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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김정은 볼 일 없다, 이게 바이든 스타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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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미국 백악관은 29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날 의향이 없다고 밝혔다. 정상 간 만남을 통한 톱다운 협상을 선호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는 다른 대북 접근법을 취하겠다는 걸 분명히 했다. 이날 백악관에서 코로나19 연설을 하는 바이든 대통령. [UPI=연합뉴스]

미국 백악관은 29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날 의향이 없다고 밝혔다. 정상 간 만남을 통한 톱다운 협상을 선호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는 다른 대북 접근법을 취하겠다는 걸 분명히 했다. 이날 백악관에서 코로나19 연설을 하는 바이든 대통령. [UPI=연합뉴스]

한국과 미국이 대북 접근에서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한국은 북한 비핵화를 위해 북·미 정상이 직접 만나는 톱다운(top-down·하향식) 방식을 선호하나, 미국은 북·미 정상이 만날 일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북한 인권과 관련, 한국에선 30일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전단 살포 행위 등을 금지하는 내용의 대북전단금지법(개정 남북관계발전법)이 발효됐으나, 미국은 국무부가 이 법을 인권 침해 사례로 적시한 데 이어 하원이 이르면 4월 청문회를 열어 법 시행으로 인한 표현의 자유 침해 등을 논의한다.

백악관, 정상회담 관련 “의향 없다” #톱다운 추진 한국 입장 사실상 거부 #블링컨, 북핵·미사일 해법 제시 #“유엔 통해 한·미·일 긴밀히 공조” #북핵 문제 싱가포르식 접근 대신 #중국까지 끌어들여 북 압박 의지 #김여정 “남조선, 미국산 앵무새” #문 대통령 겨냥 또 원색적 비난

북한은 탄도미사일 발사 시험에 이어 30일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 명의의 담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미국산 앵무새” “후안무치” 등 독설을 쏟아내며 문 정부가 추진하는 남북 협력에 호응할 뜻이 없음을 드러냈다. 미국과 엇박자를 내고 북한엔 거부당하며 문 정부의 대북 정책은 총체적 난국에 처했다.

미국 백악관은 29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날 의향이 없다고 밝혔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북한과 일정한 형식의 외교를 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는데, 김 위원장과 마주 앉는 것이 포함되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바이든)의 접근 방식은 상당히 다를 것으로 생각한다. 그것은 그의 의도가 아니다”고 답했다. 백악관과 국무부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 직후부터 북한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예고했지만, 정상 간 만남 가능성을 일축한 것은 이례적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김 위원장과의 정상외교를 통해 북핵 문제 해법을 모색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는 다른 길을 갈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바이든 측에 싱가포르식 북·미 정상회담을 제안하는 등 트럼프식 대북 정책 연장선에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는데, 결국 거부당한 셈이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유엔 체제 안에서 동맹과 함께 북핵 문제를 다루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뉴욕 외신센터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고 지역과 국제사회를 위협하기 때문에 우리, 그리고 유엔 체제를 포함한 동맹과 파트너의 규탄 대상”이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 25일 바이든 대통령은 “미사일 발사는 유엔 안보리 결의 1718호 위반”이라고 선언했으며, 미국은 곧바로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를 소집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 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트럼프는 단거리 탄도미사일에 대해 “작은 무기들”이라거나 “내놓을 반응이 없다”고 말해 미국 본토에 닿을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쏘지 않는 한 문제삼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윤곽 드러낸 바이든 대북정책, 트럼프와 다른 길 간다

2019년 평택 미군기지(캠프 험프리스)에서 실제 발사되지 않는 훈련용 요격미사일인 비활성화탄(inert)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발사대에 장착하는 훈련을 하는 미군. [연합뉴스]

2019년 평택 미군기지(캠프 험프리스)에서 실제 발사되지 않는 훈련용 요격미사일인 비활성화탄(inert)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발사대에 장착하는 훈련을 하는 미군. [연합뉴스]

트럼프의 대북 정책이 트럼프와 김정은 간 정상 외교에 초점을 맞춘 데 비해 바이든 행정부는 한·미·일 3국 공조와 중국 등 주변국 관여를 강조했다. 블링컨 장관은 “우리는 북한 문제에 관한 한 미국·한국·일본 사이에서 조율이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면서 “세 나라는 북한의 도발에 맞서 한반도 비핵화를 진전시키겠다는 약속 앞에서 단결돼 있다”고 평가했다.

블링컨 장관은 최근 한국과 일본을 방문했을 때 북핵을 주요 의제로 삼았고,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에서 중국 측과 만났을 때도 논의했다면서 “중국과 의견이 어느 정도 일치하는 분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동맹이자 경제적 생명줄인 중국까지 끌어들여 북한을 압박하겠다는 미국의 의지를 보여준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번 주말 워싱턴DC에서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를 열고 대북 정책을 조율한다. 현재 막바지 단계에 와 있는 대북 정책 검토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미 의회 산하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 공동의장인 크리스 스미스 공화당 하원의원은 이르면 4월 대북전단금지법 청문회를 열 계획이다. 외교 소식통은 “한국 정부에서 청문회 소집을 막기 위해 로비 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청문회에 대한 스미스 의원의 의지가 매우 강한 상황”이라며 “대북전단금지법에 반대했던 한국 야당 의원들과 소통하며 청문회 의제 등을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법은 ‘자유로운 대북 정보 유입’을 목표로 하는 미국의 북한인권법과 충돌 가능성도 있다. 미 국무부는 최근 공개된 ‘2020 국가별 인권보고서’ 초안에서 대북전단금지법을 주요 인권 침해 사례로 적시했다.

미군은 30일 미 육군 홈페이지에 주한미군을 비롯한 인도·태평양 지역 미군이 이달 초부터 12일까지 미사일 방어 합동훈련을 했다고 뒤늦게 공개했다. 태평양 지역 주둔 미군의 미사일 방어 부대가 합동 훈련에 동시에 참여한 것은 처음이다. 훈련에 참여한 미군 부대의 배치 지역을 볼 때 북한 탄도미사일 공격을 상정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번 훈련에 일본 자위대는 참관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한국군은 참여하지 않았다. 군 관계자는 “미군은 한국군에 참여를 요청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여정 부부장은 30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개한 자신 명의의 담화에서 문 대통령을 향해 “남조선 집권자가 한 기념사(지난 26일 서해수호의 날 연설)는 또다시 우리 사람들을 놀래웠다”며 “미국의 강도적인 주장을 덜함도 더함도 없이 신통하게 빼닮은 꼴” “미국산 앵무새라고 ‘칭찬’해 주어도 노여울 것은 없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또 “비논리적이며 후안무치하다” “체면도 상실했다”고 주장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에 대해 “어떤 순간에도 서로를 향한 언행에 있어 최소한의 예법은 지켜져야 한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북한 순항·탄도미사일 한국 겨냥”=이언 윌리엄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미사일방어프로젝트 부국장은 30일 미국의소리(VOA)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북한이 지난 21일(순항미사일)과 25일(탄도미사일) 발사한 미사일은 한국을 겨냥한 무기”라며 “북한이 순항미사일로 레이더를 무력화한 뒤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한국은 제대로 대응할 수 없게 된다”고 경고했다. 그는 “순항미사일과 탄도미사일을 결합한 이중 능력은 한국의 미사일 방어망을 약화하고 북한의 타격을 더욱 정확하게 만든다”고 했다. 순항미사일의 전술핵무기 탑재 능력에 대해선 “북한의 소형화 기술로는 갈 길이 멀지만 언젠가는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정용수·김상진·박용한·정진우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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