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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위탁가족 딜레마에 시달린 7년…이젠 침묵의 길 가련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배은희의 색다른 동거(48) 

5월 22일은 가정위탁의 날이다. 보건복지부는 원가정과 위탁가정 두 가정이 친자녀와 위탁아동 두 아이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같이 키우자는 의미에서 매년 5월 22일을 가정위탁의 날로 제정했다.

가정위탁제도는 친부모의 사망이나 이혼, 학대, 수감 등으로 친가정에서 양육할 수 없는 아이를 일정 기간 위탁가정에서 보호하고 양육하는 것이다. 단순하게 표현하면, 남의 아이를 내 집에 데려와 키우는 것이다.

순간의 동정심으로도 할 수 없고, 이윤이 생기는 것도 아니라서 어떤 대가를 바랄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위탁부모들은 인생을 조금 더 의미 있게 살고자 위탁부모가 됐다고 한다. 기대 없이 시작했는데 아이를 통해 삶의 보람을 느낀다고도 한다.

위탁가정은 순간의 동정심으로도 할 수 없고, 이윤이 생기는 것도 아니라서 어떤 대가를 바랄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위탁부모들은 인생을 조금 더 의미 있게 살고자 위탁부모가 됐다고 한다. [사진 배은희]

위탁가정은 순간의 동정심으로도 할 수 없고, 이윤이 생기는 것도 아니라서 어떤 대가를 바랄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위탁부모들은 인생을 조금 더 의미 있게 살고자 위탁부모가 됐다고 한다. [사진 배은희]

5월이면 매스컴에서도 위탁가정을 소개한다. KBS는 지난 어린이날 온종일 특별편성을 해 ‘더 나은 삶, 어린이가 안전한 대한민국’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에서는 가정위탁제도를 소개했는데 나도 화상 인터뷰로 함께 참여했다.

이럴 때면 위탁가족으로서의 딜레마를 느낀다. 아직은 우릴 바라보는 시선이 평범하지 않으니까 나서지 말고 입을 꾹 닫고 있어야 하는 건지, 조금 더 알려서 건강한 위탁가정이 많아지도록 해야 하는 건지.

가까운 지인이 내가 인터뷰 한 것을 보고 말했다. “누가 볼까, 걱정되더라.” 분명 나를 위한 말이었을 텐데, 그 말에 마음이 홧홧해졌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야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할 수 있지만 은지를 만나고, 고민하고, 가족이 되어 살아가는 7년의 과정을 지켜본 지인의 말이라 쉽게 떨치지 못했다.

다시 딜레마에 빠졌다. 그렇다면, 위탁가족은 사회가 변할 때까지 조용히 침묵하고 살아야 할까? 변화를 위해 그래도 목소리를 내야 할까? 그동안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 일지라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이렇게 글도 쓰고, 인터뷰도 했다. 아동학대로 즉각 분리된 아이들이 갈 곳이 없다고 할 때도, 준비된 위탁가족이 있으면 받아줄 수 있으니까 더 적극적으로 제도를 알려야 한다고 외쳤다.

내가 경험해 보기 전엔 그저 뉴스일 뿐이었지만, 매일 매 순간 경험하며 살다 보니 더 마음이 쓰였다. 건강한 위탁가정을 발굴하는 게 얼마나 시급하고 중요한지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듯하다. 어쩌면 침묵이 서로에게 편할 것 같다고. 사람들은 불편한 이야기를 듣기 싫어하니까. 남이 나서는 것도 싫어하니까. 입을 꾹 닫고 내 아이나 잘 키우는 게 좋겠다고.

위탁가족'라는 이 모호한 관계를 확인할 때마다 이목이 신경 쓰이고, 사회가 조금 더 변화되길 바라고, 미력이지만 나의 행동을 보태게 된다. [사진 unsplash]

위탁가족'라는 이 모호한 관계를 확인할 때마다 이목이 신경 쓰이고, 사회가 조금 더 변화되길 바라고, 미력이지만 나의 행동을 보태게 된다. [사진 unsplash]

‘피터팬’의 저자 J. M. 배리는 ‘인생은 겸손에 대한 긴 수업’이라고 했다. 나도 수업을 받고 있다. 위탁가족으로서 자주 맞닥뜨리는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우고 있다.

사실, 위탁가족으로 살면 자주 딜레마에 빠진다. 두 아이와 성이 다른 은지, 가족이지만 서류상 동거인인 은지. 이 모호한 관계를 확인할 때마다 이목이 신경 쓰이고, 사회가 조금 더 변화되길 바라고, 미력이지만 나의 행동을 보태게 된다.

지인이 다시 말했다. “사람들은 함부로 말하기도 하는데, 그 인터뷰를 보고 위탁가족인 걸 몰랐던 사람들이 알게 되면 은지한테 좋지 않을 수도 있잖아.” 분명 맞는 말이다. 나와 은지를 위한 말이다.

하지만 홧홧한 마음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위탁가족으로 사는 게 힘든 게 아니라, 사람들의 말이 더 힘들다는 걸 새삼 실감했다. 이런 상황을 겪으면서 대가 없이 위탁부모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기도 했다.

조용히! 아무도 우리가 위탁가족인 걸 모르게 조용히 지내는 게 덜 상처받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이 또한 위탁가족 각각의 선택일 것이다. 이제 나는 다시 고민하고, 다시 선택하려고 한다.

잠시 나를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 메모해 놓은 책을 주문하고, 뒹굴뒹굴하면서 책을 읽고, 은지와 놀이터에 나가 놀 것이다. 맛있는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며 푸른 바닷가를 걸을 것이다. 시간의 여유가 마음의 여유를 줄 것이라 믿는다.

그동안 위탁가족 이야기를 읽어 주시고, 공감해주시고, 내 편이 되어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린다. 지면을 할애해 주시고 인기도 없는 이 이야기에 매번 색동옷을 입혀주신 중앙일보 ‘더,오래’에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은지와 잘 살아가는 것으로 보답하겠다.

건강하시길, 그리고 행복하시길.

위탁부모·시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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