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재의 밀담

[이철재의 밀담]KF-21 보라매는 이름만 3개…국방부 'K무기' 작명의 비밀

중앙일보

입력 2021.05.09 05:00

업데이트 2021.05.09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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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0일 경남 사천의 한국항공우주(KAI) 공장에서 날렵한 모습의 전투기가 첫선을 보였다. 이 전투기의 이름도 공개됐다. ‘KF-21 보라매’.

지난달 10일 경남 사천의 한국항공우주(KAI) 공장에서 열린 시제기 출고식에서 KF-21 보라매의 이름이 공개됐다. 방사청 유튜브 계정 캡처

지난달 10일 경남 사천의 한국항공우주(KAI) 공장에서 열린 시제기 출고식에서 KF-21 보라매의 이름이 공개됐다. 방사청 유튜브 계정 캡처

KF-21 보라매는 어떻게 읽을까. ‘케이에프 이십일 보라매’가 정답이다.

모든 무기엔 이름이 있다. 그러나 아무렇게나 무기 이름을 짓는 건 아니다.

국방부의 국방전력발전업무훈령 9조에 따르면 무기명칭 체계는 전력명, 통상명칭, 고유명칭으로 나뉜다. KF-21 보라매의 경우 전력명은 KF-X, 고유명칭은 KF-21, 통상명칭은 보라매다.

무기는 하나, 이름은 3가지

전력명은 합동참모본부가 무기체계의 소요결정 과정에서 만든 사업명이다. KF-21 보라매의 전력명인 KF-X는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Korean Fighter eXperimental)의 영문 약자다.

청해부대로 파병된 충무공 이순신함이 부산항을 떠나고 있다. 이 구축함은 광개토-Ⅱ, KDX-Ⅱ 충무공 이순신급 1번함이다. 중앙포토

청해부대로 파병된 충무공 이순신함이 부산항을 떠나고 있다. 이 구축함은 광개토-Ⅱ, KDX-Ⅱ 충무공 이순신급 1번함이다. 중앙포토

전력명은 전력화 이후에도 명칭사용의 혼란방지를 위해 병행사용이 가능하다고 돼 있다. 해군은 전력명에 애착을 가진 듯 하다.

해군의 구축함엔 광개토-Ⅰ(3200t급), 광개토-Ⅱ(4400t급), 광개토-Ⅲ(7600t급)가 있다. 영문 전력명인 KDX-Ⅰ, KDX-Ⅱ, KDX-Ⅲ로도 알려졌다. Ⅰ, Ⅱ, Ⅲ은 각각 ‘원’‘투’‘스리’로 읽는다. 언론에선 광개토-Ⅰ, 광개토-Ⅱ를 한국형 구축함으로, 광개토-Ⅲ를 이지스 구축함이라고도 쓴다.

해군의 잠수함은 장보고-Ⅰ(1200t급), 장보고-Ⅱ(1800t급), 장보고-Ⅲ가 있다. 영문 전력명은 KSS-Ⅰ, KSS-Ⅱ, KSS-Ⅲ다.

그런데 장보고-Ⅲ는 배치-Ⅰ, 배치-Ⅱ, 배치-Ⅲ로 갈린다. 배치(Batch)는 같은 종류로 건조되는 함정들의 묶음이다. 뒤의 숫자는 성능 개량 순서다.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르거나 전력화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함정 사업은 보통 배치로 나눠 진행한다.

장보고-Ⅲ 배치-Ⅰ은 3000t급이다. 장보고-Ⅲ 배치-Ⅱ는 3600t급으로 지어진다. 4000t급의 장보고-Ⅲ 배치-Ⅲ는 핵추진 잠수함으로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다.

해군은 1번함의 통상명칭에다 ‘~급(級)’을 붙인다. 이지스 구축함 광개토-Ⅲ(KDX-Ⅲ)는 1번함 세종대왕함을 따라 세종대왕급이라 부른다. 그런데 이지스 구축함이 기존 3척에 추가로 3척 더 건조된다. 그래서 앞으로 전력명에 배치-Ⅰ과 배치-Ⅱ이 덧대질 계획이다.

