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634일 조난 끝에 전원 무사귀환한 영국 남극 탐험대

중앙일보

입력 2021.03.24 09:00

[더,오래]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7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힘든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인류의 오늘은 꼭 난파선에 탄 것 같은 형국이다. 전대미문의 위급한 상황에 봉착한 인류는 크게 두 부류의 사람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 와중에 혼자만 잘살겠다고, 자신만이 옳다고 상대를 겁박하는 부류와 그래도 인류는 함께 가야 할 존재임을 강조하며 이웃과 사회를 위해 기여하는 부류다.

현재의 이 상황을 바라보면서 문득 영국의 위대한 탐험가 어네스트 셰클턴이 이끌었던 인듀어런스와 그 선원들이 떠오른다. 사람들이 ‘위대한 실패’ 혹은 ‘위대한 항해’라고 칭하는 셰클턴의 남극탐험은 1914년 8월 복선을 깔 듯이 공교롭게도 ‘인내’라는 이름을 지은 인듀어런스호에 대원 27명을 태우고 세 번째 남극탐험 대장정에 오른다. 남극대륙에 도달한 얼마후 인듀어런스호는 빙산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고 배를 버린 셰클턴을 포함한 27명의 탐험대원은 영하30도 이하의 혹한과 기아를 견뎌 내며 634일간의 사투를 벌인다. 그리고 단 한사람의 사망자도 없이 무사히 귀환하는 드라마를 연출하게 된다.

무엇이 이들을 무사히 생환하게 만들었으며 인간한계를 극복한 사례로 역사에 남기게 했을까? 후세 사람들은 그 요인을 리더인 셰클턴이 자신의 식량으로 배정된 비스킷을 부하에게 양보하는 등의 자기희생과 대원들이 욕심을 내려놓고 서로 협조하고 격려한 일에 두고 있다.

영국의 위대한 탐험가 어네스트 셰클턴이 이끄는 탐험대는 1914년 8월 남극대륙에 도달한 얼마후 빙산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고, 배를 버린 셰클턴을 포함한 27명의 탐험대원은 영하30도 이하의 혹한과 기아를 견뎌 내며 634일간의 사투를 벌였다.[사진 pixabay]

영국의 위대한 탐험가 어네스트 셰클턴이 이끄는 탐험대는 1914년 8월 남극대륙에 도달한 얼마후 빙산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고, 배를 버린 셰클턴을 포함한 27명의 탐험대원은 영하30도 이하의 혹한과 기아를 견뎌 내며 634일간의 사투를 벌였다.[사진 pixabay]

조난이라는 상황을 극복하고 독자생존이라는 결정을 내리면서 셰클턴은 대원들에게 자신이 가진 가장 값진 소지품부터 버리라고 명령한다. 극한 상황에서 욕심을 버리는 행위는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확인하는 일이며 서로 돕고 배려하는 분위기를 만들게 된다. 셰클턴의 남극탐험보다 1년 전인 1913년 스테펜슨이 이끄는 캐나다 북극탐험대는 북극에 고립된 지 수개월 만에 11명의 대원 모두가 사망하는 사고를 당하게 된다. 캐나다팀의 전멸 원인은 조난 이후 탐험대원 간의 갈등과 남의 물건을 탐내며 도둑질 등으로 서로 적이 되었다는 점이다. 셰클턴의 남극탐험대와 스테팬슨의 북극탐험대는 인류가 어떤 태도를 취하냐에 따라 극명한 정반대의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비록 소설 속의 가상 상황이지만 ‘파리대왕’에서 조난당한 16명의 소년은 서로 잘났다고 두 패로 나뉘어 서로 싸우고 이기적 행동을 서슴지 않아 지옥 같은 조난 생활과 비극적 사건을 만든다. 다른 하나는 실제로 인도네시아의 무인도에서 있었던 소년들의 상호격려와 협조를 통해 전원 구조된 사례다. 이 두 사례는 공통으로 이기주의와 탐욕이 어떤 결과를 낳는가를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또 이 어려운 전 인류적 난제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답은 바로 셰클턴의 남극탐험대가 보여준 희생과 봉사, 협조의 자세라 할 수 있다.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이후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있다. 그런데도 일각에서는 자신은 별 피해가 없다고,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라며 자기 이익만을 갈구하고 심지어 고통받는 이웃을 업신여기는 사례도 빈발하고 있다.

요즘 서구권에서 코로나바이러스의 원인이 동양인에 있다고 하면서 벌이고 있는 동양인 혐오 범죄가 기승을 떨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행위가 난파선에 동승한 인류 모두를 어려워지게 하는 대표적인 이기주의적 행위이다. 이는 함께 노력하고 도움으로써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을 극복하고 무사히 귀환한 셰클턴의 남극탐험대에서 얻을 교훈을 져버리는 행위이다. 그 결과는 당연히 공멸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오늘의 난제는 나와 너를 넘어 모두의 문제다. [사진 pixabay]

우리가 겪고 있는 오늘의 난제는 나와 너를 넘어 모두의 문제다. [사진 pixabay]

오래전 친구 한 명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 미세플라스틱 피해의 심각성에 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 위상으로나 지도층에 있는 그 친구의 말에 전율을 느꼈다. 어느 정도 농담의 성격도 있었지만 “나는 미세플라스틱의 침공이니 뭐니 하는 얘기에 별로 신경 안 쓴다. 내가 그 플라스틱의 피해를 볼 일은 없을 것 같아” 답답하기도 하고 그 말이 얄밉기도 해 한마디 해 주었다. “야, 너 참치 좋아하지? 그런데 말이야 그 참치에 미세플라스틱이 있다는 얘기 들어 봤니?” 뜨악해하던 그 친구의 표정이 생각난다.

오늘날 인류가 겪고 있는 문제는 국지적 피해를 넘어 팬더믹 상황으로 전 지구적 피해를 주고 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오늘의 난제는 나와 너를 넘어 모두의 문제다. 셰클턴의 27명 남극탐험대가 모두 살아오느냐, 모두 죽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그 백척간두의 위기와 고난에서 살아남을 유일한 방법은 나만 잘 낫다고, 나만 살면 된다는 이기주의를 버리고 이웃과 사회와 함께 살겠다는 희생적 태도를 갖는 것이다.

1914년 셰클턴의 남극탐험대로 참여해 634일간의 지옥과도 같은 조난 생활을 마치고 귀환한 어느 대원의 일기 중 몇 줄을 상기해 본다. ‘나는 도대체 이 세상 어느 누가 이처럼 철저하게 관용과 동정을 보여줄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 나는 죽어도 셰클턴의 그러한 마음을 잊지 못할 것이다.’

남을 위한 배려와 동정심, 이타가 모두를 살린 것이다. 특히 사회 지도층은 어떤 자세가 필요한지를 말해 주는 것이다. 최근 번역된 뤼트허르 브레흐만의 저서 『휴먼 카인드』에서 저자의 말을 빌려보자. “호모사피엔스 종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건 ‘이타성’ 때문이다.”

푸르메재단기획위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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