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저임금 근로자 줄었다고?…통계 그늘에 묻힌 "실직·비경활 인구 확 늘어난 탓"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국경제연구원이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연간 데이터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주요 고용지표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역대 2번째로 심각했다. 코로나19까지 덮치면서 일자리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지난달 2월 16일 오전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앞 인력시장에 일용직 노동자들이 모여 있다. [뉴시스]

한국경제연구원이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연간 데이터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주요 고용지표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역대 2번째로 심각했다. 코로나19까지 덮치면서 일자리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지난달 2월 16일 오전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앞 인력시장에 일용직 노동자들이 모여 있다. [뉴시스]


저임금 근로자 비중이 3년 연속 감소했다. 임금 상·하위 격차도 좁혀졌다. 통계상으로는 노동시장 양극화가 개선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는 그렇지 않다. 취업과 같은 경제활동 자체를 포기한 사람(비경활인구)과 실업자가 급증하고 있다. 한데 이 통계는 이들을 조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노동시장에서 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사람만 대상으로 조사가 이뤄진 탓에 통계 지표가 좋아진 듯 보일 뿐이라는 얘기다. 노동시장의 현실과 동떨어진 '통계 착시 현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고용노동부는 25일 '2020년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전년 6월 기준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근로시간 등을 매년 조사하는 통계다. 공공부문을 제외한 3만3000개 민간 표본 사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근로자 96만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이에 따르면 저임금 근로자 비중은 지난해 6월 기준으로 16%였다. 2019년보다 1%포인트(p) 떨어졌다. 저임금 근로자는 중위임금(월 287만5000원)의 2/3(191만6667원)에 못 미치는 근로자를 이른다. 저임금 근로자 비중은 지속적으로 하락했으나 2017년까지는 20%를 웃돌았다. 그러다 2018년 처음으로 20% 아래로 떨어진 뒤 3년 연속 10%대를 유지했다.

또 상·하위 20%의 임금 격차가 4.35배(임금 5분위 배율)로 3년 연속 5배 밑으로 축소됐다. 임금 5분위 배율도 2018년 이후 3년 연속 5배 미만을 기록했다. 이 통계만 보면 분배지표가 상당히 개선된 것으로 보인다.

정부도 "노동시장의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정부는 매년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이 크다"는 분석을 내놨다.

2020년 고용형태별 근로실태 조사 결과. 자료=고용노동부

2020년 고용형태별 근로실태 조사 결과. 자료=고용노동부

하지만 지난해에는 최저임금이 사실상 동결됐다. 저임금 근로자가 줄고, 임금 격차가 줄어든 통계 이면에 다른 노동시장의 변수가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비록 지난해 최저임금이 동결되다시피 했지만 현 정부 들어 최저임금은 급격하게 올랐다. 최저임금의 영향을 많이 받는 음식업과 같은 업종이 휘청거렸다. 저임금 근로자가 많은 이들 업종에 실직 바람이 집중됐다. 최저임금 인상의 직격탄을 저임금 근로자가 맞은 셈이다. 노동시장에서 퇴출당한 이들은 조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여기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덮치면서 실업의 늪은 더 깊어졌다. 통계의 기준이 된 지난해에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21년 만에 최악의 실업자 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고용시장의 격차가 해소되는 것처럼 통계 착시현상을 일으킨 원인이다.

지난해 6월 기준으로 15세 이상 취업자는 2710만6000명으로, 전년동월대비 27만7000명(-1.0%) 감소했다. 취업자가 5개월 연속해서 감소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여파가 이어지던 2009년 1~8월 8개월 감소 이후 11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뉴스1

지난해 6월 기준으로 15세 이상 취업자는 2710만6000명으로, 전년동월대비 27만7000명(-1.0%) 감소했다. 취업자가 5개월 연속해서 감소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여파가 이어지던 2009년 1~8월 8개월 감소 이후 11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뉴스1

지난해 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은 2만731원으로 6.6% 감소하고, 비정규직은 1만5015원으로 3% 줄었다.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의 72.4%다. 임금 차이가 전년(69.7%) 대비 2.7%p 축소됐다.

근로시간은 정규직이 전년보다 14.6시간 늘었지만, 비정규직은 2시간 증가하는 데 그쳤다. 특히 직장에 소속된 기간제, 파견, 용역 근로자의 근로시간은 늘었지만, 일일 근로자와 같은 생계형 저임금 근로자는 5.5%나 줄었다. 코로나19가 저소득층에 더 큰 타격을 준 셈이다.

단시간 근로자 역대 최대.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단시간 근로자 역대 최대.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실업자 수 추이 그래픽 이미지. [자료=통계청]

실업자 수 추이 그래픽 이미지. [자료=통계청]

사회보험 가입률은 정규직이 94%, 비정규직은 62~74%였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차이가 가장 적은 것은 산재보험 가입률(0.4%p)이었다. 국민연금 가입률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에 36.6%p나 차이가 났다. 고용보험도 20%p의 가입률 격차를 보였다. 비정규직의 경우 노후 보장이 제대로 안 되고, 실직하면 실업급여 혜택도 못 받는 상황에 놓일 위험이 그만큼 높다는 의미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는 "이번 통계로 노동 파이 성장형 격차 해소(labor pie growing)가 아니라 노동 파이 축소형 격차 해소(labor pie shrinking), 즉 하향 평준화 현상을 읽을 수 있다"며 "이런 구조에서는 자기계발, 인적자본 투자와 같은 노동의 역동성이 사라지고 노동 파이 분할(splitting)을 통한 재분배에만 몰입하게 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