 아니라 진실을 밝히기 위한 절박한 심정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생각하는 '진실'을 밝힌 뒤 사퇴할 가능성이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정치권에서도 이미 소문이 많이 나돌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청문회가 끝난 후 김 부총리가 스스로 사퇴 의사를 밝힌다는 내용이다. 따라서 이날의 상임위는 사퇴하기 위한 절차적인 행사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의원들의 질의가 시작되면서 상황은 꼬이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마이크를 잡은 열린우리당 김교흥 위원은 "국민대 교수 재직 당시 신용우씨 박사 논문 표절 문제"를 집중적으로 물었다. 하지만 그동안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말만 바꿔 다시 물어본 데 불과했다.

두 번째로 질문에 나선 한나라당 이군현 의원. 교총 회장 출신이어서 교육계의 현실을 잘 안다는 평가를 받는 의원이다. 그러나 그는 질문시간 10분을 훈계성 발언으로 채웠다.

▶이 의원=지도교수를 하면서 자신이 박사 논문을 지도하던 당시 성북구청장으로부터 용역을 받고 연구비를 받는 것이 적절한가?

▶김 부총리=적절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 의원=그러니까 지도교수가 제자로부터 용역을 받은 게 맞느냐 아니냐, '예, 아니오'로만 답하라.

▶김 부총리=설명을 드리겠다.

▶이 의원='예, 아니오'라고만 대답하라.

▶김 부총리=….

몰아붙이기로 일관한 의원도 있었다. 한나라당 김영숙 의원은 "내가 질의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기 때문에 해명은 서면으로 듣겠다"고 했다. 같은 당 정문헌 의원도 여러 차례 김 부총리의 답변을 가로막았다.

쳇바퀴 도는 질문들이 이어졌다. 같은 당 의원들끼리도 전혀 역할 분담을 하지 않아 똑같은 질문이 지루하게 이어졌다. 17명의 의원 중 10명이 언론 보도를 예로 들며 '성북구청 제자와의 부적절한 거래' '논문 중복 게재'에 대해 물었다. '논문 표절'에 대해서도 7명이 거의 같은 질문을 했다.

이런 식의 질문이 이어지자 김 부총리는 점점 자신감이 붙는 모습이었다. 중복 논문에 대해 "실무진이 해서 모르겠다"던 기존 입장에서 "학술진흥재단에서 거를 것이기 때문에 중복 논문을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올렸다"며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나중에는 의원들에게 항의도 했다. 한나라당 김영숙 의원이 성북구청 용역 보고서와 관련해 자극적인 표현을 쓰자 "(내가) 박사학위를 팔았는지 계산해 보라"는 야유성 발언도 했다.

오후 2시. 점심 식사 이후 회의가 속개됐다. 권철현 위원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의원들에게 '주의'를 줬다. 권 위원장은 "지금 인터넷은 의원들에 대한 비난 일색"이라며 "좀 더 잘해야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청문회가 열리는 동안 인터넷에서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억지 답변에 궤변을 늘어놓는데 조목조목 따지지 못하고 질질 끌려다니면서 오히려 사태를 호도하도록 도와주고 있다"며 "김병준은 며칠 밤낮을 준비해 나왔을 텐데… 의원들은 신문 몇 장 달랑 읽어보고 왔으니 게임이 안 된다"는 글들이 이어졌다. "한나라당의 무기력함이 김 부총리를 살려준 셈"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대세는 바뀌었다. 이날 상임위는 김 부총리가 마음 놓고 자기 주장을 펴는 무대가 됐다. 김 부총리는 가끔 여유 있게 웃음을 비치기도 했다. 부실 질문에 대한 완강한 버티기의 승리였다.

열린우리당 정봉주 의원은 대놓고 김 부총리를 감쌌다. 그는 "자기 표절이라는 신조어.소설적 용어까지 거들며 (김 부총리를) 부도덕하다고 지적한 언론의 의혹은 일정 부분 해소됐다"고 말했다. "사실관계를 많은 국민에게 알렸으면 좋겠다"고 두둔했다.

오후 5시 청문회는 끝났다. 김 부총리는 상기됐지만 훨씬 가벼운 표정으로 국회를 빠져나갔다. 그는 기자들로부터 "사퇴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자 불쾌하다는 듯 "사퇴는 무슨 사퇴냐"고 말했다.

사진

이름

소속기관

생년

[現]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제17대)

1960년

[現] 한나라당 국회의원(제17대)

1943년

[現] 한나라당 국회의원(제17대)
[現] 한나라당 제2정조위원장

1966년

[現] 한나라당 국회의원(제17대)

1952년

[現] 한나라당 국회의원(제17대)

1947년

[現]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제17대)
[前] 중소기업연구원 원장(제8대)

1960년


이원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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