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금 0원, 정부 손놓자 대학 돈풀기 경쟁…그래도 정원미달

중앙일보

입력 2021.04.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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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충남 청양에 있는 충남도립대는 올해 신입생 전원에게 등록금을 받지 않았다. [사진 충남도립대]

충남 청양에 있는 충남도립대는 올해 신입생 전원에게 등록금을 받지 않았다. [사진 충남도립대]

충남 청양군의 충남도립대 신입생은 올해 1학기 등록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 대학 측이 신입생 미달 사태를 막기 위해 ‘등록금 0원’ 혜택을 들고 나와서다. 이 대학 등록금은 인문사회 계열은 학기당 106만원, 자연·공학계열 129만원 정도다. 충남도립대 관계자는 “한국장학재단의 국가장학금 대상자는 차액을 학교에서 지원하고, 나머지 학생들 대학 자체 재원으로 등록금 전액을 지원했다”고 말했다.

[위기의 지방대] ②
20년 전 학령인구 감소 예측에도 대책 미적

이렇게 0원이라는 파격적인 혜택을 내놨지만, 올해 신입생 모집 실적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정원 미달이 나면서다. 충남도립대의 올해 신입생 모집 정원은 456명. 최종 등록률은 98%(447명)에 그쳤다. 이 대학의 정원 미달은 1998년 개교 이래 처음이다.

만 18세 이상 학령인구 추이

만 18세 이상 학령인구 추이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 위기는 20년 전부터 예견됐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저출산 기조가 심화하면서 “학령인구 감소와 함께 대학의 재정 위기가 닥칠 것”이란 경고였다. 서원대 총장직무 대행을 지낸 엄태석 행정학과 교수는 “이미 90년대부터 저출산 문제가 부각됐음에도 당시 수십여 개의 대학 설립인가가 나면서 학령 인구에 비해 대학이 포화상태가 된 사태에 이르렀다”며 “정부가 저출산 문제에 해결에만 역점을 둔 나머지 대학 통폐합이나 구조조정에 뒤늦게 대처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교직원·학생 연쇄 피해…어려운 사립대 통폐합 

2018년 폐교한 전북 남원의 서남대학교. [연합뉴스]

2018년 폐교한 전북 남원의 서남대학교. [연합뉴스]

엄 교수는 이어 “사립 대학의 경우 경영이 어렵다고해서 일반 기업체처럼 쉽게 파산하기 어렵다”며 “설립자의 출연금 문제, 교직원의 생존권, 학생들의 교육권이 얽혀있다는 점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대책을 마련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참여정부(2003년~2007년) 때 대학구조개혁 사업으로 국립대 통폐합 등을 시행했지만, 사립대 통폐합이나 퇴출은 진행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사립학교법 개정을 통해 재정 위기에 처한 대학의 퇴출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김경회 명지대 교육대학원 석좌교수는 “사학법은 인구 팽창기인 1963년에 만들어져 구조조정 시기인 현재와 맞지 않는다”며 “학생 수가 줄어 잉여재산이 생기더라도 사학 법인이 이를 수익용으로 바꿔 경영을 개선하거나, 매각을 통한 용도 변경이 어렵게 돼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설립자가 한번 재산을 출연하면 공적 재산으로 분류돼 활용에 엄청난 제약이 따른다”며 “사학법을 개정해 한계대학이 자진 폐교할 경우 잔여재산의 일부를 설립자나 출연자가 지정한 곳에 돌려주거나 증여세를 감면하는 등 유인책이 필요하다. 그래야 대학 간 인수합병이나 단과대학, 학과 간 정원 교환이 가능하다”고 했다.

고사 위기 지방대학…너도나도 돈 풀기 경쟁

광주 호남대가 수시, 정시 최초 합격자는 55만원, 충원 합격자는 20만원을 현금으로 지원하는 ‘학업 장려 장학금’을 지급했다. 아이폰과 에어팟 교환권을 받을 수 있다는 홍보 팸플릿. [사진 호남대 홈페이지 캡처]

광주 호남대가 수시, 정시 최초 합격자는 55만원, 충원 합격자는 20만원을 현금으로 지원하는 ‘학업 장려 장학금’을 지급했다. 아이폰과 에어팟 교환권을 받을 수 있다는 홍보 팸플릿. [사진 호남대 홈페이지 캡처]

박남기 광주교육대 교육행정학과 교수는 “지역사회의 한 축인 지방대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학구조조정과 함께 지역균형발전을 통한 수도권 쏠림 현상을 해소해야 한다”며 “초·중·고 교육에만 집중된 지자체의 행·재정적 지원을 지역 대학에 할애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각종 현물 지원에도 미달 사태가 속출하자 예년과 달리 ‘n차 모집’도 통하지 않는 분위기다. 신입생 수가 워낙 줄어서다. 국립목포대는 올해 신입생 정원 1581명 중 1377명(87.1%)을 모집했다. 이 대학은 정시모집 결과 신입생 정원이 크게 못 미치자 지난 2월 18일 이후 여섯 차례에 걸쳐 추가 모집을 했다. 하지만 추가 등록 인원은 42명에 불과했다.

전문가 “사립학교법 개정, 회생 시스템 마련” 지적

지난해 5월 부산 해운대구 동부산대학교 정문 앞에 폐교를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다. [중앙포토]

지난해 5월 부산 해운대구 동부산대학교 정문 앞에 폐교를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다. [중앙포토]

전문가들은 위기에 몰린 지방대학을 겨냥해 상시 예방·관리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한국교육개발원은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한계대학 대응 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재무구조가 부실하거나 정상적인 학생모집이 불가능한 ‘한계대학’이 발생하기 전 예방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영인 한국교육개발원 고등교육제도연구실장은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재정 결손으로 경영이 악화한 대학이 증가하고 있다”며 “통제 일변도의 대학구조 평가보다는 대학 스스로 회생 전략을 짤 기회를 만들어주고, 대학의 위기 유형에 따른 재정지원과 제도를 뒷받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최종권·김윤호·이은지·허정원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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