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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제로 정부 전략 나왔는데…“핵심기술로 실현” vs “너무 비현실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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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31일 열린 제16회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에서 정부는 탄소 중립을 위한 기술혁신 추진 전략과 탄소 중립 연구개발(R&D) 투자전략을 확정했다. [사진 과기부]

31일 열린 제16회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에서 정부는 탄소 중립을 위한 기술혁신 추진 전략과 탄소 중립 연구개발(R&D) 투자전략을 확정했다. [사진 과기부]

정부가 약 30년 후 국가 이산화탄소 실질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추진하기 위한 세부전략을 내놨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방안이라고 지적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자원부·환경부는 31일 관계 장관회의를 열고, 탄소 중립을 위한 기술 혁신과 연구개발(R&D) 투자 전략을 확정했다. 탄소 중립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만큼의 흡수 대책을 세워, 한 국가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총량을 중립 상태로 만든다는 개념이다.

정부는 지난해 ‘2050년 탄소 중립’을 선언한 바 있다. 이날은 그 구체적인 전략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실질 배출량 기준으로 이산화탄소를 전혀 배출하지 않겠다며 정부가 내놓은 핵심 메시지는 ‘기술’이다. 혁신 기술을 활용하면 30년 후 탄소 중립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10대 핵심 기술을 제시했다. ▶태양광·풍력 발전을 효율화하고 ▶수소 기술과 ▶바이오에너지 기술을 확보한다. 또 ▶수송 기술과 ▶건물 기반 기술 ▶탄소 포집·활용·저장 기술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탄소를 상대적으로 많이 배출하는 ▶철강·시멘트 산업과 ▶석유화학 산업에서 CO₂ 배출량을 줄이고 ▶디지털 기술을 접목해 ▶산업공정 효율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혁신 생태계도 조성한다. 탄소 중립 신기술과 관련이 있는 창업이나 실증·사업화를 지원하겠다는 내용이다. 관련 기업엔 규제를 풀고 세제·금융 지원을 늘린다는 방침이다.

허술한 정부 탄소 중립 추진 전략

해가 떠 있는 시간에 태양광 에너지 발전 비율을 높인 독일(맨 왼쪽). 하지만 해가 진 심야 시간엔 결국 석탄 발전 비율이 높아진다(가운데). 결과적으로 독일의 탄소집약도는 상대적으로 높아 갈색으로 표기되어 있다(맨 오른쪽). 원자력발전 비율이 높은 이웃나라 프랑스가 상대적으로 탄소집약도가 낮아 초록색으로 표기된 부분이 눈에 띈다. [일렉트리시티맵 캡쳐]

해가 떠 있는 시간에 태양광 에너지 발전 비율을 높인 독일(맨 왼쪽). 하지만 해가 진 심야 시간엔 결국 석탄 발전 비율이 높아진다(가운데). 결과적으로 독일의 탄소집약도는 상대적으로 높아 갈색으로 표기되어 있다(맨 오른쪽). 원자력발전 비율이 높은 이웃나라 프랑스가 상대적으로 탄소집약도가 낮아 초록색으로 표기된 부분이 눈에 띈다. [일렉트리시티맵 캡쳐]

문제는 현실성이다. 석탄 발전과 철강·시멘트·석유화학 산업 비중이 큰 우리나라에서 탄소 중립을 실현하려면 획기적인 무탄소 전원을 도입하거나 주요 제조업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량을 크게 줄여야 한다.

하지만 이날 정부 발표엔 ‘핵심’이 빠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노동석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 박사는 “탄소를 어떻게 줄이겠다는 내용이 빠졌다”며 “구체성·현실성이 떨어진다”고 평가절하했다.

예컨대 정부가 10대 핵심기술로 제시한 태양광·풍력 발전은 전력 생산 시간에 한계가 있다. 야간이나 날씨가 흐린 날, 혹은 바람이 불지 않는 경우 전력 생산량이 떨어진다. 정부는 이런 문제의 해법에 대해 다루지 않았다.

대표적인 게 풍력 발전이다. 정부는 2030년까지 15MW급 대형 풍력발전 기술을 국산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노동석 박사는 “현재 우리나라 풍력발전 기술이 4MW급인데 불과 10년 만에 15MW급 기술을 국산화하는 건 사실상 어렵다”고 말했다.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3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본관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제16회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 를 주재 하고 있다. [사진 과기부]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3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본관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제16회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 를 주재 하고 있다. [사진 과기부]

생산시설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배출하는 탄소량까지 고려하면 바이오 에너지 등은 저탄소 에너지원으로 보기 어렵다는 문제제기도 있다. 박문규 세종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탄소 발자국 개념으로 보면 신재생 에너지는 무탄소가 아니다”며 “정부의 핵심 기술 전략은 핵심을 비껴간 내용”이라고 비판했다. 탄소 발자국은 에너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발생하는 온실가스의 발생 총량을 고려한 개념이다.

수소 기술 확보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에너지 생산의 최종 결과물인 수소를 태울 때 온실가스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하지만 수소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어떻게 감축할지 다루지 않았다.

노동석 박사는 “일본 경제산업성의 경우 원자력·화력 발전이 국가 전력의 30~40%를 감당한다는 전제로 탄소 중립 가능성을 모색 중”이라며 “원자력·화력 발전을 거론하지 않고 탄소 중립을 추진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과기부는 “이번 전략은 초기 단계 기술에 초점을 맞춰 원전을 별도로 언급하지 않았다”며 “추후 산업통상자원부 차원에서 원전 등 별도 에너지 관련 정책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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