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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병상의 코멘터리

애틀란타 총격사건=인종차별+여성혐오

중앙일보

입력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미국 워싱턴DC 차이나타운에서 17일(현지시간)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한 여성이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를 멈춰라’는 문구가 쓰인 팻말을 들고 걷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워싱턴DC 차이나타운에서 17일(현지시간)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한 여성이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를 멈춰라’는 문구가 쓰인 팻말을 들고 걷고 있다. 연합뉴스

총격사건 자체도 충격이지만..범인 감싸는 경찰 발표는 더 충격적 #백인우월주의 본고장에 아시아 여성에 대한 성도착성문화까지 겹쳐

1. 미국 애틀란타에서 한인 여성 4명이 피살된 총격사건은 사건 자체도 충격적이지만 이후 경찰 발표가 더 충격적입니다.
애틀란타 체로키카운티 경찰이 사건발생 다음날인 17일(현지시간) 조사결과를 설명했습니다.‘인종차별 범죄 아니냐고 (범인에게) 물었는데, 그게 아니라, 섹스 중독 때문이라고 한다. ’‘마사지샾에 자주 들락거렸는데..그 유혹(temptation)에서 벗어나려 마사지샵을 쓸어버리려(lashing out)했다.’‘어제는 그에게 진짜 나쁜 날(really bad day)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됐다.’

2.황당합니다. 경찰이 연쇄총격살인범 롱(Robert Aaron Long)을 감싸줍니다.경찰이 수사결과를 얘기하는게 아니라 범인의 대변인 노릇합니다.

발표를 해석해보자면..‘롱이 섹스중독에서 벗어나기위해 자신을 유혹하는 업소들을 없애려했다. 그날 일진이 안좋아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정도입니다. ‘temptation(유혹)’이나 ‘lashing(채찍질)’같은 표현이 매우 기독교적입니다. 사건의 진상을 모르고 들으면 무슨 착한 일 한 걸로 착각할 정도입니다.

3.롱이 저지른 범죄는 ‘인종차별’과‘여성혐오’가 결합된 최악의 범죄입니다.
그는 현장에서 ‘아시아인을 모두 죽이겠다’며 총기를 난사했습니다. 아시아 여성들이 종사하는 업소 3곳을 찾아 연쇄 살인을 저질렀습니다.자신의 SNS엔 ‘중국 바이러스(코로나)가 미국인 50만명 죽였다. 중국이 최대 악이다’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가 ‘섹스중독 때문’이라고 주장하든 말든..진짜 그렇게 믿든 말든..그의 범행은 인종차별과 여성혐오가 얽힌 최악저질입니다.

4.그럼에도 불구하고‘섹스중독’을 주장하는 이유는 형사처벌을 가볍게 받기위해서입니다.
인종차별이면 더 무거운 형이 내려집니다.기독교문화에서 ‘섹스라는 유혹에서 벗어나고자’했다면 동정의 여지도 있습니다.

범인을 감싸는 경찰의 행태가 ‘2차 가해’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발표를 한 경찰 제이 베이커(Jay Baker) 역시 인종차별주의자로 의심됩니다. ‘코로나가 중국에서 들어왔다’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사진을 SNS에 공유하면서 ‘재고 있을 때 사라’고 권유했습니다.

5.아시아인에 대한 공격은 코로나 이후 급증해왔습니다.
지난해 3월 이후 3800건의 범죄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부터 코로나에 대해‘차이나 바이러스’‘쿵플루(쿵후+플루)’라고 부르며 중국을 비난했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주 공격대상이 여성이라는 점입니다.
이는 여성이 취약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롱이 주장하는 ‘섹스 중독’에서 드러나듯 아시아 여성을 비하해온 ‘성도착성’저급문화 영향이 큽니다.

6.서구에선 오래전부터 아시아 여성을 성적인 착취대상으로 낮춰보는 인식이 퍼져있었습니다.

아시아 여성에 대해 흔히‘이국적(exotic)’이라고 표현하지만 한편으론‘순종적이라 막 대해도 된다’는 편견이 깔려 있습니다.
특히 미국의 경우 역사적 경험..2차 세계대전 직후 일본점령 당시 누렸던 게이샤 문화가 작용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그런 인식이 많았습니다. 1904년 만들어진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마담 버터플라이)’가 대표적입니다. 미국 선교사에게 모든 걸 바치는..결국 자살하고마는 일본여성 얘기입니다.

7.세상이 변해도 한참 변했는데도 미국 남부에선 아직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애틀란타는 미국 흑인 인권운동의 영웅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고향입니다.
원래 흑인노예를 동물 취급하던 백인우월주의 농장주들의 땅이었습니다. 킹 목사가 흑인인권운동에 목숨을 바치고 세상을 떠난지 53년이 됐습니다.

흑인들보다 더 사회적 약자인 아시아 여성들의 인권은 언제 존중될 수 있을지..까마득합니다.
〈칼럼니스트〉
2021.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