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을 기억하는 여행법③ 전일빌딩245
어떻게 이런 기막힌 우연이 있을까. 5·18민주화운동을 온몸으로 증언하는 건물에서 일어난 이 거짓말 같은 일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전일빌딩. 1980년 5월 시민군의 근거지이자 계엄군 헬기 사격을 증명하는 현장. 전일빌딩의 새 이름 ‘전일빌딩245’에는, 차라리 소름 돋는 사연이 서려 있다.
우연의 일치
전일빌딩은 옛 전남도청 바로 앞 건물이다. 1968년 건축됐고, 1980년 당시 주위에서 가장 높은 10층 높이였다. 광주의 여러 언론사가 입주해 사용했고, 5·18민주화운동의 중심지였다. 광주시 금남로 1가 1번지가 전일빌딩이었다. 이후 주소는 2009년 도로명 주소를 따라 ‘금남로 245’로 바뀌었다.
광주도시공사가 전일빌딩을 매입한 2011년 이후 전일빌딩에 대한 조사가 시작됐다. 전일빌딩 자체가 5·18 대표 유적지이자, 계엄군 헬기 사격의 유력한 증거이기 때문이었다. 2016∼2017년 네 차례에 걸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현장 감식 결과, 건물에서 모두 245개의 총탄 흔적이 발견됐다. 금남로 245에서 발견된 탄흔 245개. ‘전일빌딩245’가 여기서 나왔다.
전일빌딩은 2017년 5·18사적지 제28호로 지정됐고, 4년에 걸친 리모델링 사업 끝에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은 2020년 개방됐다. 전일빌딩에선 2019년 탄흔 25개가 더 발견됐다. 헬기 사격을 부인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자명예훼손 소송 중에 찾아낸 추가 증거다.
문화 공간 & 역사 현장
전일빌딩245는 복합 문화공간이다. 미리 신청하면 도슨트가 동행한다. 다양한 전시와 치밀한 공간 배치로 건물은 밀도가 매우 높았다.
1층과 2층엔 광주를 대표하는 미디어아트 작가 이이남의 작품이, 10층엔 정영창·이혜경 작가가 헬기 사격을 규탄하는 조형작품이 전시돼 있었다. 전일빌딩을 사용했던 언론사들의 기록 사진과 활자판, 광주의 다양한 특산물과 매력을 소개하는 전시 공간도 있었다.
4층 전일생활문화센터에선 광주를 배경으로 한 노래를 들었다. 1981년 대학가요제 대상 수상곡 ‘바윗돌’이 사실은 5·18 추모곡이어서 뒤늦게 금지됐다는 사연도, ‘방탄소년단’의 광주 출신 멤버 제이홉의 노래 ‘Ma City’에 ‘모두 다 눌러라 062-518’라는 가사가 있다는 사실도 여기에서 알았다.
가장 인상적인 곳은 탄흔이 집중적으로 발견된 10층이었다. 10층 건물 기둥에 박힌 총알 자국은, 누가 봐도 건물보다 높은 곳에서 쏜 것이었다. 앞서 적었듯이 전일빌딩은 1980년 당시 주변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아! 도청
전일빌딩245 옥상 ‘전일마루’는 광주의 새로운 야경 명소다. 오후 10시까지 개방한다. 옥상에 서면 발아래 옛 전남도청 건물이 보인다. 그러니까 전일빌딩 옥상에서 보이는 도청 주변의 모든 것, 예를 들어 시계탑, 분수대, 회화나무, 광장, 건물은 모두 5·18 유적이다. 아시는지. 5·18민주광장 시계탑에선 매일 오후 5시 18분이 되면 ‘임을 위한 행진곡’ 선율이 흘러나온다.
광장 왼편 체육관 건물이 ‘상무관’이다. 5·18 당시 시신을 임시로 모셨던 장소다. 한강 소설 『소년이 온다』가 41년 전 상무관에서 일하다 숨진 소년의 이야기다. 현재 복원 사업 중인 옛 도청 본관과 별관 뒤에 국립 아시아문화전당이 있다. 5·18을 기리기 위해 도청 건물보다 낮게 지었다. 그래서 주요 시설이 모두 땅을 파고 지하로 들어갔다.
옛 도청 별관 2층에선 ‘노먼 소프 기증자료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1980년 ‘아시아 월스트리트 저널’ 기자로 현장을 취재한 기록과 사진필름을 전시를 위해 기증했다고 한다. 생생한 현장 사진 중에서 1980년 5월 27일 아침, 그러니까 계엄군의 진압 작전 직후 촬영한 도청 사진은 한동안 잊기 힘들 것 같다. 시신들이 그대로 찍혀 있었는데, 가장 끔찍한 시신이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였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낳은 주인공의 최후는 참혹했다.
광주=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