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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우길] 인증샷 명소 영도해변, 월사금 못낸 학생 문재인이 서성댔던 그 곳

중앙일보

입력

다자우길② 남파랑길 부산 2코스  

영도는 섬이다. 부산 영도 하늘에서 내려다본 남항대교와 남항. 손민호 기자

영도는 섬이다. 부산 영도 하늘에서 내려다본 남항대교와 남항. 손민호 기자

저마다 부산이 있다.
이를테면 부산은 바다다. 누군가에게 부산은, 해종일 펄떡이는 자갈치시장이나 예쁜 카페 늘어선 기장 해안, 추억 하나쯤 묻어 둔 해운대 백사장 또는 서퍼들로 후끈한 송정 해변으로 기억된다. 부산을 대표하는 두 국민가요 ‘부산 갈매기’와 ‘돌아와요 부산항에’ 모두 항구 부산의 삶을 노래한다.

“부산은 산!”이라고 외치는 사람도 많다. 따지고 보면 부산은 이름부터 산이다. 다닥다닥 들어앉은 달동네들을 다녀봤으면 부산은 산이 맞다. 오죽하면 ‘산복도로’가 있을까. 부산 출신 서병수 의원은 “부산은 ‘가이당(かいだん)’”이라고 말한 적 있다. 5년 전 초량동 168계단을 물지게 지고 오르내린 뒤 한 말이다. “이 가파른 계단에 부산 사람의 삶이 다 들어 있어요.”

이 모든 부산을 아울러 부산은 길이다. 계단을 따라 달동네 오르내리고, 바다 바라보며 해안을 걷다 보면 부산의 주인공은 길이란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부산에서도 영도를 걷고 왔다. 말하자면 영도는 부산의 축소판이다. 바다도 있고, 산도 있고, 계단도 많고, 길도 많다. 하여 이야기가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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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둘레길

부산 영도 봉래동 골목의 남파랑길 표식. 손민호 기자

부산 영도 봉래동 골목의 남파랑길 표식. 손민호 기자

공부부터 하고 걷자. 앞서 말했듯이 부산에는 길이 많다. 우선 ‘코리아둘레길’이라는 초대형 프로젝트를 알아야 한다. 걷기여행 열풍이 시작됐던 이명박 정부 시절, 문체부는 동해안을 종단하는 트레일 조성사업에 착수한다. 그 길이 ‘해파랑길’이다.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시작해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동해안을 따라 770㎞ 이어진다.

해파랑길은 시쳇말로 대박이 났다. 50개 전 코스 완주자가 속속 출현했다. 기대 이상의 인기에 문체부는 한껏 고무됐다. 급기야 대한민국의 경계를 연결하는 초대형 트레일 조성 계획을 수립했다. 박근혜 정부 때 발표된 이 프로젝트가 코리아 둘레길이다.

영도 태종대의 남파랑길 이정표. 부산갈맷길과 코스 대부분이 겹친다. 손민호 기자

영도 태종대의 남파랑길 이정표. 부산갈맷길과 코스 대부분이 겹친다. 손민호 기자

동해안 다음은 남해안이었다.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전남 해남 땅끝마을까지 남해안을 따라 길을 냈다. 이름하여 남파랑길. 길이가 무려 1470㎞나 된다. 남파랑길은 해파랑길이 갖고 있던 국내 최장거리 트레일 기록을 가뿐히 넘어섰다. 남파랑길은 지난해 11월 완성됐고, 서해안을 잇는 ‘서해랑길’은 한창 조성 중이다. 이 세 개 해안 둘레길을 철책선 따라 연결 중인 ‘평화누리길’과 연결하면 비로소 코리아둘레길이 완성된다.

남파랑길 부산 구간 지도. 부산에도 모두 5개 코스의 남파랑길이 있다. 그래픽 한국관광공사

남파랑길 부산 구간 지도. 부산에도 모두 5개 코스의 남파랑길이 있다. 그래픽 한국관광공사

남파랑길 70개 코스 중에서 부산에 5개 코스가 있다. 그중에서 영도를 한 바퀴 도는 2코스를 걸었다. 전체 길이는 14.5㎞다. 영도에도 길이 많다. 부산 향토 트레일인 ‘부산갈맷길’의 3-3코스가 남파랑길 부산 2코스와 대부분 겹친다. 해양수산부가 조성한 ‘절영해안산책로’, 부산시와 부산관광공사가 원도심 스토리투어 코스로 개발한 ‘깡깡이길’도 남파랑길 2코스 일부 구간과 중복된다. 이정표에 길 표식이 여러 개 붙어 있는 까닭이다. 영도에서는 길 이름이 중요하지 않다. 영도를 걸었다는 한 문장이면 충분하다.

