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영화] '매치스틱 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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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를 당하고도 좋아하는 몇 안 되는 부류 중의 하나가 영화관객이다. 영화값을 못하는 광고에 속은 게 아니라 막판 반전에 속은 경우의 얘기다. 17일 개봉하는 미국 영화'매치스틱 맨'역시 그런 후반부의 '한 방'을 준비한 작품이다.

주인공 로이(니컬러스 케이지)는 직업이 사기꾼이다. 세상 물정 잘 모르는 노인이나 주부에게 행운권에 당첨됐다며 싸구려 정수기를 터무니 없는 가격에 안길 때는 멀쩡하기 짝이 없는데, 알고보니 결벽증과 조울증이 있어 정신과 의사의 주기적인 상담과 알약이 없이는 일상 생활이 불안한 지경이다.

정신과 의사가 말도 없이 이사를 가는 바람에 한바탕 홍역을 겪은 로이는 새로 구한 의사에게 마음을 열고 14년 전 헤어진 여인이 임신 중이었던 사실을 털어놓는다. 그 결과 찾아온 것이 10대 소녀로 자란 딸이다.

혼자 사는 생활에 익숙하던 로이는 소녀의 발랄한 취향에 갈등과 활력을 번갈아 겪는다. 그런데 발랄하다 못해 비행청소년의 냄새가 나는 이 딸이 아버지의 직업에 호기심을 넘어 소질까지 내비친다. 안 그래도 직업 때문에 마음의 가책을 느끼던 로이는 손을 씻을 때가 온 것을 느끼고, 실제 그의 인생이 뒤집힌다. 물론 이 과정이 쉽지만은 않겠지만 말이다.

바람직하지 못하게 살다 개과천선하는 니컬러스 케이지의 모습은 이미 3년 전'패밀리 맨'에서도 그려진 적 있다. 그러나 '매치스틱 맨'은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대충 화해하는 '패밀리 맨'보다 한층 흥미로운 길을 간다. 원작 소설(저자 에릭 가르시아)뿐 아니라 리들리 스콧.로버트 저메키스가 각각 감독.제작으로 자막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덕분으로 보인다.

'글래디에이터''블랙 호크 다운''블레이드 러너''에이리언'등 개성 강한 대작을 만들어온 리들리 스콧의 이력으로 보면 '매치스틱 맨'은 '작은'영화에 속하지만 적어도 그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얼굴에 틱(tic:자신도 모르게 근육이 움직이는 현상)장애가 나타나는 로이를 아카데미상까지 받은 연기파 배우 케이지가 제대로 표현 못할 리는 없다.

'컨페션'에서는 비밀간첩 노릇을 하는 방송사 프로듀서로 열연했던 샘 록웰이 로이의 동료 사기꾼 프랭크 역할을 능글능글하게 소화해낸다. 젊은 배우 앨리슨 로먼 역시 로이의 딸로 귀여운 매력을 발산한다.

제목인 '매치스틱 맨(Matchstic Men)'은 남을 등쳐먹는 사람을 뜻하는 모양이다. 영화 제목으로 영어 공부를 시켜주는 친절은 이제 그만해도 좋으련만, 수입사는 여전히 같은 친절을 베푼다. 15세 이상 관람가.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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