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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암호화폐 빚투 2030…사회문제화 우려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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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7호 30면

미국의 규제 소식에 암호화폐 가격이 급락했지만 21일 소폭 회복했다. 이날 서울 강남구 빗썸 전광판에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의 규제 소식에 암호화폐 가격이 급락했지만 21일 소폭 회복했다. 이날 서울 강남구 빗썸 전광판에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암호화폐가 연일 급등락을 반복하면서 온 나라가 패닉 상태다. 특히 이 시장의 70%(1분기 신규 투자자 기준)를 차지하는 20·30세대 상당수가 학업과 생업 등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몰입하는 양상을 띄다 보니 투자 영역을 넘어 사회문제화할 조짐마저 보인다.

중국발 쇼크, 암호화폐 취약성 그대로 노출 #한 달 만에 반토막 나며 맥 못 추는 비트코인 #정부, 2018년 위기 불구 손놓아 사태 키워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CEO의 말장난에 폭등과 폭락을 거듭해온 도지코인과 같은 알트코인(대안코인)뿐 아니라 ‘디지털 골드’라 불리는 대장주 성격의 비트코인도 서너 시간 만에 30~40%가 오르내리는 등 암호화폐는 원래 변동성이 크다. 하지만 지난 18일 중국발(發) 초강력 규제 후폭풍이 빚어낸 최근의 급락 사태는 일상적인 시세 변동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비트코인은 지난 2월 이후 100여 일 만에 고점(8만 달러) 대비 반 토막 수준인 4만 달러 선이 무너진 후 쉽게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2017년 9월에도 신규 자금 유입과 현금화를 막는 강력한 암호화폐 규제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암암리에 개인 간 거래는 이뤄져 왔고, 투자 열기가 식기는커녕 전 세계 1만 달러 이상 암호화폐 거래의 90%(2020년 6월 기준)를 차지하는 큰손이 됐다. 그런 중국이 자국 내 암호화폐 거래를 원천 봉쇄하고 이를 어기면 기소할 수 있도록 하는 초강력 규제안을 내놓자 전 세계 코인 시장이 얼어붙은 것이다.

사실 중국의 이 같은 행보는 어느 정도 예상됐던 바다. 암호화폐 회의론자들은 줄곧 “각국 중앙은행의 디지털화폐(CBDC)가 암호화폐 시장의 몰락을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세계 각국은 지금 CBDC 패권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중국이 가장 적극적이다. 내년 2월 베이징 겨울올림픽 때 인민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위안화 출시를 목표로 미국의 달러 패권에 도전해왔다. 최근의 규제는 자금 해외 유출을 막는 의도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민간 암호화폐 시장이 커질수록 중앙은행 발권력이 도전받을 수 있다는 판단 아래 디지털 위안화 보급을 위한 사전작업에 나선 것이란 분석이다.

비관론자인 ‘닥터 둠’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는 “비트코인은 디지털 골드가 될 수 없다”며 그 근거로 “CBDC가 등장해 미래의 결제 수단이 되면 암호화폐보다 우위를 차지하는 데 이어 완전히 대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도 이번 폭락 사태 이후 SNS에 “암호화폐는 혁신도 아니다”라며 “비트코인은 2009년부터 사용됐지만 아무도 아직 합법적 용도를 찾지 못했다”고 평가절하했다. JP모건은 투자자들에게 “기관투자자들은 이미 한 달 전부터 비트코인에서 발을 빼고 금에 투자하고 있다”는 레터를 보내기도 했다.

중국을 넘어 각국이 암호화폐에 더 강력한 규제를 할지, 이에 따라 암호화폐가 어떤 위상으로 자리매김할지 지금 시점에서 예측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우리 정부 대응은 너무 안일하다는 점이다. 2018년에도 20~30대를 중심으로 암호화폐 투자 광풍이 몰아쳤지만 그동안 세금 걷겠다는 방안 외에는 어떤 논의도 진척시키지 못했다. 당시 박상기 법무부 장관의 갑작스런 거래소 폐쇄 발언에 투자자들이 강하게 반발하자 청와대가 대여섯 시간 만에 부인하는 등 혼선만 노출했다. 결국 국무조정실이 나서 “불법행위에는 강력히 대응하되 기반기술인 블록체인은 육성하겠다”며 “충분한 협의와 이견 조율 과정을 거쳐 결정하겠다”고 밝혔지만 지금껏 이렇다할 대책이 없다.

정부가 “암호화폐는 정부가 인정할 수 있는 화폐가 아니며 투자에 대한 책임은 개인 몫”이라는 원론적 선언 뒤에 숨어 손 놓고 있기에는 지금 너무 큰 돈이 아무 보호장치 없이 움직이고 있어 위태롭다. 더 큰 사회문제로 번지기 전에 정부가 좀더 적극적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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