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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사람이 광주 이야기를? "뼈아픈 상처는 제3자가 말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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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공연하는 뮤지컬 '광주'의 연출가 고선웅(왼쪽)과 작곡가 최우정. [사진 라이브(주)]

이달 공연하는 뮤지컬 '광주'의 연출가 고선웅(왼쪽)과 작곡가 최우정. [사진 라이브(주)]

 지난해 10월 초연한 뮤지컬 ‘광주’는 ‘편의대’의 합창으로 시작하고, 편의대원인 박한수가 이끌고 간다. 편의대는 1980년 광주의 5ㆍ18민주화운동에서 민간에 침투한 사복 군인을 이르는 말. 이들이 민간인들의 폭력을 부추기는 임무를 맡았다는 증언이 2019년 나왔다. 연출가 고선웅은 “가발 변장을 하고 차례로 들어갔다는 인터뷰 기사에 충격 받고, 연극적 상상력을 풀기 좋은 소재라 봤다”고 했다.

뮤지컬 '광주' 올리는 연출가 고선웅, 작곡가 최우정

이 뮤지컬은 광주문화재단이 5ㆍ18 40주년에 공동 제작사를 공모해 만들었다. 서울 대학로 초연 후 고양ㆍ부산ㆍ전주ㆍ광주 등에서 차례로 무대에 올랐다. 연극 ‘조씨 고아, 복수의 씨앗’,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 등 히트작을 낸 스타 연출가 고선웅과, 오페라 ‘1945’ ‘달이 물로 걸어오듯’ 등으로 작품성ㆍ대중성을 인정받은 작곡가 최우정이 합류했다.

5ㆍ18의 진한 비극을 기대했던 관객 중엔 지난해 첫 공연에 실망을 표현한 이들도 있었다. 공연 예매 사이트에는 이런 리뷰들이 올라왔다. “5ㆍ18이 주제인데 어째서 편의대원이 중심에 있는지 끝까지 이해할 수 없다.” “편의대원의 내적 갈등 대신 광주시민들의 이야기가 중심이 돼야한다.” “좀 더 노골적이어야 한다.” 소용돌이 속에 싸우고 죽는 야학 교사, 사제, 대학생 등 광주 시민들도 나오지만 그 중심에 서울 태생인 편의대원 박한수가 있기 때문이다.

5일 만난 고선웅은 “리뷰만 한시간을 읽어 전부 다 봤다. 이번엔 더 간결하고 자상하게 관객의 이해를 돕는 쪽으로 손봤다”고 했다. 뮤지컬 ‘광주’는 이달 13~25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재연을 앞두고 있다.

뮤지컬 '광주'의 지난해 초연 장면. 편의대원들의 합창이다. [사진 라이브(주)]

뮤지컬 '광주'의 지난해 초연 장면. 편의대원들의 합창이다. [사진 라이브(주)]

이날 인터뷰에서 고선웅과 최우정은 비극을 비극적이지 않게, 슬픔에 젖어있지 않도록 그리는 객관성의 힘에 대해 강조했다. 고선웅은 극을 많이 손봤지만 편의대원을 중심에 놓은 설정은 바꾸지 않았다. “그 사람이 있어야 광주시민의 모습을 온전하게 보여줄 수 있다. 광주의 뼈아픈 상처를 당사자보다는 제3자가 이야기해야한다.” 따라서 그는 주인공이 ‘서울 사람’인 편의대원이기 때문에 광주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평에 대해 “오해”라고 했다. “그런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보강을 했다.” 제3자의 시선은 남겨두고, 그 이유를 좀 더 설득력있게 보여주겠다는 뜻이다.

슬픔에 빠지지 않는 비극은 고선웅의 주특기다. 출세작인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에서도 복수의 어두움에 짓눌리지 않았고, 셰익스피어 ‘리어왕’은 오락비극 ‘리어외전’으로 비틀었다. 고선웅은 “광주를 소재로 할 때는 늪에 빠지기 쉽다”고 했다. “비극을 비극의 정통적인 방식으로 보여주는 늪이다. ‘그렇게 고통스러웠는데 어떻게 가볍게 표현할 수 있냐’는 굴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은 관객과 줄타기를 해야하고 동화와 이화를 반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우정은 연출가와 뜻을 같이 하는 작곡가다. “음악이 구체적 역사적 사건을 다룰 때 자칫 잘못하면 선동의 도구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 음악은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한 방향으로 가지 마라고 해야 한다.” 최우정은 감정적 장면에서 슬프지 않은 음악을, 뻔하지 않은 화음을 넣어 드라마를 객관화 시켰다. 고선웅은 “우정씨의 음악은 신파를 거부했다. 젖으려 하면 딛고 잃어선다”고 했다. 두 창작자는 바깥에서 본 시선으로 그린 내부의 이야기를 보는 관객들이 스스로 해석하고 판단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는다. “슬픈데 슬프지 않고, 기쁜데 기쁘지 않아야 관객이 극을 완성하는 재미가 있다.”(고선웅)

뮤지컬 '광주'의 지난해 초연 장면. [사진 라이브(주)]

뮤지컬 '광주'의 지난해 초연 장면. [사진 라이브(주)]

1999년 희곡으로 신춘문예에 당선됐던 고선웅이 5ㆍ18을 소재로 삼은 작품은 이번이 네번째다. 연극 ‘들소의 달’(2009), ‘푸르른 날에’(2011), ‘나는 광주에 없었다’(2020)에서도 광주를 다뤘다. 그때마다 무참한 이야기를 치유의 방향으로 풀었다. 그는 “공연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게 그렇게 많지 않다. 이야기를 통해 마음을 헤아리는 일 뿐”이라고 했다. 잔인한 비극을 극명하게 드러내기 보다는 사람과 삶에 대한 관찰과 통찰을 공연이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최우정 역시 “우리가 기억해야할, 할아버지ㆍ할머니의 기억 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객관화시키고 노래로 남기는 일이 음악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고선웅과 최우정은 2019년 국립오페라단의 창작 오페라 ‘1945’에서 처음 만났다. 반일 감정이 극심하던 때에 두 나라의 위안부가 서로를 위로하는 이야기를 오페라로 올렸다. ‘광주’에서도 비극에 매몰되지 않는 연출, 드라마를 따라가지 않는 음악으로 다시 만났다. 고선웅은 “광주 이야기는 심리적인 벽이 있다. 관객을 객석에 앉게하기까지가 참 어렵다. 하지만 보고 나면 ‘아, 그런 얘기가 아니었네’하면서 재미와 감동을 받도록 만들고 싶다”고 했다. 최우정은 “음악 자체가 독자적 드라마를 가지는, 이런 뮤지컬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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