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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호정의 왜 음악인가

뻔하지 않은 음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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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호정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호정 문화팀 기자

김호정 문화팀 기자

이맘때면 사람들은 비슷한 생각을 한다. ‘이 계절을 음악으로 바꾸면 뭘까.’ 어렵지 않게 답을 찾을 수 있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봄의 소리’ 왈츠, 또 멘델스존의 ‘봄 노래’. 오늘도 여러 곳에서 흘러나오는 이 작품들을 들으며 생각한다. ‘또?’

전형적인 음악은 선택하기도, 듣기도 편하지만 함정이 있다. 베토벤이 소나타 5번을 무제로 발표한 1801년 이후 누군가 봄을 떠올려 별명을 붙였다. 그 후로 우리도 들을 때마다 봄을 떠올린다. 나머지 봄 노래도 그야말로 봄답다. 아름답고 부드럽고 따뜻하다.

뻔하지 않은 봄 음악이 필요하다. 그런 음악은 있다. 슈베르트 ‘봄에’(작품번호 882)는 단순한 4박으로 시작한다. 올림표(#) 하나만 붙은 오선지도 깔끔하다. 이렇게 아름답기만 했다면 슈베르트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토록 많지 않았을 것이다. 슈베르트는 밝고 아름다운 멜로디를 갑작스럽게 단조(短調)로 바꾼 8마디를 넣었다. 씁쓸한 이 부분을 지나가야 다시 한번 봄 같은 음악이 나온다.

다음달 9일 ‘봄이 오는 소리’를 연주하는 앙상블 오푸스. [사진 오푸스]

다음달 9일 ‘봄이 오는 소리’를 연주하는 앙상블 오푸스. [사진 오푸스]

슈베르트의 낙관적인 음악이 뛰어난 이유는 불안한 감정도 포괄하고 있는 덕분이다. 그는 봄의 음악을 많이 썼다. 하지만 마냥 행복하지는 않다. ‘봄에’의 어두운 선율은 자연의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담고 있고, ‘봄의 시냇가’(361번)와 ‘봄의 믿음’(686번) 또한 슬픔과 비관의 순간까지도 담는다. 슈베르트는 그런 부분이 있는 시를 골랐고 거기에 맞는 음악을 붙여 비관과 낙관을 오가도록 했다.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가곡집 ‘겨울 나그네’엔 희한한 봄의 순간이 있는데, 24개 노래 중 11번째에 자리한 ‘봄의 꿈’이다. 불행히도 지독하게 추운 날 여행을 시작한 주인공에게 잠시 온기를 보여주는 듯하지만 짧은 꿈일 뿐이고, 이 노래가 끝나면 더 춥고 혹독한 노래만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앞뒤의 비극이 11번째 노래를 더 찬란하도록 돕는다.

어려움과 비극이 뒤섞인 2021년의 봄도 순진한 아름다움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작곡가 류재준(51)은 플루트·바이올린·비올라·첼로가 함께 연주하는 ‘봄이 오는 소리’를 올해 작곡했다. 3악장 ‘피어나는 아침’은 청명하고 평화롭다. 하지만 그는 “이 봄은 모두에게 아름답지는 않다”고 작곡의 동기를 설명했다. 그는 미얀마 사태 때문에 이 곡을 쓰기 시작했다.

“자연은 인간의 삶과 관계없이 깨어나고 변하는데 사람은 하나도 변하지 않고 문제를 반복한다. 이 자연스러움과 아름다움이 미얀마 사람들에게도 전해지길 바란다.”

이 곡은 다음달 9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앙상블 오푸스가 초연한다. 아름답기 위한 아름다움 말고, 세상을 현실적으로 보는 예술이 위안이 된다.

김호정 문화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