영도다리의 추억

영도대교 도개 장면. 2013년 재개한 영도대교 도개식이 코로나 사태 이후 중단되었다. 중앙포토

영도대교 도개 장면. 2013년 재개한 영도대교 도개식이 코로나 사태 이후 중단되었다. 중앙포토

영도는 자갈치시장 맞은편에 있다. 전체 면적은 약 14㎢이고, 인구는 12만 명이 조금 못 된다. 멀리서 보면 영도는 바다에 뜬 산이다. 그 산이 봉래산(394m)이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봉래산 가파른 기슭에도 사람들이 들어와 살았다. 육지에 자리 잡지 못하고 떠밀려온 삶들이다. 영도에서 섬과 산과 마을은 좀처럼 구분되지 않는다.

영도다리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영도다리는 한 시절을 풍미한 랜드마크였다. 생각해보시라. 이북 사람 태반이 영도다리를 건너보기는커녕 평생 부산에 와본 적도 없었다. 피란 길에 나선 그들이 어떻게 영도다리를 알고 이 다리 앞에서 만나자고 했을까.

1934년 일제는 식민지 조선의 발전상을 알리기 위해 당시로선 첨단기술을 동원해 국내 최초의 도개교 영도다리를 건설했다. 배가 오면 올라가는 다리라니. 영도다리는 이내 부산을 넘어 전국구 차원의 명소가 됐다. 2013년 도개 행사를 재개한 뒤 영도다리는 하루에 한 번씩 고개를 들었다. 지금은 코로나 사태로 중단됐으나, 영도다리 올라가는 장면을 보려고 전국에서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옛날엔 둘도 없는 구경거리였겠으나 이젠 오래된 친구 같은 현장이었다.

영도다리의 애초 이름이 부산대교다. 지금은 영도대교라 불린다. 영도로 들어가는 또 다른 다리가 부산대교 이름을 물려받았다. 남파랑길 2코스가 부산대교로 영도로 들어왔다가 영도대교로 나간다.

영도할매 

남파랑길 부산 2코스는 영도 봉래산 숲길을 지난다. 숲이 의외로 깊다. 손민호 기자

남파랑길 부산 2코스는 영도 봉래산 숲길을 지난다. 숲이 의외로 깊다. 손민호 기자

영도에 들어온 길은 봉래동을 가로질러 봉래산을 향한다. 남파랑길 코스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봉래동을 지날 때 들러야 할 곳이 있다. 봉래시장이다. 봉래시장은 일제강점기에 생겼다. 예전 규모의 30% 수준으로 줄었으나 역사와 전통은 여전하다.

삼진어묵의 어묵. 삼진어묵은 본래 영도 봉래시장에서 시작되었다. 손민호 기자

삼진어묵의 어묵. 삼진어묵은 본래 영도 봉래시장에서 시작되었다. 손민호 기자

시장 골목 옆에 어묵 열풍을 이끈 ‘삼진어묵’이 있다. 삼진어묵도 원래는 봉래시장 안에 있었다. 1953년 문을 열어 3대째 내려온다. 베이커리처럼 깔끔히 단장한 매장엔 코로나 사태에도 사람이 많았다. 삼진어묵의 대표 메뉴 ‘어묵 고로케’는 갖다 놓기 무섭게 사라졌다.

봉래산에 들었다. 영도할매의 전설이 깃든 곳이다. 제주도에 설문할망이 있는 것처럼 영도에는 영도할매가 있다. 성격은 판이하다. 설문할망은 제주도를 만들었는데, 영도할매는 영도 사람에 해코지를 한다. ‘영도 사람이 영도를 떠나면 영도할매의 미움을 사 망한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길라잡이로 나선 ‘부산의 아름다운 길’ 이동재(66) 전무이사가 마침 영도 출신이었다. 전설이 맞느냐 물었더니 씩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내가 망했잖아요.” 봉래산 정상에 영도할매 바위가 있다는데, 길은 정상으로 향하지 않았다. 기슭을 따라 이어진 숲을 지났다.

