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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뭉개진 호빵은 아빠의 ‘사랑의 언어’, 그땐 왜 몰랐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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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배은희의 색다른 동거(46)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경험하는 가장 멋진 일은 가족의 사랑을 배우는 것이다.’

C.S.루이스의 스승인 조지 맥도널드의 말이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세상에 태어난 모든 아기가 가족의 사랑을 배울 수 있길 바랐다. 버려지는 아기, 동백꽃처럼 뚝뚝 떨어져 짓밟히는 아기가 없기를 바랐다.

중년이 되어서야 깨닫는다. 내가 위탁가족으로 사는 건 부모님께 배운 사랑 때문이라는 걸.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사랑이 어디 있냐고, 사랑은 없다고 대들었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 비틀비틀 걸어오는 게 창피했고, 어머니가 ‘아이고, 아이고’ 한숨을 내쉬는 게 지긋지긋했다. 사랑은 보이지 않았고, 들리지 않았다.

내 속에 은단처럼 녹아있는 아버지의 사랑을 흉내 내며 마지막 젊음을 탈탈 털어 은지의 위탁엄마로 살고 있다. [사진 배은희]

내 속에 은단처럼 녹아있는 아버지의 사랑을 흉내 내며 마지막 젊음을 탈탈 털어 은지의 위탁엄마로 살고 있다. [사진 배은희]

사랑을 받은 사람만 사랑할 줄 안다면 나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위탁엄마로 살고 있다. 매일 은지를 씻기고, 입히고, 먹이면서 세상에서 제일 귀한 보물로 여기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고, 다시 은지를 키우면서 깨닫게 된 것은 나의 부모님이 쉬지 않고 당신의 언어로 사랑을 전해주셨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소소하고 평범한, 그래서 사랑인 줄도 몰랐던 사랑을 계속 전해주셨다는 것이다.

지금도 ‘아버지’ 하면 떠오르는 것이 은단이다. 트로트를 흥얼거리며 손박자를 맞추다가도 나를 보면 눈곱만한 은단을 한 알씩 주셨다. 입천장에 붙이고 혀로 살살 뭉개면 박하의 화한 맛과 쌉싸래한 맛이 입 안 가득 침을 고이게 했다. 은단은 소리 없이 녹아내렸다. 아버지처럼.

술에 취해 갈지자로 걸어오는 날에도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줄 간식거리를 품에 넣고 오셨다. 뭉개진 호빵, 짓무른 귤, 부서진 센베이 과자…. 아버지는 그렇게 사랑을 전해주셨다.

나무로 만든 투박한 썰매와 크리스마스 날 양말 안에 들어있던 동전들, 내 얼굴에 비벼대던 거친 수염은 아버지만의 ‘사랑의 언어’였다. 아버지는 그 언어로 쉬지 않고 사랑을 전해주셨다. 하지만 나는 사랑을 볼 줄 몰랐다. 들을 줄도 몰랐다. 아버지가 지갑에 있는 돈을 탈탈 털어 친구에게 주고 비틀비틀 걸어오시면 어머니는 한숨을 쉬셨다. 나도 그 한숨 뒤에서 눈물을 훔쳤다.

아버지는 2015년 4월에 돌아가셨다. 이젠 비틀비틀 걸어오실 아버지도, 뭉개진 호빵도, 짓무른 귤도 없다. 중년의 딸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야 아버지의 사랑을 희미하게 보고 듣는 중이다.

이제야 아버지의 사랑을 점자처럼 더듬는다. 내 속에 은단처럼 녹아있는 아버지의 사랑을 흉내내며 마지막 젊음을 탈탈 털어 은지의 위탁엄마로 살고 있다. 힘에 겨워 입술이 부르트고, 몸이 천근만근 무거운 날이면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난다. ‘나를 이렇게 키우셨겠지, 내가 너무 무지했구나, 얼마나 서운하셨을까’ 하면서.

매일 밤 사 오신 간식은 아버지의 '사랑의 언어'였다. 뭉개진 호빵을 먹지 않고, 짓무른 귤을 버린 건 아버지의 언어를 들을 줄 몰랐던 내 무지였다. [사진 pixabay]

매일 밤 사 오신 간식은 아버지의 '사랑의 언어'였다. 뭉개진 호빵을 먹지 않고, 짓무른 귤을 버린 건 아버지의 언어를 들을 줄 몰랐던 내 무지였다. [사진 pixabay]

게리 채프먼은 ‘5가지 사랑의 언어’에서 사람마다 사랑의 언어가 다르다고 했다. ‘인정하는 말, 함께하는 시간, 선물, 봉사, 스킨십’이 5가지 사랑의 언어는 혼용되기도 하고, 방언으로 표현되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니 상대방의 사랑의 언어를 잘 파악하라는 것이다.

아버지의 사랑의 언어는 ‘선물’이었다. 매일 밤 사 오신 간식은 아버지의 사랑의 언어였다. 뭉개진 호빵을 먹지 않고, 짓무른 귤을 버린 건 아버지의 언어를 들을 줄 몰랐던 내 무지였다.

세상에 태어나 경험하는 가장 멋진 일이 가족의 사랑을 배우는 것이라면 그 사랑을 나누는 건 가장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내가 위탁엄마로 이렇게 살 수 있도록 사랑을 가르쳐준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우리 은지도 가족의 사랑을 배우고 행복하게 나눌 수 있길. 4월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억하며 오늘도 마음을 추슬러본다.

위탁부모·시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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