K-무기 인증 방법? 고유명칭에 'K' 확인

고유명칭은 KF-21처럼 영문과 숫자로 짜여졌다. 고유명칭은 무기체계를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해준다. K는 한국에서 만들었다는 의미다. KF-21 보라매는 개발에서 설계, 제작을 모두 한국에서 이뤄졌다.

 KC-330 공중급유기가 선두로 공군의 주력 KF-16 전투기와 함께 날고 있다. 백조 떼의 V자 비행과 비슷하다. KC-330의 K는 K-항공기라서 붙은 게 아니라 공중급유기의 부호인 K를 뜻한다. 공군

KC-330 공중급유기가 선두로 공군의 주력 KF-16 전투기와 함께 날고 있다. 백조 떼의 V자 비행과 비슷하다. KC-330의 K는 K-항공기라서 붙은 게 아니라 공중급유기의 부호인 K를 뜻한다. 공군

공군에서 K-항공기가 제법 있다. KT-100, KT-1, KA-1, KF-5, KF-16 등이다. KT-100과 KT-1은 KAI가 생산한 훈련기다. KA-1은 KT-1에 무장을 단 전술통제기ㆍ경공격기다.

KF-5는 미국의 F-5 프리덤파이터를 1980~86년 국내서 조립생산한 전투기다. KF-16은 1994~2006년 미국의 F-16 파이팅팰콘 140대를 들여온 전투기다. 12대는 직도입, 36대는 단순조립 생산, 72대는 라이선스 생산분이었다. 이후 20대가 추가 생산됐다.

국내서 만든 T-50 훈련기와 FA-50 경공격기엔 K가 없다. 공군 관계자는 “지금처럼 일관성 있는 무기체계 명명 규칙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KC-330 공중급유기의 K는 ‘Made in Korea’가 아니라 공중급유기(tanKer)를 의미한다. 참고로 F는 전투기, T는 훈련기, A는 공격기, C는 수송기의 부호다.

육군은 고유명칭에 공군과 달리 '-;가 빠졌다. 또, 공군처럼 기능별 구분이 없다. 그래서 K2는 소총이자 전차, 방독면의 고유명칭이다. 헷갈리지 않기 위해 K2 소총, K2 방독면, K2 전차로 표기해야 한다.

개령형의 고유명칭은 복잡하다. K1 전차의 개량형인 K1A1 전차에서 ‘A’는 성능개량의 부호다. B는 재질개량, C는 형태개량을 각각 뜻한다. ‘A1’의 ‘1’은 첫 번째 성능개량형이란 의미다.

영어 발음 일본 영향, 숫자는 복잡해

그런데 고유명칭에 좀 희한한 규칙이 있다. 한 자리 숫자는 영어로, 두 자리 숫자는 우리말로 읽는다는 점이다. K1은 ‘케이원’, K2는 ‘케이투’이며, K21은 ‘케이이십일’이다.

세자리 숫자는 좀 복잡하다. KT-100처럼 딱 떨어지는 숫자는 ‘케이티백’인데, KC-330은 ‘케이시삼삼공’이다.

양욱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 겸임교수는 “창군 멤버나 6ㆍ25 참전 용사의 수기를 보면 M1 개런드 소총을 ‘에무(M의 일본식 표기)왕’ 또는 ‘에무원’이라고 썼다”며 “베트남 전쟁 때 M16 소총을 ‘에무십육’ 또는 ‘엠십육’이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그는 “두 자리 숫자는 영어가 복잡하고 까다로워서 우리말로 하는 게 아닐까 추정한다”고 덧붙였다.

대통령이 이름 붙인 '88 전차'…서울 올림픽 시대 반영

통상명칭은 상징적 의미를 가진 별명이다. 임무 구분과 의사 전달을 돕기 위해, 대외 홍보용으로 통상명칭을 부른다. 군이나 연구개발에서 통상명칭을 만든 뒤 방사청이 이를 최종 결한다.

1987년 9월 18일 군부대에서 열린 K1 전차 명명식. 전두환 전 대통령은 이 전차에 ‘88전차'라는 통상명칭을 붙였다. KTV 유튜브 계정 캡처

1987년 9월 18일 군부대에서 열린 K1 전차 명명식. 전두환 전 대통령은 이 전차에 ‘88전차'라는 통상명칭을 붙였다. KTV 유튜브 계정 캡처

전차ㆍ장갑차ㆍ전투차량엔 맹수 등 육ㆍ수상 서식 동물과 그 동물의 신체적ㆍ행위적 특징 또는 무공이 있는 명장ㆍ전쟁영웅의 이름을 붙인다. K2 전차의 통상명칭은 ‘흑표’다.

