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요양보호사가 대접 받는 사회 언제 오나

중앙일보

입력 2021.02.10 09:00

[더,오래]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68)

현대 사회를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자고 나면 새로운 용어 하나 생기는 시대’라고 답하고 싶다. 하루가 멀다고 신조어가 생기니 현기증이 날 정도이다. 일찍이 얼리 어답터라는 평을 받으며 새로운 기기, 새로운 사조, 새로운 용어 사용에서 앞서갔다고 자부하던 나였지만 인생 후반부엔 새 기기는커녕 새 용어에 적응하기도 벅차다. 나름은 뒤처지는 세대라는 평가를 받기 싫어, 또 나이 들어가면 당신도 할 수 없는 처지라는 말이 듣기 싫어 새로운 용어에 대해 신경을 곧추세우지만 생성되는 속도와 간격에는 두 손 다 들 수밖에 없음을 실토한다.

그런 내가 신조어 하나 만들어 보았다. 바로 ‘인생 3막’이라는 용어다. 직장을 은퇴한 인생 후반부를 남들은 모두 인생 2막이라고 표현할 때 나는 인생 3막이라고 했으니 처음에는 이상한 시선을 받았지만 이젠 이 용어가 제대로 된 표현이구나 하는 확신이 든다. 김형석 선생께서 100세를 살아보니 30까지 학창시절, 60세 이전까지 직장생활, 그리고 60세 이후의 삶을 언급한 걸 보고 그런 확신이 선다. 제3 연령기, 제3 섹터라는 용어가 심심찮게 들리는 것 또한 그를 뒷받침한다.

사회에 기여하고 봉사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존경받고 대우받는 나라가 선진국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는 선진국 되려면 아직 멀었다. [사진 pxhere]

사회에 기여하고 봉사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존경받고 대우받는 나라가 선진국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는 선진국 되려면 아직 멀었다. [사진 pxhere]

그런 내가 내친김에 신조어 하나 더 만들어 보고자 한다. 마치 말 타면 경마하고 싶어 한다는 옛 어른의 비아냥 섞인 표현을 듣는다손 치더라도 말이다. 바로 ‘발런티코노미’ 다. 봉사의 발런티어(volunteer)와 경제의 이코노미(economy)를 합성한 말이다. 봉사를 통한 경제, 또는 봉사의 경제학을 의미한다. ‘봉사면 봉사고 경제면 경제지 무슨 봉사가 경제냐?’라는 타박을 들어도 어쩔 수 없다. 이제 인류는 봉사와 경제를 동시에 생각지 않으면 존립 자체가 어려운 시대를 맞고 있으니 말이다.

정부가 일자리 창출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더니 반대하는 입장에선 노인 일자리 창출에만 급급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되물어 보자. 고령사회로 접어든 우리나라가, 그리고 은퇴 후 30~40년을 무엇인가 하지 않고서는 답이 없는 우리 사회에서 노인 일자리 창출을 비난만 하면 무슨 대안이라도 있는가? 문제는 청년과 노년의 역할 분담이 제대로 된 일자리 창출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노년이 해야 할 일과 청장년이 해야 할 일은 엄연히 따로 있다. 노년이 해야 할 일을 청년이 하려고 하고, 노년이 청장년이 해야 할 일을 끝까지 해야 한다며 과거의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집부리는 게 문제다. 그 난제를 풀 수 있는 것이 발런티코노미다. 발런티코노미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선결과제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노년층이 과거의 가치관과 욕심을 버리고 사회에 대한 기여와 봉사를 통해 자신의 필요성과 자존감을 지키는 직업관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이런 일을 하는 노년에 대한 국가와 사회, 그리고 후손들의 존경과 예우가 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아쉬운 점은 기여와 봉사, 공헌의 역할을 하는 이들에 대한 인식이 우리 사회는 아직도 저급한 수준이고, 그러다 보니 이들이 갖는 자긍심이나 자존감이 현격히 떨어져 있다는 데 있다.

단적인 예가 미래세대에 대한 양육을 담당하는 보육교사나 우리의 오늘을 가능케 했던 어르신에 대한 요양을 담당하는 요양보호사나 복지사에 대한 사회의 인식과 대우의 현주소다. 저급한 대우와 생계유지형 직업선택, 서비스의 질 저하라는 악순환만 계속하고 있다. 그에 대한 인식과 대우가 높아질 때 비로소 걸맞은 서비스가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다행인 것이 이제 이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TV의 공익광고에 요양보호사 관련 광고가 나오는 걸 보고 이제야 우리 사회가 의식이 깨어나고 있다고 하는 생각이 든다. 당연히 가야 할 길이고 앞으로는 당연히 이루어질 현상이다. 사회에 기여하고 봉사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존경받고 대우받는 나라가 선진국이다. 선진국을 표방하는 우리나라가 지향해야 할 태도다. 공익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을 ‘맨 인 유니폼(Man in uniform)’으로 부르며 예우하는 미국이 부러운 대목이다.

이제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데 앞장섰다는 자부심을 지닌 사람들이 진정한 선진사회를 위한 일에도 앞장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 인생 2막에 가졌던 직업관과 과거의 성공, 행복 방정식에서 탈피해야 한다. 남들보다 우월한 위치, 경제적 부의 향유가 성공의 지표이며 행복의 가늠자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이웃과 함께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역할이 인생 후반부 삶의 의미이며 행복한 삶의 기본임을 인식하고 인생 3막을 살아가야 한다.

노년층은 과거의 가치관과 욕심을 버리고 사회에 대한 기여와 봉사를 통해 자신의 필요성과 자존감을 지키는 직업관을 가져야 한다. [사진 pxhere]

노년층은 과거의 가치관과 욕심을 버리고 사회에 대한 기여와 봉사를 통해 자신의 필요성과 자존감을 지키는 직업관을 가져야 한다. [사진 pxhere]

발런티코노미에 이어 ‘발런티코노미스트’라는 용어도 만들어 본다. 봉사와 기여를 하면서 이를 통해 과거의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일정의 수입을 올리는 삶, 이것이 발런티코노미스트다. 우리 사회도 이미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우리 사회의 문제는 노년기인 인생 후반부를 사는 사람들이 해결하는 데 일정 역할을 해야만 한다. 사회학자들은 최근 노년기에 접어든 세대를 일컬어 ‘오팔 세대’라고 표현한 바 있다. 오팔이라는 보석에 빗댄 말이다. 오팔은 수많은 세월에 걸친 균열을 겪은 결정체가 빛을 잔류시키며 오묘하면서도 영롱한 광채를 내는 보석이다. 왜 노년기에 접어든, 인생 2막 은퇴 후 세대들에게 오팔 세대라는 명칭을 부여했을까?

연령기에 따른 표현이기도 하지만 인생역정을 겪으며 쌓아 온 경륜과 지혜와 경제적 여유를 주위에 발산하는, 아니 발산해야 할 의무를 지닌 세대라는 의미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러한 광채는 자신 홀로 발하고 자신만 즐긴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바로 주변, 이웃이라는 대상이 있어야 한다. 주위에, 사회에 영롱한 빛을 비추는 방법이 봉사와 기여, 그를 통한 자존감의 유지와 소위 생산 활동이다. 그게 발런티코노미이다. 그리고 그를 수행하는 인생 후반부의 사람, 그들의 직업이 발런티코노미스트다. 인생 환승역을 지난 모든 이들의 새로운 직업, 발런티코노미스트! 멋지지 않은가?

푸르메재단 기획위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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