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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에 대한 편견 없으면 일하는 데도 장애 없었다

중앙일보

입력

18일 오전 경남 양산시 유산동 넥센타이어 제1공장. 중증 청각장애인인 윤철영(29.청각장애 1급)씨는 반제품 상태로 들어온 타이어 부품을 조립하느라 여념이 없다. 타이어의 뼈대 역할을 하는 보디 플라이 등 여섯 가지 부품은 그의 정교한 손놀림을 거치면서 완제품 직전 단계의 타이어로 탄생한다. 윤씨는 필담을 통해 "월급을 모아 입사 8년 만인 2003년 전세 8000만원짜리 29평형 아파트를 얻었다"며 자랑스러워 했다.

이 회사에는 윤씨와 같은 중증 청각장애인을 포함, 46명의 장애인이 근무하고 있다. 종업원(1300명) 가운데 장애인의 비율은 3.6%로 법이 정한 장애인 의무고용 비율(2%)을 훨씬 웃돈다. 그들이 일하는 모습은 간혹 수화나 필담하는 것을 제외하면 여느 비장애인 근로자와 다를 게 없다. 일을 배울 때는 힘들지만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생산성이 비장애인보다 낫다. 집중력이 높기 때문이다. 이 회사 성형 공정에서는 비장애인이 하루에 200개의 타이어를 제조하는 데 비해 장애인들은 220~230개나 만들어낸다.

넥센타이어의 경우는 생각만 조금 바꾸면 장애가 더 이상 걸림돌이 아니라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는 예다.

기업 현장에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깨지고 있다. 넥센타이어 이상옥 부사장은 "장애인이 때로는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장애인의 진출 분야도 단순 생산직에서 서비스업이나 벤처기업, 연구개발 분야로 점차 넓어지고 있다. 교보생명 콜센터(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서는 지체 장애인 25명이 일하고 있다. 콜센터 전 직원(430명)의 5.8%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 회사는 장애인 직원을 위해 전용 화장실을 만들고 사무실 출입 문턱을 없앴다. 출퇴근을 돕기 위해 회사 인근에 사택도 마련했다.

패밀리 레스토랑인 씨즐러 서울 청담점은 지난달 말 정신지체 장애인을 시간제 근로자로 채용했다. 아웃백스테이크도 정신지체.발달장애인 4명을 지난달 말 채용했다.

씨즐러 청담점 강성태(34) 점장은 "업무를 소화해 낼지 걱정했는데 별문제가 없다. 오히려 다른 직원들이 더 열심히 일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대구시 달서구 약 포장기계 제조업체인 JVM은 지체.청각.언어 장애인 17명을 고용하고 있다. 이 중 3~4명은 사무.연구직이다.

이 회사 이희진(36)인사과장은 "장애인은 한 가지 일을 맡겨 놓으면 끈기 있게 잘 해내 숙달만 되면 큰 문제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반적인 장애인 고용 여건은 아직 열악하다. 국내 장애인은 400만~450만 명으로 추산되지만 등록한 사람은 161만 명에 불과하다.

일자리를 가진 사람은 50만 명 정도에 불과하다. 취업한 사람도 지체.청각 장애인이 대부분이다. 정신지체.발달장애 등 나머지 장애인들은 엄두도 내기 힘든 실정이다. 보건사회연구원 변용찬 연구위원은 "장애인 고용을 늘리기 위해서는 정부가 장애인 차별금지법을 만들고 편견 해소에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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