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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부패한 '예비 가족' 골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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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목적지가 멀지 않은 유럽연합(EU)의 확대 노정에 또 한차례 빨간불이 켜졌다. 내년 5월부터 한 식구가 될 동구.지중해 연안 10개국의 부패가 여전히 개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부기구(NGO)인 국제투명성기구(TI)가 지난 7일 발표한 국가청렴도 지수는 이 새내기 국가들이 부패구조 개선을 위해 그다지 노력해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키프로스와 슬로베니아.에스토니아 등 3개국 정도만 EU 평균 수준에 근접하고 있을 뿐 나머지 국가의 청렴도는 크게 뒤처져 중남미 국가 수준이다. 특히 조사대상 1백33개국 중 64위로 10개 가입후보 중 가장 낮은 국가 청렴도를 보인 폴란드는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다.

TI 보고서에 따르면 행정과 보건.경찰.세관.법조 등 모든 공공분야에서 뇌물 수수가 통하고 있으며 관급 공사에서 경쟁 입찰보다는 안면을 통한 수의계약이 공공연히 횡행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이 수년 새 계속 악화하고 있다는 게 더 문제다.

TI 폴란드 지부의 마그다 프레넥 부회장은 "언론의 폭로로 드러나는 부패 상황에도 불구하고 부패 관련 공무원에 대한 제재가 미흡해 국가 지도층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치상으론 좋게 나타났지만 체코와 슬로바키아.라트비아 등의 실상도 폴란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신규 가입국들의 부패는 결국 모든 재화.용역의 이동이 자유화되는 EU 단일시장 전체의 국제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어 기존 회원국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오스트리아와 네덜란드 등 일부 회원국은 신규 가입 조건을 보다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가입 조건에 중대한 결격 사유가 있을 경우 가입을 유보하는 '보호 조항'의 도입이 그것이다.

하지만 성공적인 확대가 최우선 과제인 EU에는 현실에 적용하기 어려운 조치가 아닐 수 없다. EU 집행위원회 측은 "부패가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가입 후보국들을 평가하는 유일한 척도일 수는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집행위 역시 부패 문제가 당분간 EU의 골칫거리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

파리=이훈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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