편백나무 숲을 지나 전망대에 서니 오륙도가 나타났다. 오륙도도 부산의 랜드마크다. 여기에서 보니 정확히 여섯 개다. 오륙도는 바라보는 자리에 따라 섬이 다섯 개도 되고 여섯 개도 된다. 오륙도 건너편 해안 공원에서 해파랑길과 남파랑길이 갈라진다. 정부 부처마다 동해와 남해를 가르는 기준이 다른데, 문체부는 오륙도를 분기점으로 삼았다.

영도등대에서 내려다본 바다. 바로 아래 자갈마당에서 해산물을 파는 해녀들이 보이고, 바다 멀리 오륙도도 보인다. 손민호 기자

영도등대에서 내려다본 바다. 바로 아래 자갈마당에서 해산물을 파는 해녀들이 보이고, 바다 멀리 오륙도도 보인다. 손민호 기자

봉래산에서 내려온 길은 태종대를 향한다. 지금은 중간 구간이 공사 중이어서 태종대 입구까지 자동차로 이동해야 한다. 태종대는 신라 무열왕의 전설이 내려오는 유서 깊은 명승지다. 기암괴석 즐비한 해안 절벽에 전망대 카페가 들어섰다. 십수 년 전만 해도 ‘자살 바위’라 불렸던 자리다. 영도등대 아래 자갈마당에선 해녀가 해산물을 팔고 있었다. 영도는 ‘바깥물질’을 하러 나온 제주 해녀의 전초 기지였다. 지금도 영도 주민의 3분의 1 이상이 제주도 출신이라고 한다.

두 번째 송도

영도 이송도 길. 거대한 바위 지대를 따라 길이 이어진다. 바다 너머에 송도 해수욕장이 있다. 손민호 기자

영도 이송도 길. 거대한 바위 지대를 따라 길이 이어진다. 바다 너머에 송도 해수욕장이 있다. 손민호 기자

태종대에서 나온 길은 영도 남쪽 해안을 에두른다. 바위와 자갈이 널브러진 해안이 계속되는데, 이 해안을 부산에선 ‘이송도’라 부른다. 이송도를 알려면 먼저 송도를 알아야 한다. 영도 해안 바다 건너편에 송도 해수욕장이 있다. 일제가 1913년 국내 최초로 개장한 해수욕장이다. 당시 송도 해수욕장은 요즘 말로 핫 플레이스였다. 영도 사람들이 바다 건너 핫 플레이스를 바라만 보다 영도 해변도 못지않다는 뜻으로 두 번째 송도, 즉 이송도라 이름 지었다.

영도 앞바다에 선박 주차장 묘박지가 있다. 손민호 기자

영도 앞바다에 선박 주차장 묘박지가 있다. 손민호 기자

이송도 앞바다에 배들이 점점이 떠 있다. 선박 주차장 묘박지(錨泊地)다. 화물선이 이 바다에서 부산항에 정박할 차례를 기다린다. 무질서하게 있는 것 같지만, 배마다 자리가 있다고 한다. 그림 같은 풍경이지만, 실상은 아름답지 않다. 화물선이 오랜 정박해 있다는 건 그만큼 싣고 나갈 화물이 많지 않다는 뜻이란다.

절영해안산책로에 있는 터널. 인스타그램 인증사진 명소로 떠오른 곳이다. 오후 시간 터널 입구에서 인생 사진을 건질 수 있다. 손민호 기자

절영해안산책로에 있는 터널. 인스타그램 인증사진 명소로 떠오른 곳이다. 오후 시간 터널 입구에서 인생 사진을 건질 수 있다. 손민호 기자

이송도 길을 한참 걷다 보면 터널이 나온다. 요즘 인스타그램에서 난리가 난 명소다. 터널 안을 알록달록한 조명으로 단장했는데, 막상 인기가 있는 포인트는 반대편 터널 입구다. 오후 시간 터널 안쪽에서 역광을 받아 사진을 찍으면 소위 인생 사진을 건질 수 있다. 일부러 오후 시간에 맞춰 터널 입구에 도착했다. 아주 긴 줄이 서 있었다.

터널에서 나오면 연한 파란색을 칠한 포장도로가 펼쳐진다. 해수부의 절영해안산책로와 고스란히 겹치는 구간이다. 길 왼쪽에는 바다가 출렁이고, 오른쪽에는 가파른 절벽이 서 있다. 절벽 위로 위태로이 들어선 집들이 보인다. 그 유명한 흰여울마을이다.

