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없앤 공놀이 공부…12살 장애아 '어흥' 소리만 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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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섭 군은 학교 후 집 근처 복지관에서 언어공부를 한다. 김군은 아직 한글을 완전히 깨우치지 못했다. 사진 장모씨 제공

김이섭 군은 학교 후 집 근처 복지관에서 언어공부를 한다. 김군은 아직 한글을 완전히 깨우치지 못했다. 사진 장모씨 제공

“그토록 가고 싶어하던 학교였는데…”

12살 아들의 학교 생활을 얘기하다 엄마의 말끝이 흐려졌다. 아들은 최근 학교에서 돌아오면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호랑이 흉내’를 내는 날이 늘었다. 지적장애가 있는 아들 김이섭(가명)군이 기분이 좋지 않으면 하는 행동이다. 두손을 들고 “어흥”이라 외치며 소리를 지르거나 화난 표정을 짓는다고 한다. 엄마 장모(54)씨는 아이가 학교에서 외로워진 것 같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장애아동을 위한 교내 수업이 제한된 데 따른 일이다.

지적장애가 있는 김군은 아직 한글을 완전히 깨우치지 못했다. ‘배가 고픈 것’과 ‘배가 아픈 것’을 모두 배가 아프다고 말한다. 초등학교 고학년이지만 집에 홀로 둘 수는 없다. 지난해 봄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김군이 다니던 학교와 복지관이 모두 문을 닫았다. 장씨와 누나 셋이 번갈아 가며 김군을 돌봐야 했다. 축구를 좋아하는 김군은 외출하지 못하자 집에서 소리를 내며 뛰기 일쑤였다. 엄마가 할 수 있는 건 아들을 달래며 학교와 복지관이 문을 열기만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매일 등교하지만 외로움은 커졌다

김이섭군은 하교 후 '힘들어서 복지관 수업을 가기싫다'며 등을 돌렸다. 사진 장모씨 제공

김이섭군은 하교 후 '힘들어서 복지관 수업을 가기싫다'며 등을 돌렸다. 사진 장모씨 제공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낮아지며 엄마의 염원대로 김군의 외출 길이 열렸다. 인천에 있는 전교생이 300명 미만인 김군의 학교는 매일 등교수업을 한다. 김군이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복지관에 가면서 가족들도 일상을 되찾는 듯했다.

하지만 다른 근심거리가 생겼다. 올해 6학년인 김군은 비장애 학생들과 함께 통합반 수업을 듣는다. 다만 국어와 수학 과목은 장애아동에 맞춰 가르치는 도움반에서 배운다. 문제는 학교가 통합반 수업에서 사회성 활동, 작업진로활동 등을 줄였다는 점이다. 운동장에서 하던 체육 활동도 강당에서 거리를 둔 채 제한적으로 한다. 코로나19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장애 아동에게 지역사회와 연계한 활동은 사회와 만나는 통로다. 상대적으로 이해력이 부족한 장애 아동은 마트, 공방, 숲 등을 직접 체험하며 인지능력을 키운다. 그런데 이런 활동을 줄이다 보니 학습 이해력이 떨어진 장애아동은 수업에서 겉도는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게 장씨의 말이다.

김군도 좋아하는 야외활동이 줄고 수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면서 자주 ‘호랑이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활동교사가 아무리 달래도 좋아하는 복지관 수업조차 거부하는 날이 있다고 한다. 장씨는 “코로나 이전에는 등하굣길에 학교에서 아이의 일상 등을 파악하고 선생님과 자주 상담했다”며 “코로나 확산 이후엔 학교에서 아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바로 알기 어려워졌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린이날 함께 못해 미안한 엄마

김이섭군은 축구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뛰어다니면서 공을 차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김군이 활동지원사 집 근처에서 공을 차고 있다. 사진 장모씨 제공

김이섭군은 축구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뛰어다니면서 공을 차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김군이 활동지원사 집 근처에서 공을 차고 있다. 사진 장모씨 제공

홀로 4남매를 키우는 장씨는 서비스업종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한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 주간 시간대가 근무시간이다. 5인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랴 아이들을 돌보랴 눈코 뜰 새 없는 나날이지만 엄마는 미안함이 앞선다. 어린이날에도 일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하지 못해서다. 장씨는 조만간 아이들과 꼭 놀이공원을 가겠다고 했다. 힘겨운 일상을 보내는 자신과 아이들에게 “잘하고 있다. 힘내자”며 위로해주고 싶다는 게 그의 뜻이다.

“코로나로 모두 상황이 어려운 건 알아요. 하지만 장애 아동을 위한 질 좋은 특수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조금은 신경 써주셨으면 좋겠어요.” 아들의 장애를 함께 극복하며 가정과 일터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엄마의 간절한 어린이날 소망이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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