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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소법 오늘 시행…금융권, 준비 시간 촉박해 혼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2면

직장인 A씨는 2019년 말 한 금융그룹의 복합점포(은행+증권+보험 등)에서 사모펀드(무역금융펀드)에 가입했다. A씨는 원금이 100% 보장되면서 연 4% 이자를 얻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3억원을 맡겼다. 그는 불안한 마음에 담당 직원의 말을 녹음해 파일로 보관했다. 1년 뒤 이 상품은 투자자들이 맡긴 돈을 돌려줄 수 없다며 환매를 중단했다.

금융상품 불완전 판매 막기 위해 #6대 기준 어기면 징벌적 과징금 #금융위, 당분간은 제재보다 지도

금융위원회는 금융회사의 불완전 판매를 차단하기 위해 25일부터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앞으로 금융회사가 고객에게 상품을 팔 때는 여섯 가지의 판매 규제(적합성·적정성 원칙, 설명 의무, 불공정행위·부당권유·과장광고 금지)를 따라야 한다. 만일 금융회사가 과장광고·부당권유·불공정행위를 하거나 설명 의무를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판매액의 최고 50%까지 징벌적 과징금을 물어야 한다. 상품을 판매한 직원도 최고 1억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할 수 있다.

금소법 주요내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금소법 주요내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소비자는 모든 금융상품에 대해 청약 철회권과 위법계약 해지권을 갖는다. 청약 철회권은 소비자가 원하면 일정 기간 안에 위약금 없이 계약을 깰 수 있는 권리다. 대출 상품은 14일, 보험 등 보장성 상품은 15일 안에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주가연계펀드(ELF)처럼 복잡한 구조의 투자 상품에 대해선 소비자가 일주일 안에 청약을 철회할 수 있다. 금융회사가 금소법을 위반했다면 소비자는 계약일에서 5년 또는 위법 사실을 안 날에서 1년 안에 계약을 해지할 권리(위법계약 해지권)가 있다.

금융계에선 준비할 시간이 부족한 상태에서 금소법이 시행돼 현장에서 혼선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불만이 나온다. 금소법에 따라 소비자가 금융회사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금융회사는 고의나 과실이 없었다는 점을 입증할 책임을 진다. 정부가 금소법 시행령과 감독 규정을 확정한 것은 지난 17일이었다.

익명을 원한 은행 관계자는 “(소비자가) 위법계약 해지권을 쓰면 금융사는 수수료 등 비용을 요구할 수 없다”며 “만일 정기예금을 해지하면 중도해지 이자율을 적용해야 할지, 아니면 약정 이자율로 보상해야 할지 등이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금융회사의 내부통제 기준 구축, 핵심 설명서 마련 등 일부 규정은 6개월 뒤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금융당국은 앞으로 6개월간 금융회사가 법을 위반한 것을 발견해도 중대한 문제가 아니라면 행정 제재보다는 지도 위주로 감독하겠다는 입장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차라리 6개월 시간을 두고 법안의 취지가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준비한 뒤 시행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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