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혁 주미대사가 10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와 협상을 통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조기에 공급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혈전 부작용 논란을 빚은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대신 화이자 또는 모더나 백신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대사는 확보 시점을 6월 전으로 제시해 오는 21일 백악관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관련 논의 결과가 주목된다.
AZ 백신 대신 화이자·모더나 확보 총력전 #美, 7월까지 받기로 한 백신 양보하면 가능
이 대사는 이날 화상으로 열린 워싱턴특파원 간담회에서 "대사관에서는 백악관과 국무부 인사를 접촉해 6월 전 백신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정부 또는 제약업체로부터 백신을 조기 공급받을 수 있을지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면서다.
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와 협상을 통해 확보하려는 백신은 미국이 비축분을 풀겠다고 발표한 AZ 백신이 아니라 화이자 또는 모더나 백신이다. AZ 백신 비축분은 미국이 저개발국 대상으로 무상 공급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는 데다 AZ 백신 추가 확보는 국내에서 크게 환영받지 못할 수 있어서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가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을 6월 전 조기 공급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현재로써는 미지수다. 이론적으로 한국 정부가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을 조기에 공급받기 위해서는 미국 정부가 자신이 확보한 물량을 양보해야 한다. 계약 날짜에 미국에 공급하기 위해 공장이 최대치로 가동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허락 없이는 다른 나라에 공급할 물량을 만들기 어렵다.
미국 정부는 오는 7월 말까지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 각각 3억 회분을 공급받기로 돼 있다. 얀센(존슨앤드존슨) 백신도 1억회 분량을 받게 된다.
바이든 행정부가 목표로 한 성인 1억6000만 명 접종을 위해서는 최대 3억2000만 회분이면 충분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나머지 3억여 회분은 당장 사용할 필요가 없으므로 미국 정부가 유연성을 발휘해 다른 나라에 먼저 공급하도록 결심하면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는 계산이다.
예컨대, 미국 정부가 허락하면 화이자와 모더나가 7월 말까지 미국에 공급하려던 물량을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 먼저 공급한 뒤 미국은 가을 이후에 납품받을 수 있지 않겠냐는 기대다. 미리 필요한 물량을 당겨 쓰고 나중에 갚는 '스와프'나 '대여(loan)' 방식 모두 가능하다.
한국은 당장 5~6월 백신 '보릿고개'를 넘기는 게 필요한데 미국은 이 시기에 백신이 공급 과잉 상태라는 점을 집중적으로 설득하겠다는 전략이다.
다만, 바이든 행정부로서는 한국에 우선 공급할 명분이 있어야 한다. 한국보다 사정이 더 열악한 나라가 많기 때문에 한국에 백신을 우선 공급해야 하는 이유가 뚜렷해야 한다.
‘남는 백신’ 확보 전략엔 다른 변수도 있다. 이날 미 식품의약청(FDA)은 12세 이상 아동·청소년에게 백신 접종을 승인했다. 미국 내 신규 백신 수요가 발생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백신 효과를 높이기 위한 3차 '부스터 샷'을 맞히기로 결정하면 미국이 백신을 예상보다 더 필요로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 거래가 성사되기 위해서는 바이든 행정부의 결심이 가장 중요하다. 이 대사는 "미국이 한국 사정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고 말했다.
백신을 조기에 확보하게 될 경우 한국이 반대급부로 무엇을 내놓을 지도 관심이다. 한국 정부는 중국 견제를 위한 미국·일본·호주·인도 4개국 협의체인 쿼드에 참여하는 문제와 관련해 코로나19 백신, 기후변화, 신기술 세 분야로 진행되는 워킹그룹에 참여하는 방법을 신중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