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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라임사태' 막겠다는 금소법, 25일 시행에 금융권 대혼란

중앙일보

입력

25일 '제2의 라임사태'를 막는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시행된다. 사진은 은행에서 고객이 상담받는 모습. 중앙포토.

25일 '제2의 라임사태'를 막는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시행된다. 사진은 은행에서 고객이 상담받는 모습. 중앙포토.

직장인 A씨는 2019년 말 한 은행권 복합점포에서 사모펀드(무역금융펀드)에 가입했다. 100% 손실 없이 안전한 데다 연 4% 이자를 얻을 수 있다는 얘기에 서류 절차 없이 3억원을 맡겼다. A씨는 불안한 마음에 판매 담당자의 얘기를 녹음 파일로 보관했다. 안전한 상품인 줄 알고 가입한 상품은 1년 뒤 환매가 중단됐다.

앞으로 A씨 사례 같은 금융사의 불완전판매는 사실상 차단된다. '제2의 라임 사태'를 막기 위해 25일부터 시행되는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에 따른 것이다.

앞으로 금융회사가 상품을 팔 때는 6대 판매규제(적합성ㆍ적정성 원칙, 설명 의무, 불공정행위ㆍ부당권유ㆍ과장광고 금지)를 따라야 한다. 이처럼 영업 규제를 강화한 동시에 징벌적 과징금도 도입했다. 상품을 판매할 때 과장광고ㆍ부당권유ㆍ불공정 행위를 했거나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면 판매액의 최대 50%까지 징벌적 과징금을 물어야 한다. 판매 직원도 최대 1억원의 과태료를 낼 수 있다.

금소법 주요내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금소법 주요내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금소법으로 소비자의 권리는 한층 강화됐다. 우선 모든 금융 상품에 대해 청약 철회권과 위법 계약해지권을 갖는다. 청약 철회는 상품에 가입한 뒤 일정 기간 안에 위약금 없이 계약을 깰 수 있는 권리다. 대출성 상품은 14일, 보험 등 보장성 상품은 보름 안에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투자 상품은 주가연계펀드(ELF)처럼 복잡한 투자 구조의 금융 상품에 한해서 일주일 안에 청약을 철회할 수 있다.

금융사가 금소법을 위반했을 때는 계약일로부터 5년 이내 또는 위법 사실을 안 날로부터 1년 이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이번에 신설된 위법계약 해지권이다. 청약철회권처럼 수수료나 위약금 등 비용 부담 없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게다가 소비자는 금융사가 보유한 금융 거래 자료(자료열람요구권)도 확인할 수 있다. 금감원 분쟁이나 소송에 필요한 자료를 직접 찾아볼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금융사가 자료를 정비하고, 시스템 구축하는 시간을 고려해 오는 9월 중순 이후에나 이용할 수 있다.

법 시행 일주일 전 시행령 확정 

금소법이 시행되면 금융회사가 손해배상 입증책임을 증명해야 한다. 소비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고의나 과실이 없었다는 것을 금융회사가 증명해야 하므로 법 조항 하나하나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처럼 소비자의 권리를 강화했지만 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법 시행을 앞두고 뒤늦게 세부 규정을 담은 시행령이 나온 탓이다. 법률을 시행하는 데 가장 중요한 세부 규정을 담은 시행령과 감독 규정이 최종 확정된 게 지난 17일이다. 법 시행일 8일 전에야 구체적인 규정을 손에 쥔 것이다. 금융사가 준비할 시간이 부족한 상태에서 법이 시행되며 현장의 혼선이 커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업종이나 상품별 특성 등을 감안한 구체적 내용도 없어 업계의 고심은 깊어가고 있다. 법 시행 전날까지도 시스템 정비를 비롯해 법률 조항 해석 등으로 금융권이 ‘우왕좌왕’하는 이유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소비자의 투자성향(등급)에 맞는 상품만 볼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비했는데 막상 시행령을 보니 소비자가 (본인 투자등급보다) 투자 위험이 큰 상품을 원할 경우 부적합확인서를 받고 계약할 수 있다고 명시해 당황스럽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시행령에 따라) 다시 영업 매뉴얼도 고치고 직원 교육도 해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모호한 가이드라인도 많아 현장의 어려움이 크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은행업계 관계자는 “예를 들어 법 조항을 보면 (소비자가) 위법계약해지권을 쓰면 금융사는 수수료 등 비용을 요구할 수 없게 돼 있다"며 "만약 정기예금을 해지하면 중도해지 이자율을 적용해야 할지, 아니면 약정 이자율로 보상해야 할지 등이 명확하지 않다”고 했다.

금융권 "시간 촉박" 한목소리 

금융사들이 법 시행을 코앞에 두고 “시간이 촉박하다”고 한목소리를 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신용정보법) 개정안’과 비교하면 차이가 확연하다. 신용정보법 시행령은 지난 2월 법 시행 6개월 전인 지난해 8월 확정됐다.

준비 시간 부족 등에 대한 업계의 우려에 금융당국이 내놓은 해결책은 ‘6개월 유예’다. 시스템 구축 등 준비 기간이 필요한 내부통제기준, 핵심설명서 마련, 자료열람요구권 등 일부 규정은 적용 시기를 6개월 뒤로 미뤘다. 또 새로 도입되거나 강화된 제도의 경우 향후 6개월간 컨설팅(지도) 중심으로 감독하겠다는 입장이다. 중대한 법을 위반하지 않는다면 금융사에 과도한 행정제재를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익명을 요구한 국회 한 관계자는 “(금소법) 법안의 긍정적 취지에도 불구하고 시행 직전 시행령이 제정돼 실효성은 떨어지고 현장의 혼란만 가중될까 우려스럽다”고 전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차라리 6개월 시간을 두고 법안의 취지가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준비한 뒤 시행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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