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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환자 '냉장'시켜 살린다

중앙일보

입력

사람의 체온이 25도 이하가 되면 어떻게 될까. 심장이 뛰지 않고, 혼수 상태가 된다. 외형상으로 봐서는 죽은 것으로 보인다는 게 의사들의 말이다.

극도로 낮은 체온을 되레 부상자나 응급환자를 되살리는 기술로 응용하려는 기술 개발이 한창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사파소생연구소, 캘리포니아의 바이오타임사 등은 전쟁이나 교통사고 등으로 과다하게 피를 흘린 부상자를 살리기 위해 저체온 소생법을 연구하고 있다. 이들의 목적은 부상자의 후송.수술 시간을 벌기 위해 저체온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개를 대상으로 실험한 바에 따르면 세 시간 정도 가사상태로 만든 뒤 되살리는 데 성공했다는 게 외신들의 보도다.

저체온 소생법은 세포 단위가 아니라 사람이나 개 등을 통째로 냉장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정자나 난자.수정란 등을 냉동 보관한 뒤 녹여 소생시키는 것은 의료계에서 일반화된 기술이다. 그러나 사람 등을 통째로 아주 낮은 체온으로 떨어뜨려 심장을 비롯한 모든 세포가 일시 동면 상태로 들어가게 하는 것은 불과 몇 년 전부터 연구되기 시작했다.

사파소생연구소가 개를 대상으로 저체온 소생법을 실험한 것을 보면 미래에 사람에게 어떻게 적용하게 될지 미리 알 수 있게 한다.

개의 정상 체온은 38.5도. 이를 7도 정도로 낮추는 것이다. 먼저 개의 피를 모두 빼낸 뒤 거기에 얼음물처럼 차가운 특수 용액을 채운다. 그러면 개는 체온이 내려감에 따라 점차 숨 쉬는 것과 심장 박동, 뇌 활동 등이 멈춘다.

이때부터는 외형상으로는 죽은 것으로 보인다. 이를 되살리는 것은 특수 용액 대신 피를 다시 주입하면서 체온을 올린다. 마지막으로 전기 충격을 줘 심장 박동이 뛰도록 하고, 세포들이 깨어나게 한다. 심장의 경우 박동이 멈춘 것을 뛰게 하려면 전기 충격이 필수적이다. 현재 기술로는 저체온으로 가사 상태였던 개들이 소생했을 경우 신체 결함이나 행동장애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사파소생연구소는 저체온소생법을 1~2년 안에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시험할 계획이다.

이 기술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곳은 미국 해군과 국방부다. 이들 기관은 사파소생연구소에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기도 하다.

전장에서 부상으로 죽는 병사를 최대한 살려보자는 게 목표다. 과다 출혈로 죽음 직전에 있는 병사가 있으면 재빨리 저체온 상태로 만든 뒤 병원으로 후송하고, 수술할 수 있게 할 것으로 미 국방부 등은 기대하고 있다. 현재 군인이 아니더라도 전 세계에서 교통 사고, 총상 등 외상으로 연간 약 800만 명이 죽고 있는데 그중 절반가량이 과다출혈이 사망원인이라는 게 미국 의사 하워드 챔피온의 말이다. 과다출혈 환자 중 20~30%는 수술 시간만 잘 맞추면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저체온 소생술은 신체의 신진대사를 멈추게 해 신체를 안정시킨다. 이를 통해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수술 가능 시간을 서너 시간 연장할 수 있다.

저체온 기술은 현재 심장 수술 등 부분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경희의료원 흉부외과 김범식 교수는 "심장 수술 때 심장은 영상 4도 정도로, 체온은 18도 정도로 낮춘다"며 "이 때 뇌 세포의 손상을 막기 위해 별도로 뇌에는 기계를 이용해 혈액을 공급한다"고 말했다. 저체온 소생 기술의 경우도 부작용을 최소화하면 부상자를 최대한 살릴 수 있을 것으로 김 교수는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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