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더오래]은지, 입학 한 달만에 “학교 쉬고 싶어요”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배은희의 색다른 동거(45)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한 달도 안 된 은지가 학교를 쉬고 싶다고 했다. 왜 그럴까? 궁금해서 조용히 물어봐도 딱히 대답을 못 했다. 대답을 못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음, 그냥 피곤해서요. 하루만 쉬면 안 돼요?”

같이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 때도, 놀이터에 갈 때도, 아침에 등굣길을 걸을 때도 여러 번 물어봤지만 은지는 피곤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저녁을 먹고 장난감을 갖고 놀 때였다. 은지가 무심결에 툭 이야기했다.

“엄마, 그런데 우리 1학년 2반 고○○이 나보고 못생겼데요!”

혹시 학교를 쉬고 싶다는 게 그 이유일까? 나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뭐? 고○○? 엄마가 당장 찾아가야겠네! 어디 우리 은지한테!”

협재 바닷가. 어진이랑 은지. [사진 배은희]

협재 바닷가. 어진이랑 은지. [사진 배은희]

새로운 학교생활에 긴장도 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도 피곤한데, 같은 반 남자친구의 말까지 더해진 것 같았다. 학교 가는 건 좋은데, 그런 부수적인 것들이 피곤했던 것 같다. 그제야 은지 마음이 이해됐다.

내가 은지를 더 헤아려줘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입술을 씰룩이기도 하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면서 은지의 속상함을 풀어주려고 했다. 그런데 은지는 나를 쳐다보며 빙긋이 웃더니 나를 진정시켰다. 고○○은 장난꾸러기고 선생님이 이미 혼내줬으니까 엄마까지 찾아갈 필요는 없다고.

그날 밤이었다. 은지 옆에 누워서 어깨를 토닥이다가 나지막하게 물었다.
“은지야, 은지는 어떤 사람이지?”
“소중한 사람!”
“그래, 은지는 소중한 사람이야! 고○○은 그걸 몰랐나 보다…. 우리 은지는 엄청 소중하고 예쁜데 말이야. 히히.”

피곤했는지 금세 잠들어버린 은지의 어깨가 들숨과 날숨에 오르락내리락했다. 은지가 살아갈 인생이 이렇게 오르락내리락하겠지. 올라갈 때 교만하지 않고, 내려갈 때 낙심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프랑스의 대문호 앙드레 모루아는 “온갖 실패와 불행을 겪으면서도 인생의 신뢰를 잃지 않는 낙천가는 대개 훌륭한 어머니의 품에서 자라난 사람”이라고 했다. 훌륭한 어머니의 품. 역시 내 몫은 은지를 품어주는 것이었다. 내 품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더 단단해질 수 있도록.

우린 위탁가족이라 언젠가는 은지와 헤어진다. 그때는 은지가 혼자 감당해야 할 것이 많아질 것이다. 그걸 대비해서라도 은지가 얼마나 소중한 아이인지, 마음을 담아 더 자주 말해주려고 한다.

용담 바닷가에서 은지.

용담 바닷가에서 은지.

오르락내리락하는 인생에서도 은지가 신뢰를 잃지 않기를 바라며 품에 꼭 안아주었다. 은지는 내 품에서 쫑알쫑알 이야기하다가 손을 꼼지락 꼼지락거리다가 내 가슴을 더듬었다.

“아, 진짜 말랑말랑하고 좋아! 참을 수가 없어!”

우린 또 까르르 웃었다. 아기 때는 내 가슴을 낯설어하더니 요즘은 오히려 장난감처럼 갖고 논다. 손바닥으로 짓누르기도 하고, 엄지 검지로 뱅글뱅글 돌리기도 하면서 행복하게 갖고 논다. 그러다가 은지가 먼저 이야기를 했다.

“엄마, 내일 학교 갈 거니까 일찍 잘게요!”

그리고는 작은 팔로 나를 꼭 안았다. 작은 팔에 안겨 은지가 잠들 때까지 지켜봤다. 작은 입술이 오물거리고, 더 작은 콧구멍에서 쌕쌕 따듯한 봄바람이 불어왔다. 짙은 눈썹이며, 뽀얀 피부며, 안 예쁜 데가 없는 우리 은지다.

“은지야, 엄마는 은지 편이야! 무조건 은지 편이야.”

오르락내리락하는 은지의 팔에 안겨서 은지의 어깨가 내내 평안하기를. 어떤 일이 있어도 신뢰를 잃지 않기를 기도했다. 살과 살을 맞댄 깊은 밤, 이렇게 가족의 깊이도 깊어지는 것인가 보다.

위탁부모·시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