피란민의 삶 

바다에서 바라본 영도 흰여울마을. 해안을 따라 길이 놓여 있고 절벽 위로 마을이 들어섰다. 손민호 기자

바다에서 바라본 영도 흰여울마을. 해안을 따라 길이 놓여 있고 절벽 위로 마을이 들어섰다. 손민호 기자

영도에는 이름난 마을이 두 개 있다. 흰여울마을과 깡깡이마을. 두 마을 모두 고단한 삶의 흔적이 배어 있다. 남파랑길이 깡깡이마을은 들렀다 나오지만, 흰여울마을은 올라가지 않는다. 대신 마을 아래, 아니 절벽 아래 해안을 지난다.

흰여울마을은 본래 이송도 마을이었다. 피난민들이 이송도 절벽 위에 터를 잡으면서 마을이 형성됐다. 영도구가 달동네 정비사업을 개시한 2011년, 이송도 마을은 흰여울 문화마을로 거듭났다. 집마다 페인트를 칠하고 담벼락에 벽화를 그려 넣었다. 마을이 시나브로 알려지던 2013년, 영화 ‘변호인’이 개봉했다. 천만 관객을 모은 이 영화에서 송우석(송강호) 변호사의 단골 국밥집 주인 최순애(김영애)의 집으로 흰여울마을의 단칸방 집이 등장했다.

영도 흰여울마을에 있는 영화 '변호인' 촬영지. 중앙포토

영도 흰여울마을에 있는 영화 '변호인' 촬영지. 중앙포토

익히 알려졌듯이, 영화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일화에서 비롯됐다. 흥미로운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어린 시절부터 영도에서 살았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영도에는 대통령이 다녔던 성당과 신혼살림을 했던 아파트가 남아 있다. 이송도는 월사금을 내지 못해 학교에서 쫓겨난 학생 문재인이 해 질 녘까지 서성거렸던 해변이다.

영도 깡깡이마을 앞바다 풍경. 수리 조선소가 아직도 있어 수많은 배가 정박해 있다. 중앙포토

영도 깡깡이마을 앞바다 풍경. 수리 조선소가 아직도 있어 수많은 배가 정박해 있다. 중앙포토

깡깡이마을에도 곡진한 사연이 배어 있다. 영도 어귀 대평동에는 1800년대 후반부터 조선소가 들어섰다. 대평동 조선소에서 ‘깡깡이’라는 말이 생겼다. 깡깡이는 망치로 선박의 찌그러진 부분을 펴고 녹을 벗겨내는 작업을 이른다. 망치질할 때 ‘깡깡’ 소리가 난다 해서 깡깡이다. 한국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아지매들이 깡깡이를 해서 생계를 유지했다. 아지매들은 아파트 4~5층 높이에 매달린 널빤지에 앉아 온종일 망치질을 했다. 소리 때문에 난청이 된 아지매도, 널빤지에서 추락해 불구가 된 아지매도 많았다. 깡깡이마을도 도시 재생 사업을 통해 예술 마을로 거듭났다.

영도 깡깡이마을의 수리 조선소. 중앙포토

영도 깡깡이마을의 수리 조선소. 중앙포토

깡깡이마을에서 나오면 영도다리다. 이제 다리를 건너 자갈치시장이 있는 남포동에 들어가면 길이 끝난다. 걸었던 길은 막상 길지 않은데, 걸어온 길을 돌아보니 절대 짧지 않다. 셀카봉 든 젊은 연인이 수레 끄는 꼬부랑 할매 곁을 까르르 웃으며 지나갔다.

길 정보

남파랑길 부산 2코스 지도. 그래픽 한국관광공사

남파랑길 부산 2코스 지도. 그래픽 한국관광공사

남파랑길 부산 2코스는 대부분 부산갈맷길 3-3코스와 겹친다. 부산갈맷길 이정표가 훨씬 많이 있으니, 부산갈맷길 이정표만 따라 걸어도 길 잃을 염려는 없다. 사회적 기업 ‘부산의 아름다운 길’이 남파랑길 체험 프로그램을 운용한다. 전문 길라잡이가 일정 내내 동행하며 숙박과 음식도 제공하는 패키지여행 상품이다. 코스와 일정을 상의해서 결정한다. 스토리텔링 전문여행사 ‘여행특공대’는 ‘절영마 영도스토리투어버스’를 운용한다. 7시간 동안 영도 구석구석을 여행하는 상품이다.

부산=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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