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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전화 걸어와 나와의 옛 응어리 푼 현역 시절 상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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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73)

중국 사천성에 구채구라는 유명한 관광지가 있다. 당나라 때부터 9개의 장족마을이 있다고 해 이름이 유래된 구채구는 무지개 빛의 맑고 투명한 호수물로 전 세계인을 매료시키고 있다. 옛말 틀린 것 없다고 여겼던 내 생각이 깨진 것은 구채구의 맑은 물에 사는 물고기를 보고나서다.

옛글에 ‘수지청즉무어 인지찰즉무도(水至淸即無魚, 人至察即無徒)’라는 글이 있다. 해석하면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살 수가 없고 사람이 너무 차고 자신만을 돌보면 무리가 따르지 않는다는 말이다. 구채구의 물고기를 보고 난 뒤로는 옛말이 절대적으로 맞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물이 너무 맑아도 고기가 사는구나. 그렇지만 사람이 너무 차고 자신만을 챙기는 데 누가 그를 따르고 그의 주위에 어떤 사람이 몰려들 것인가는 아직도 유효하다.

중국 사천성 구채구의 고기들을 보고 난 뒤로는 옛말이 절대적으로 맞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물이 너무 맑아도 고기가 산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진 pixabay]

중국 사천성 구채구의 고기들을 보고 난 뒤로는 옛말이 절대적으로 맞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물이 너무 맑아도 고기가 산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진 pixabay]

인생 전반부에는 사회적 지위나 권력, 금력에 따라 맘에 내키지 않아도 많은 사람이 따를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인생 후반부, 소위 갓끈 떨어진 듯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주위에 있던 사람은 많이 사라지고 외로워지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자신은 비록 특별히 인정 없이 굴지 않아도 ‘무도(無徒)’의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인생 후반부 사회적 연대와 인적 교류가 적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자신만을 살피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인양했던 과거 삶의 자세는 버려야 한다.

함께 살아가는 자세가 더욱 필요하다는 얘기다. 혹자는 ‘혼자 사는 것도 괜찮아, 과거의 인연에 연연할 게 뭐 있나? 나는 홀로 있는 게 번잡하지 않고 좋던데’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건 엄밀히 얘기하자면 자기 위안이요 바람일 뿐이다.

얼마 전 어느 방송 프로에서 세계 100대 행복학자 중 한 사람인 서은국 교수의 강의를 시청한 적이 있다. 내 나름의 관점에서 서 교수가 주창하는 행복을 정의한다면 ‘행복이란 자극에 대한 인식과 반응의 경험이 축적된 상태인데, 그 자극 중 행복함을 느끼게 하는 가장 중요한 자극이 사람’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물질적, 경제적 풍요가 행·불행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여기고 있는데, 사실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받는 자극과 그를 인식하고 느끼는 감정이 행·불행의 가장 큰 요인이라는 얘기다.

이런 예를 한번 들어보자. 맛있는 음식을 준비한 아내에게 “와, 맛있다. 우리 이 음식점 한번 차려볼까?”라는 농을 건넨 적이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내 요리실력이 그렇게 좋아?”하고 즐거워했을 아내가 그 날따라 “뭐야? 나보고 식당이나 하라고?”하고 짜증을 내는 것이 아닌가. 바로 오전에 직장에서 불편한 인간관계를 겪었던 직후였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이 예를 통해 행·불행을 좌우하는 가장 큰 자극이 사람과의 관계라는 서 교수의 이론에 수긍이 간다.

이런 사실은 세계 여러 나라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나타난다. ‘당신은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북유럽 여러 나라의 국민은 매우 행복하다고 답해 상위 클래스에 랭크된 데 반해 우리나라 국민의 행복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끝부분에 있다. 그 요인을 알아보니 북유럽 국가의 국민이 행복하다고 여긴 이유가 단순히 물질적, 경제적 풍요가 아닌 이웃과 사회구성원 상호 간 신뢰에 있고 일본이나 우리나라 국민은 이웃을, 사람을 신뢰할 수 없기에 별로 행복하지 않다는 결과라는 것이다. 북유럽 국가의 행복지수가 높이 나왔듯 행·불행을 가르는 중요한 요인은 사람과의 관계라는 자극에 어떤 반응을 갖고 있느냐, 나와 관계돼 있는 사람이 얼마나 내게 긍정적 자극을 주는가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하면 좋은 인간관계가 행복의 전제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좋은 인간관계는 행복의 전제조건이다. [사진 한익종]

좋은 인간관계는 행복의 전제조건이다. [사진 한익종]

최근 들어 조그마한 어촌 오지마을(?)로 나를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은퇴 후 한동안 인적교류가 줄어든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다. 최근에는 오래전 모셨던, 현역시절에 별로 좋은 감정이 아닌 상사가 전화를 걸어와 옛 응어리를 푼 적이 있다. 최근의 이러한 일을 생각하면 내가 과거 직장생활 할 때보다는 조금 따뜻해졌나 하는 생각이 든다. 따뜻해졌다는 얘기는 나만의 욕심을 버리고 함께 살아가는 자세를 보였다는 말로 갈음해도 좋다. ‘인지찰즉무도’가 아니라 ‘인지온즉운도(人之溫即雲徒)’, 사람이 따뜻하면 주위에 사람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아닌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이후 사람과의 관계가 소홀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불행해질 가능성이 커져 간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 치지만 중요한 것은 양적 만남에 있지 않다. 질적 교류와 서로에 대한 격려와 관심까지 줄어들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프랑스 학자 자크 아탈리는 “코로나 팬데믹을 부른 것이 이기적 생존 경제라면 이제 인류는 이타적 생명 경제로 나아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타적 생명 경제가 뜻함이 함께 살아가는 인류라는 확고한 가치관이 필요하다는 것임은 부연할 필요가 없다. 선한 자극이 필요하다. 사람과 좋은 관계라는 행복한 자극이 필요할 때다.

푸르메재단기획위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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