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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5·18민주묘지 광장의 십이지신상, 쥐와 돼지 없는 까닭

중앙일보

입력

5·18을 기억하는 여행법② 택시운전사 투어 

 국립 5ㆍ18 민주묘지. 5ㆍ18 민주화운동 희생자가 영면하는 현장이다. 손민호 기자

국립 5ㆍ18 민주묘지. 5ㆍ18 민주화운동 희생자가 영면하는 현장이다. 손민호 기자

“아빠가 손님을 두고 왔어.”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서울의 택시운전사 김만섭(송강호)이 수화기 너머 어린 딸에게 어렵게 말할 때. 극장 곳곳에선 흐느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대사가 일깨운 부채의식 덕분일까. 2017년 개봉한 영화는 관객 수 1218만 명을 기록했고, 소문처럼 떠돌던 5·18민주화운동의 여러 진실이 세상에 드러났다. 그때 알려진 진실 중에 광주 택시운전사의 활약상도 있었다.

영화에서처럼 광주의 택시운전사는 5·18의 또 다른 주역이다. 시위대 맨 앞에 섰고, 부상자를 실어 날랐다. 41년 전 광주의 주유소는 실제로 택시 기름값을 받지 않았다. 광주의 택시운전사는 여전히 열정적으로 활동 중이다. 이를테면 ‘전일빌딩245’ 10층 헬기 탄흔 현장의 해설사 신봉섭(71)씨가 5·18민주기사 동지회 창립위원장이다.

광주에는 영화 ‘택시운전사’를 본뜬 패키지여행 상품이 있다. 광주관광재단이 5월 시작했고, 연말까지 운영할 계획이다. 지난 14일 ‘택시운전사 투어’를 체험했다. 한진수(61)씨의 개인택시를 타고 5·18 유적지 곳곳을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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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여행

광주 택시운전사 투어의 한진수씨. 택시투어에 참여한 개인택시에는 옆에 '오월 광주 택시투어'라고 쓰여 있다. 국립 5ㆍ18 민주묘지 정문 앞에서 촬영했다. 손민호 기자

광주 택시운전사 투어의 한진수씨. 택시투어에 참여한 개인택시에는 옆에 '오월 광주 택시투어'라고 쓰여 있다. 국립 5ㆍ18 민주묘지 정문 앞에서 촬영했다. 손민호 기자

“1980년 5월 저도 거리에 있었어요. 학생은 아니었지만, 스무 살 청춘이었으니까요. 운이 좋아서 다치지도 않았고, 잡혀가지도 않았어요.”

‘오월 광주 택시 투어’라고 써 붙인 개인택시에 올라탔을 때 운전사 한씨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광주의 택시운전사 투어는, 20년쯤 전 제주도에서 유행했던 ‘대절 택시’와 비슷한 유형이라 할 수 있다. 택시운전사가 운전도 해주고, 가이드도 해주고, 사진도 찍어주는. 그러나 한씨의 자기소개 한 마디 이후 택시투어는 매우 특별한 체험으로 바뀌었다. 꼭 41년 전으로 돌아가는 여행 같았다. 한씨는 운행 중에 다양한 버전의 ‘임을 위한 행진곡’을 틀어주기도 했다.

광주의 택시운전사 한진수씨. 그는 "저도 1980년 5월 거리에 있었다"고 말했다. 손민호 기자

광주의 택시운전사 한진수씨. 그는 "저도 1980년 5월 거리에 있었다"고 말했다. 손민호 기자

내가 체험한 ‘1980년 5월 코스’는 4시간짜리 투어였다. ‘5·18자유공원∼국립 5·18민주묘지∼구전라남도청(국립아시아문화전당)∼5·18민주화운동기록관∼양림역사문화마을’ 여정이었는데, 한씨가 권해 5·18 발상지 전남대도 들렀다. 5·18민주화운동은 5월 17일 전남대 시위에서 시작됐다. 교정에 ‘임을 위한 행진곡’의 주인공 윤상원 열사의 흉상이 있었다.

아직도 몰랐던 진실들 

 5ㆍ18자유공원 영창. 1980년 상무대 영창을 그대로 복원한 현장이다. 7평 공간에 150명을 한꺼번에 감금했고, 사진처럼 정좌 자세로 하루 16시간을 서 있게 했다. 손민호 기자

5ㆍ18자유공원 영창. 1980년 상무대 영창을 그대로 복원한 현장이다. 7평 공간에 150명을 한꺼번에 감금했고, 사진처럼 정좌 자세로 하루 16시간을 서 있게 했다. 손민호 기자

택시투어에서 미처 몰랐던 역사를 여럿 알았다. 그중에서 하나를 5·18역사공원에서 목격했다. 5·18역사공원은 5·18 당시 시민을 구금하고 재판했던 옛 상무대를 복원한 곳이다. 말 그대로 인권 말살의 현장이었다. 특히 영창. 7평 감방에 150여 명이 동시에 생활했다. 그것도 하루 16시간 정좌 자세로 있어야 했다. 계엄령 상황의 군사재판이어서 변호사도 없었다.

국립 5ㆍ18 민주묘지 추념문 아래에서 바라본 참배광장과 5ㆍ18추모탑. 손민호 기자

국립 5ㆍ18 민주묘지 추념문 아래에서 바라본 참배광장과 5ㆍ18추모탑. 손민호 기자

5·18 희생자가 잠든 묘역의 공식 이름이 ‘국립 5·18민주묘지’란 것도 이번에 알았다. 한때 망월동 묘역으로 불렸던 곳이다. 5·18민주묘지는 2002년 국립묘지로 승격했고, 2006년 현재 이름으로 개정됐다. 택시운전사 한씨가 “안내실에 신청하면 정치인이 아니어도 입장할 때 ‘임을 위한 행진곡’을 틀어준다”고 귀띔했다. TV 뉴스에서 많이 봤던 참배광장에 들어서면 5·18추모탑이 우뚝 서 있다. 참배광장에 이야기 하나가 숨어 있다. 추모탑 주위로 십이지신상이 서 있는데, 12개가 아니라 10개만 있다. 십이지간의 시작과 끝인 쥐와 돼지가 없다. 5·18민주화운동의 시작도 끝도 아직 규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택시운전사 투어 프로그램 그래픽 광주관광재단

택시운전사 투어 프로그램 그래픽 광주관광재단

택시운전사 투어는 세부 코스 조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기본 여정은 1박2일 기차여행 형식이다. 용산역∼광주송정역 왕복 KTX 승차권, 1박 숙박, 4시간 택시투어를 제공하고 1인 12만6600∼14만원(주중·주말 KTX 승차권 가격에 따라 변동)으로 판매된다.

광주=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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