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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타면 50만원 쓴다…'무착륙 비행' 내릴땐 트렁크 한가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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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표의 여행의 기술 - 무착륙 관광비행

지난해 10월부터 시작한 '무착륙 관광비행'이 해외여행이 금지된 시대, 새로운 여행법으로 자리잡고 있다. 해외 상공으로 나가 외국을 구경하고 면세 쇼핑까지 즐길 수 있어 이용객이 꾸준히 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0월부터 시작한 '무착륙 관광비행'이 해외여행이 금지된 시대, 새로운 여행법으로 자리잡고 있다. 해외 상공으로 나가 외국을 구경하고 면세 쇼핑까지 즐길 수 있어 이용객이 꾸준히 늘고 있다. 연합뉴스

해외여행이 금지된 시대, 무착륙 관광비행이 ‘유사 해외여행’으로 주목받고 있다. 비행기를 타고 해외 상공을 선회한 뒤 돌아오는 방식이어서 ‘해외 가는 척 여행’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창밖으로 외국을 구경하고, 면세 쇼핑도 할 수 있어서 제법 인기다. 한데 궁금한 게 많다. 기내식은 주는지, 모든 면세점을 이용할 수 있는지. 지난 20일 인천에서 출발해 일본 후쿠오카 상공을 선회하는 비행편을 체험하고 왔다. ‘무착륙 관광비행’의 모든 걸 정리했다.

기내식? 물 한 잔도 못 마셔

무착륙 관광비행은 지난해 10월 시작했다. 당시엔 두세 개 항공사만 비행기를 띄웠는데, 올 3월에는 7개 항공사가 관광비행을 운항 중이다. 처음엔 약 2시간 국내 상공만 선회했다. 저공비행을 하며 국토를 굽어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기내식을 주는 항공사도 있었다. ‘하늘 위 호텔’로 불리는 A380을 띄운 아시아나항공은 비즈니스석 승객에게 호텔 코스요리에 맞먹는 음식을 제공했다.

무착륙 관광비행의 재미 중 하나가 창밖으로 국토를 내려보는 거다. 한라산 백록담의 모습. 연합뉴스

무착륙 관광비행의 재미 중 하나가 창밖으로 국토를 내려보는 거다. 한라산 백록담의 모습. 연합뉴스

그러나 지난해 12월 많은 게 바뀌었다. 정부가 해외 영공을 나갔다 올 수 있게 한 거다. 당연히 면세품 구매가 가능해졌다. 대신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기내식은커녕 물 한 잔도 줄 수 없게 했다. 실제 체험 비행을 해보니 건조한 기내에서 갈증이 느껴졌지만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항공료는 저비용항공 9만~10만원 선이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은 일반석 15만~20만원, 비즈니스석·일등석 35만~50만원을 받는다. 여러 항공사가 경쟁을 벌이면서 항공료는 낮아지는 추세다. 좌석은 한 칸씩 띄워 앉는다. 티웨이항공 윤성범 홍보팀장은 “매달 두 차례 관광비행을 띄우는데 탑승률이 90%에 달한다”며 “비행 체험과 쇼핑도 중요하지만 오랜만에 인천공항에 오는 것만으로도 설렌다는 승객이 많다”고 말했다.

엄연한 국제선, 여권 꼭 챙겨야

무착륙 관광비행은 대부분 가까운 일본 상공을 선회한다. 엄연한 국제선 비행이어서 출입국 절차를 거친다. 여권도 꼭 챙겨야 한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면 3층 항공사 카운터에서 수속을 밟는다. 비대면 수속을 원한다면 키오스크를 이용해도 된다. 수하물은 기내용만 허용된다.

무착륙 관광비행은 해외여행을 하는 것과 똑같은 수속 절차를 밟는다. 인천공항 1터미널 항공사 체크인카운터에서 여권과 항공권을 건네받는 모습. 최승표 기자

무착륙 관광비행은 해외여행을 하는 것과 똑같은 수속 절차를 밟는다. 인천공항 1터미널 항공사 체크인카운터에서 여권과 항공권을 건네받는 모습. 최승표 기자

보안 검색과 출국 심사를 마치면 면세구역으로 들어선다. 시내 면세점이나 인터넷 면세점에서 구매한 제품을 수령하거나 공항 면세점에서 쇼핑을 즐기면 된다. 항공사의 기내 면세점도 이용할 수 있지만 사전 주문만 가능하다.

