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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병상의 코멘터리

살벌한 미ㆍ중 패권경쟁 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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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3월18일 19일 이틀간 앵커리지에서 열린 미중 고위급회담. 연합뉴스

3월18일 19일 이틀간 앵커리지에서 열린 미중 고위급회담. 연합뉴스

3월18일 알래스카 미중회담..이례적인 외교수장간 설전 연속 #패권 미국의 경고에 신흥강국 중국의 작심반발..살벌한 발언들

1. 지난주(3월 18, 19일) 알래스카에서 열린 미국ㆍ중국 고위급회담은 살벌했습니다.
미국 바이든 정부 외교책임자인 블링컨 국무장관과 설리번 안보보좌관이 처음 중국과 만나는 상견례 자리였습니다. 중국에서도 외교책임자인 양제츠 공산당정치국원과 왕이 외교부장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패권국가인 미국이 초장부터 중국의 도전에 경고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러자 신흥강국 중국도 대놓고 덤비기로 작심했습니다. 세계사에 남을 패권 대충돌 장면이 생생하게 공개됐습니다.

2.이변의 연속이었습니다.

18일 첫회담에서 블링컨 장관이 예정된 2분간의 모두발언을 했습니다. 내용이 좀 쎘습니다. 그러자 양제츠가 무려 16분15초 동안 미국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폭탄발언을 합니다. 양제츠는 농담으로 ‘오늘은 통역을 시험하는 날’이라고 말합니다. 미리 준비된 원고가 아니라는 얘기죠.통역 도중 틀린 대목을 직접 바로잡기도 합니다.
이어 회의를 비공개로 전환하기위해 진행요원들이 취재진의 퇴장을 요구하는데..블링컨이 ‘잠깐만’이라며 기자들을 다시 부릅니다. 양제츠의 발언을 반박합니다. 취재진들이 다시 나가려하자 이번엔 양제츠가‘잠깐..미국인들은 왜 기자들 있는 걸 무서워하냐’며 한방 먹입니다. 다시 재반박합니다.

3.주요발언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외교적 언사와는 거리가 먼 진짜 솔직,생생,살벌한 발언들입니다.
▶블링컨 모두발언=미국의 외교는 ‘룰에 기반한 국제질서’강화다.세계가 같은 룰에 따라 움직이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최근 세계가 더 폭력적이고 불안정해지고 있다. 신장(위구르족) 홍콩 대만 등에 대한 중국의 조치에 깊은 유감이다. 중국이 ‘룰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침해한다. 솔직히 얘기함으로써 양국관계 증진에 기여하고자 마련한 자리다.

▶양제츠 반론=중국 역시 평화 발전 정의 자유 민주 등 휴머니즘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중국과 세계각국은 UN중심의 국제시스템을 따라왔다. 소위 ‘룰에 기반한 국제질서’라는 소수 국가(미국) 주장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미국 스타일의 민주주의가 있고, 중국 스타일의 민주주의가 있다. 중국은 평화로운 성장과 발전을 해왔다. 무력으로 남의 나라에 침범한 건 미국이다. 이는 UN정신에 맞지 않다. 미국은 자신의 민주주의만 옳다 생각하고, 이를 남의 나라에 강요하면 안된다.

미국이 중국 사회주의를 해코지하려는 시도를 하면 할수록 중국 인민들은 공산당을 중심으로 더 뭉칠 것이다. 미국은 냉전시대의 사고, 제로섬 게임식 접근법을 버려야 한다.

신장위구르 티벳 대만은 양도불가능한 중국 영토다. 미국의 내정개입을 엄중히 거부하며, 확고히 대응할 것이다. 중국의 인권은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봐라..미국은 남의 나라 욕하지 마라. 각자 잘하자. 사이버해킹 얘기하는데..기술이나 능력면에서 미국이 챔피언이다.
▶왕이 첨언=미국에 패권주의 스타일로 내정간섭하지 말라고 하고싶다. 손님 불러 놓고 하루전 중국인에 대한 제재(홍콩 관련)를 했다. 예의가 아니다. 중국을 흔들려는 모양인데..거꾸로 미국의 취약한 내면을 드러내는 짓이다.국제사회가 지켜보고 있다.

▶블링컨 반론=내가 세계 100여개국으로부터 들은 것과 당신들 얘기는 매우 다르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그걸 감추거나 없는 척하면 발전이 없다. 고통스럽지만 드러내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바이든이 부통령 시절 시진핑과 만났을 때 ‘미국편에 배팅하지 않는 건 좋은 베팅이 아니다(It is never a good betting to bet against America)’고 말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양제츠 재반론=이런식으로 ‘강력한 입지(Position of Strengthㆍ미국의 중국압박전략)’에서 중국을 깔보는 태도는 의도된 것이 아닌가.미국이라고 이런식으로 얘기할 특권은 없다.중국인민도 위대하다. 중국은 지난날 외국의 침략으로 충분히 고통받았지 않았나.중국의 목을 조르려고 하지 마라. 중국 역사가 보여준다. 중국인의 목을 조르려는 자는 스스로 해를 입는다.

4.양제츠의 주장은 전형적인 중화민족주의 우파 목소리입니다.
중국이 아편전쟁(1840년) 이후 서양의 약탈에 시달려왔고, 100년의 고통 끝에 공산당이 인민공화국을 수립(1949년)했고, 다시 100년의 노력 끝에 마침내 세계패권국(2050년)이 되겠다는 100년 단위 마라톤 역사관입니다.
중화민족주의는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어야 한다는 확신이고, 시진핑이 이끄는 공산당은 이러한 패권의 꿈을 잘 이끌어왔다는 자긍심에 넘칩니다.

5.미국이 기존의 패권국이고, 중국이 새로운 패권국가로 도전하는 모양새 그대로입니다.

문제는 이런 패권국 경쟁이 전쟁을 초래한다는 역사적 교훈(투키디데스 함정)입니다.
불행히도 그 전쟁은 누구도 원하지 않아도 빠지기 쉬운 ‘함정’과 같다는 점이고, 패권전쟁은 패권국가끼리만의 전쟁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동맹국이 끌려들어가는 세계대전의 양상으로 번진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알래스카에서 벌어진 미중간 외교설전은 대한민국의 운명과 무관치 않습니다.
기억해두어야할 장면입니다.
〈칼럼니스트〉
2021.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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