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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한은화의 생활건축

‘장벽 아파트’ 바뀔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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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은화 기자 중앙일보 기자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

서울 인왕산에서 동쪽을 바라봤을 때 유독 눈에 잘 들어오는 아파트 단지가 있다. 서울 성북구 돈암동 한신한진아파트다. 성북공원이 있는 언덕에 장벽처럼 솟아 있다. 16층짜리 31개 동(4515가구)이 구릉지보다 더 높게, 빽빽이 서 있으니 도드라진다.

오죽하면 1998년 아파트가 다 지어졌을 당시 “아파트 난개발이 심각하다”는 여론이 형성됐고, 주거지역 용적률(대지면적에 대한 건물 연면적의 비율) 기준을 확 낮추게 됐다. 이전까지 주거지 용적률은 모두 400% 이하로 적용했지만, 이 아파트가 지어진 뒤 1~3종으로 세분화해 관리한다. 아파트를 주로 짓는 3종 주거지의 경우 서울시 조례상 250% 이하로, 법상 최대 300%를 넘지 못한다.

‘장벽 아파트’가 도시 관리체계를 바꾼 사례지만, 여전히 익숙하다. 특히 한강 변 일대 강남에서 흔하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경우 똑같은 높이의 아파트 동이 남쪽을 바라보며 쭉 늘어서 있는데 그 길이가 장장 1㎞가 넘는다. 아파트는 어쩌다 똑같은 높이로, 장벽처럼 짓게 됐을까.

똑같은 높이로 지어진 강남 일대 아파트의 모습. [연합뉴스]

똑같은 높이로 지어진 강남 일대 아파트의 모습. [연합뉴스]

인동거리 규제 탓이다. 아파트를 지을 때 동(棟) 사이 띄워야 할 거리가 건축법으로 정해져 있다. 빛이 안 들거나, 남의 집 안을 훤히 들여다보이지 않게 한 조치다. 법상 앞 동 높이의 0.5배, 뒷동 높이의 0.4배 중 큰 것만큼 이격해야 한다. 최소치이고, 이 이상 되도록 지자체가 정한다. 서울의 경우 앞 동 높이의 0.8배, 뒷동 높이의 0.6배 중 큰 것을 적용한다.

동의 높낮이를 달리하면 손해를 보는 구조다. 앞 동을 낮추면 결국 높은 뒷동 높이에 맞춰 간격을 벌려야 한다. 다양성을 위해 높낮이의 변화를 줬다간 가구 수가 줄어 사업성이 확 떨어진다. 그래서 건설사들은 동 높이를 되도록 똑같이 맞춘다. 인도 쪽에 붙어선 아파트의 높이를 보행자에게 위압적이지 않게 조정하거나, 구릉지에 들어서는 아파트의 앞 동을 낮게 설계할 수 없다. 획일적인 일(一)자, 판상형 아파트의 탄생기다.

인동거리 규제가 획일적인 아파트 단지를 만든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결국 법이 움직였다. 지난 3일 국토교통부는 건축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앞으로 아파트를 지을 때 앞쪽(남·동·서측면)에 저층 건물을 배치하면 그 높이의 0.5배만 이격해 뒷동을 지으면 된다. 예를 들어 앞에 30m 높이(약 10층)의 동을 두고, 뒤에 80m 높이(약 26층)의 동을 둔다면 이전에는 높은 동 높이에 맞춰 동 간 이격거리가 32m였다면 이제는 앞 동 높이에 맞춰 15m만 떼면 된다. 다만 사생활 보호를 위해 최소 이격 기준(10m)을 뒀다. 반세기 만의 변화다. 법상 몇 자 안 되는 내용의 삭제지만, 아파트는 또 달라지고 도시 경관은 바뀌게 될 것 같다.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