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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식 큰형님 곡금초 별세···이연복 "우린 척하면 착하는 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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웍으로 요리 중인 곡금초 사부. 2016년 사진이다. [중앙포토, 이택희의 맛따라기]

웍으로 요리 중인 곡금초 사부. 2016년 사진이다. [중앙포토, 이택희의 맛따라기]

지난달 31일 분당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한국 중화요리계의 대표주자 이연복 목란, 왕육성 진진 사부가 무거운 표정으로 찾아왔다. 이들과 함께 1970년대부터 한국 중식의 황금기를 일궈낸 큰형님 곡금초(1952~2021) 상해루 사부의 빈소였다. 고인은 지난해 갑자기 간암이 폐로 전이하면서 지난달 31일 별세했다. 69세.

사부(師傅)는 중국 주방에서 탑 셰프와 같은 무게감을 갖는다. 10대 때부터 웍을 잡고 중식도로 주방을 호령했던 이들의 우정은 60대까지 이어졌다. 이연복 사부는 1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무슨 일을 겪어도 한결같은 분이 곡 사부와 왕 사부”라며 “우리는 삼총사 같이 서로 척하면 착 통하는 사이였다”고 고인을 애도했다. 왕 사부도 통화에서 “1977년 만나 인생을 쭉 같이 해왔다”며 “우리 둘 다 무일푼이었지만 요리에 대한 꿈으로 하나가 됐다”고 회고했다.

고인은 대만 화교로 역시 중식 요리를 업으로 했던 아버지 덕에 요리업계에 발을 들였다. 성년도 채 되지 않은 19세에 당시 중화요리의 중심지였던 서울 명동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던 기산각의 주방장 자리를 꿰찼다고 한다. 이후 왕 사부와는 신촌의 유명 중식당이었던 만다린에서 만났다. 왕 사부는 “3층 이상 되는 만다린 같은 곳을 자기도 차리고 말 거라고 포부가 대단했다”며 “남과 다른 구석이 많았다”고 전했다.

'탕수육의 달인'으로 불렸던 곡금초 사부의 시그너처. 전수진 기자

'탕수육의 달인'으로 불렸던 곡금초 사부의 시그너처. 전수진 기자

꿈은 열정과 노력, 재능으로 이뤄냈다. 배달 전문 중식집도 운영하고 발로 뛰면서 자금을 모으고 동업자를 만나 만다린 분점을 냈다. 한창일 때는 서울 곳곳은 물론 분당까지 모두 13개 지점을 운영했다고 한다. 이연복 사부는 “형님이 와일드하고 다혈질인 면이 있었다”며 “일을 해내겠다는 의지가 대단했고 실력으로 일을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요리인으로서의 곡금초는 재료로 승부를 봤다. 그는 생전 “요리는 재료가 80%, 요리 기술은 20%”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이택희 음식문화탐구가는 1일 통화에서 “곡 사부는 아침마다 돼지고기를 도축장에서 직접 받는 걸 원칙으로 했는데, 냉장차에서 돼지고기를 내린 직후 손을 대보고 온도를 가늠해서 갓 잡은 돼지가 아니면 돌려보냈다고 한다”고 전했다. 도축장에서 바로 냉장차로 옮겨오지 않은 고기는 쓰지 않았다는 의미다.

상해루의 자랑거리 중 하나는 곡 사부가 직접 걸어들어가도 될 정도로 큰 냉장 저장고였다고 한다. 이택희 음식문화탐구가는 “샥스핀부터 해삼까지 각종 진귀한 재료들을 간직한 곡 사부의 보물창고였다”고 추억했다.

왕육성 진진 셰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왕육성 진진 셰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연복 목란 셰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연복 목란 셰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곡 사부에게 대중적 인기를 안겨준 데는 동생들의 역할이 컸다. 한때 중화요리 업계의 트렌드가 바뀌면서 곡 사부가 고전을 했던 때가 있다. 그때 이연복 사부가 방송 출연 다리를 놓아줬고, 이후 곡 사부는 '짬뽕의 달인' '탕수육의 달인'으로 이름을 날리게 됐다. 물론 그의 실력이 바탕이 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왕 사부는 "요리도 화가나 작가처럼 기본적으로 끼라는 것이 있어야 하고, 각 식재료의 특성에 맞는 요리 기법을 다양히 연구해야 한다"며 "곡 사부에겐 실력과 연구하는 끈기 모두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 고인의 요리를 사랑하는 팬층은 남녀노소 불문 두터웠다. 대표 요리 중 하나인 오룡(烏龍)해삼을 기아 김선홍 전 회장이 유독 좋아해서 업장에선 '기아해삼'이라고도 불린다.

곡금초 사부의 대표 요리 중 하나인 오룡해삼. 기아 전 김선홍 회장이 좋아해서 '기아 해삼'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중앙포토, 이택희의 맛따라기]

곡금초 사부의 대표 요리 중 하나인 오룡해삼. 기아 전 김선홍 회장이 좋아해서 '기아 해삼'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중앙포토, 이택희의 맛따라기]

고인은 짬뽕 하나를 두고도 육수를 멸치로 낼 것인지 민물새우를 낼 것인지를 두고 아우들과 긴 토론을 하곤 했다고 한다. 왕 사부는 "형님이 쉬는 걸 통 보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연복 사부가 1일 새벽 빈소에 다녀온 뒤 적은 페이스북 내용은 그래서 이렇다. "곡금초 형님, 편히 주무시고 저 세상에선 더 아프지 말고 못다한 일들 꼭 이루세요."

유족으로는 장남 사문씨 차남 사달씨 등이 있다. 빈소는 분당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일 오전 10시, 장지는 경기도 광주시 시안가족추모공원이다. 전화 031-787-1503.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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