면세점 이용 기준은 해외 출국을 할 때와 같다. 구매 한도 5000달러(약 566만원), 면세 한도 600달러(68만원)다. 기본 면세 한도와 별도로 술 1병(1ℓ 이하, 최대 400달러), 향수 1병(60㎖), 담배 1보루는 면세 혜택을 준다. 익명을 요구한 면세점 관계자에 따르면, 무착륙 비행 이용객 1인의 평균 소비액은 50만~60만원이다.

지난 20일 탑승한 티웨이항공 TW200편은 약 90% 탑승률을 기록했다.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가운데 자리는 비워두고 창가석과 복도석에만 승객이 앉는다. 최승표 기자

지난 20일 탑승한 티웨이항공 TW200편은 약 90% 탑승률을 기록했다.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가운데 자리는 비워두고 창가석과 복도석에만 승객이 앉는다. 최승표 기자

면세 한도를 초과해 쇼핑을 즐기는 이들도 많다. 면세점마다 경쟁적으로 할인을 해줘 입국 시 세금을 내더라도 상품 가격이 매력적인 까닭이다. 이를테면 185만2000원짜리 가방·지갑은 간이세율 20%를 적용해 세금 37만원을 부담하면 된다. 185만2000원을 초과하면 개별소비세가 적용돼 세율이 50%로 뛴다.

트렁크에 가득 채운 면세품

지난 20일 인천공항을 출발하는 티웨이항공 TW200 편에는 107명이 탑승했다. 8번 게이트 앞, 승객 대부분이 두 손 가득 면세점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챙겨온 캐리어에 면세품을 욱여넣는 승객도 많이 보였다. 출발 1시간 만에 기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은 후쿠오카 상공입니다. 하지만 비구름 탓에 하강할 수 없어 바로 서울로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항공사에 따라 무착륙 관광비행을 '면세 비행'이라 부르기도 한다. 항공사와 면세점이 손잡고 적극적인 할인 행사도 벌인다. 사진 에어부산 홈페이지 캡처

항공사에 따라 무착륙 관광비행을 '면세 비행'이라 부르기도 한다. 항공사와 면세점이 손잡고 적극적인 할인 행사도 벌인다. 사진 에어부산 홈페이지 캡처

하늘에서 굽어보는 ‘일본 구경’은 실패. 그러나 아쉬워하는 승객은 많지 않은 듯했다. 승무원은 승객들이 사전 주문한 면세품을 전해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 승무원에 따르면, 이날 승객이 사전 주문한 기내 면세품 금액은 약 8000달러였다. 1인 평균 74달러를 쓴 셈이다. 티웨이항공도 여느 항공사·면세점처럼 파격적인 할인 행사를 벌이는 중이었다. 발렌타인 30년산 양주를 236달러(26만2000원)에 팔았다. 한 승객은 “부부가 고급 위스키 두 병을 사면 비행기 값을 뽑고도 남는다”고 말했다. 발렌타인 30년산 양주의 정상가는 394달러(44만원)다.

지난해 12월, 무착륙 관광비행에 대해 면세점 이용을 허용하면서 면세점도 모처럼 활기를 띠고 있다. 제주도나 해외로 여행을 가는 것도 아닌데 여행용 트렁크를 챙겨와 구매한 면세품을 챙겨가는 승객이 많다. 뉴시스

지난해 12월, 무착륙 관광비행에 대해 면세점 이용을 허용하면서 면세점도 모처럼 활기를 띠고 있다. 제주도나 해외로 여행을 가는 것도 아닌데 여행용 트렁크를 챙겨와 구매한 면세품을 챙겨가는 승객이 많다. 뉴시스

출발 2시간 만에 비행기는 인천공항으로 돌아왔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세관을 통과하려는 순간, 놀라운 장면을 마주쳤다. 면세 한도 600달러를 초과해 구매한 승객을 위한 신고 구역이 따로 있는데, 여기에 긴 줄이 서 있었다. 인천공항 관계자는 “무착륙 관광비행 이용객 가운데 보따리상도 많다”고 귀띔했다.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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