K1 전차는 ‘88전차’다. K1 전차를 실전배치 중이던 1987년 9월 18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조국통일선봉 88전차’라는 휘호를 쓴 뒤 부대에 전달했다.

88은 이듬해 열렸던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의미한다. 전 전 대통령은 “역사적인 88서울올림픽을 기념하고 사생결단의 각오로 올림픽을 방해하려는 북한의 책동을 분쇄한다는 굳은 의지의 표현에서 붙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화포ㆍ대공포는 우리 역사의 옛 화포 또는 우리나라의 신화ㆍ수호신에서 따온다. 북방을 지키는 수호신 현무를 지대지 미사일의 통상명칭으로 삼는 게 대표적이다. 최근 개발한 미사일의 통상명칭은 ‘~궁(弓)’으로 끝난다. 현궁은 대전차 미사일, 신궁은 휴대용 대공 미사일, 해궁은 함대공 미사일, 천궁은 지대공 미사일을 각각 가리킨다.

전투기엔 자연현상 또는 맹금류, 맹금류의 신체적 ㆍ행위적 특징을(KF-21 보라매), 지원기엔 우주현상 또는 맹금류를 제외한 조류나 상상 조류와 그 조류의 신체적ㆍ행위적 특징(KC-330 시그너스. 시그너스는 백조자리)을 붙인다.

경항공모함 뭐라고 불러야 하나? 

해군의 구축함은 충무공 이순신함처럼 영웅으로 추앙받는 역사적 인물, 국난극복 기여 호국인물을 통상명칭으로 삼는다. 잠수함의 통상명칭은 해양에서 국난을 극복하거나, 항일 독립운동에 기여한 인물에서 따온다. 유관순함이 대표적이다. 호위함의 통상명칭엔 특별ㆍ광역시, 도, 도청소재지가 들어간다. 인천함의 그 예다.

해군이 추진하고 있는 한국형 경항모. 영국의 항모인 퀸엘리자베스함처럼 아일랜드(함교)가 2개다. 미국의 강습상륙함인 아메리카함처럼 평평한 갑판을 갖고 있다. [해군]

해군이 추진하고 있는 한국형 경항모. 영국의 항모인 퀸엘리자베스함처럼 아일랜드(함교)가 2개다. 미국의 강습상륙함인 아메리카함처럼 평평한 갑판을 갖고 있다. [해군]

상륙함은 고준봉함 등 산봉우리 명을 통상명칭으로 한다. 상륙, 고지탈환의 의미에서라고 한다. 초계함의 통상명칭은 시 단위 중소도시 명이다. 2010년 북한의 공격으로 피격된 천안함은 초계함이었다. 군수지원함은 천지함ㆍ대청함ㆍ화천함과 같이 담수량이 큰 호수 명을 통상명칭으로 삼는다.

대형상륙함은 영해의 동쪽(독도함)ㆍ남쪽(마라도함)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섬 이름을 붙였다. 문제는 경항모의 통상명칭이다. 해군에선 항모를 가진다면 충무공 이순신함으로 불리길 원했다. 경항모의 가치와 의미를 나타내는 데 이보다 더 좋은 통상명칭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충무공 이순신함은 광개토-Ⅱ(KDX-Ⅱ) 1번함의 통상명칭으로 이미 써버린 상태다. 정부 소식통은 “광개토-Ⅱ(KDX-Ⅱ)부터 본격적인 구축함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해군 지휘부가 통상명칭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면서 “손원일함도 고려했다가 격론 끝에 충무공 이순신함으로 낙점했다”고 말했다.

해군은 나중에 경항모의 통상명칭 때문에 애먹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여기서 퀴즈. 육군 K200 장갑차의 통상명칭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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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두꺼비다. 1982년 3월 국방과학연구소가 두꺼비의 번식력처럼 K200 기술을 기반으로 다양한 계열 무기를 만들겠다고 붙인 통상명칭이다.

이철재ㆍ박용한 기자 seajay@joo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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