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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절레동화'은지의 서툰 글씨에 돌아본 서툰 위탁엄마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배은희의 색다른 동거(47)

은지는 한글을 배우고 있다. 읽고 쓰면서 열심히 배우고 있다. 가끔 소리 나는 대로 쓰기도 하지만 그게 너무 귀여워 볼 때마다 사진을 찍어놓는다.

며칠 전엔 전래동화를 ‘절레동화’라고 써 놓은 걸 보고 한참을 웃었다. 이 시기에만 볼 수 있는 은지다운 글씨였다. 은지의 서툰 글씨를 보면서 나도 엄마로서 서툴렀던 시절이 있었는데, 생각했다.

스물여섯 살, 8월이었다. 새벽부터 허리를 중심으로 싸한 기운이 퍼지더니 뼈마디 마디가 빨래 짜듯 뒤틀렸다. 사지가 파르르 떨렸다. 온몸이 꺾이고, 찢기는 듯했다. 이빨이 부서지도록 앙다물었다가, 입술이 찢어지도록 쫙 벌렸다.

막상 엄마가 되고 보니, 낳는 것 보다 키우는 게 더 힘들었다. 아기는 두세 시간에 한 번씩 깨서 울었다. 겨우 잠을 자려고 하면 아기는 다시 깨서 울었다. [사진 pixnio]

막상 엄마가 되고 보니, 낳는 것 보다 키우는 게 더 힘들었다. 아기는 두세 시간에 한 번씩 깨서 울었다. 겨우 잠을 자려고 하면 아기는 다시 깨서 울었다. [사진 pixnio]

분만 침대에 누워서 양다리를 벌리고 두 팔로 침대 난간을 잡았다. 분만실에선 부끄러움을 먼저 벗어야 했다. 내 몸이 쪼개지고, 으깨지더라도 낳아야만 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힘을 주세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는데, 그 소리에 침대 난간을 잡고 사지를 쫙 뻗으며 소리쳤다. “으, 으, 으아아악”순간 뭉클하면서 뭔가가 몸에서 쑥 빠져나갔다. 여전히 무서웠지만, 여전히 막막했지만, 상황이 달라진 것 같았다. 온몸이 다시 떨렸다. 아무것도 알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얀 병실, 천정의 불빛까지도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다.

“축하합니다! 아들입니다!”
“으, 으, 응애”

너덜너덜해진 몸 위로 아기가 먼저 찾아왔다. 작고 쭈글쭈글한 아기를 보는 순간, 그간의 진통이 다 여며지는 것 같았다. 건강하게 태어난 게 고맙고, 우렁차게 울어줘서 고맙고, 고맙고, 또 고마웠다.

손바닥만 한 아기 얼굴에 눈코입이 다 붙어있었다. 심지어 새끼손톱, 새끼발톱, 속눈썹까지 다 있었다. 신기하고 경이로웠다. 내 몸속에서 한 생명이 태어났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쳐다보고 또 쳐다보며 눈가를 훔쳤다.

한 번 더 뭉클하면서, 태반이 나왔다. 뒤처리가 진행되는 동안 내가 엄마가 됐다는 게, 작고 신비로운 생명의 엄마가 됐다는 게 오묘하고 또 무겁게 다가왔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산고는 그렇게 끝이 났다.

그 후로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엄마’다. 몸속에 생명을 품은 엄마, 부끄러움도 벗어던지고 긴긴 진통을 감당한 엄마,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아기를 향해 고마워하는 엄마….

막상 엄마가 되고 보니, 낳는 것 보다 키우는 게 더 힘들었다. 아기는 두세 시간에 한 번씩 깨서 울었다.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먹이고, 트림을 시키고 겨우 잠을 자려고 하면 아기는 다시 깨서 울었다.

어떤 날은 기저귀를 잘못 채워서 이불에 노란 똥 범벅을 만들기도 했고, 트림을 시켜도 하지 않아서 그냥 눕혔는데 분수처럼 다 토해버리기도 했다. 아기도 울고 나도 울었다.

아기가 자라면 좀 낫겠지, 했는데 걷기 시작하니까 사고의 연속이었다. 침대 모서리에 이마가 찢어져서 응급실에 가고, 열이 나서 응급실에 가고…. 첫 아이는 유독 병원을 자주 들락거렸다.

서툰 엄마는 그때마다 발을 굴렀다. 아기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배운 적이 없었다. 인터넷이 발달한 시기도 아니어서 주변 어른들께서 여쭤보며 아주 더디고 서툴게 배웠다.

아기가 코를 킁킁거릴 땐, 면봉에 아기 로션을 묻혀서 콧구멍 입구를 닦아주라고 했다. 아기가 잠을 안 잘 땐, 저녁에 실컷 놀아주고, 뜨끈한 목욕물에 푹 잠기게 씻긴 다음, 따끈한 우유를 배불리 먹여서 재워보라고 했다.

엄마로서 배워야 할 게 끝이 없었다. 아이가 어리면 어린 대로, 크면 큰 대로 엄마의 자리가 있었다. 나도 점점 용감한 엄마가 되어갔다. 우리 아이를 위해 목소리 큰 엄마도 자처했다.

예전엔 우리 엄마가 조금 더 나긋나긋했으면, 조금 더 고상했으면 싶었다. 하지만 내가 엄마가 되어보니 엄마가 부끄러움을 벗은 건 나 때문이었다. 어떤 여자가 그러고 싶을까?

며칠 전 은지가 전래동화를 절레동화라고 써 놓은 걸 보고 한참을 웃었다. 이 시기에만 볼 수 있는 은지다운 글씨였다. [사진 배은희]

며칠 전 은지가 전래동화를 절레동화라고 써 놓은 걸 보고 한참을 웃었다. 이 시기에만 볼 수 있는 은지다운 글씨였다. [사진 배은희]

은지가 한글을 배우는 걸 보면서 나도 은지의 위탁엄마가 된 게 처음인데, 은지의 글씨처럼 서툰 건 아닌지 돌아봤다. 은지에게 실수하는 것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만약 엄마학교가 있다면 어떨까? 산부인과에, 보건소에, 주민센터에 엄마학교, 아빠학교, 부모학교가 생긴다면 어떨까? 정기검진만 받는 게 아니라 엄마로서, 아빠로서, 부모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다면.

은지가 한글을 배우듯 기초부터 하나하나 배울 수 있다면, 엄마가 되는 것도, 엄마를 이해하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적어도 한 생명에 대한 고귀함은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은지의 서툰 글씨를 보면서 서툰 내 모습을 돌아본 하루였다. 그래서 또 감사하다.

위탁부모·시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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